역차별 TK[대구·경북]“PK[부산·경남]에 다 뺏길 순 없다”
지난 3월에 열린 새누리당 의원 총회 모습. 황우여 대표(오른쪽)와 이한구 원내대표 등 참석의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최근 의원실에서 만난 한 TK 의원은 거친 욕설을 뱉어가며 부산 지역 한 국회의원을 성토하고 있었다.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안(추경)에 영남권 신공항 예산이 배정됐는데 부산 쪽에서는 그것을 가덕도 신공항 예산인 것처럼 떠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18대 국회에서 부산과 대구·경북·울산·경남은 가덕도 신공항이냐, 밀양 신공항이냐를 두고 거칠게 싸웠고 결국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공약을 ‘없던 일’로 만들었다. 이로 인해 “우리가 남이가”에서 “우리는 남”이 된 것이 지금 PK와 TK의 현 주소다.
이 의원은 그러면서도 “한때 잘나갔는지 모르겠지만 TK에 뭐 힘이 있어야지. TK 사람이 없으니 번번이 PK한테 밟힐 게 뻔하다. 청와대에도 국회에도 사람이 없다. 대책도 없다”며 무력한 모습을 보였다.
먼저 집권 여당의 가장 ‘핫’한 지역인 PK를 들여다보자. 권력의 정점인 박 대통령과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인물이 바로 허태열 비서실장이다. 허 실장이 청와대에서 PK 출신의 큰 축을 세우게 된다. 여기에 경남 하동 출신의 정홍원 국무총리가 정부의 한 축을 맡고, 여의도로 귀환한 5선의 김무성 의원이 새누리당의 축을 맡게 되는 것이다. 김 의원에 대해선 차기 당 대표 등 ‘향후 역할론’에서부터 ‘대망론’까지 거론되는 마당이다.
PK의 이 ‘허·정·무 트리오’가 물밑에서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PK는 원하는 것을 대부분 이룰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정치권의 분석이다. 거기에다 박흥렬 경호실장,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모두 PK다.
‘식어가는’ 지역 TK는 PK와 완전히 대조적이다. 그야말로 ‘사람이 없다’. 이 지역 한 중진 의원은 “박 대통령이 의원 재직 때 대구 달성군이 지역구였지만 4선이 될 동안 지역에선 아무도 ‘포스트’를 키우지 않았다. 크려고 하면 밟고, 발목을 잡고 하는 통에 제 팔 제가 흔드는 것도 어려웠다. 강재섭 전 대표가 증명하고 있지 않나. 잠룡군으로 가장 유력했지만, 지역적 지지가 너무 없었다”고 말했다.
허태열 비서실장, 정홍원 국무총리, 김무성 의원
현재 TK로선 청와대, 정부, 새누리당 어디에도 강력한 ‘축’을 발견할 수도 없다. TK에선 4선 의원이 최다선이다. 이병석 의원이 국회부의장, 이한구 의원이 당 원내대표지만 이 부의장은 대표적인 ‘친이명박계’로 당내 세력 기반이 약하고, 이 원내대표의 임기는 이달 말까지로 끝이 난다.
게다가 이 원내대표는 지난 1년간 이미지를 많이 구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독불 장군처럼 원내를 지휘한 통에 일부 의원은 “막가파식”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사실을 아는 듯 이 원내대표 스스로도 “원내대표직을 그만두면 아내와 여행도 하고 푹 쉬고 싶다”는 뜻을 사석에서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승민 국회 국방위원장이 지역 내 평판이 좋지만 전국적 인지도 면에서는 김무성 의원에 비해 약하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과 아주 가깝다는 최경환 의원이 이 원내대표로부터 바통을 받으면 대부분 당직에서 TK가 소외되거나 역차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대구·경북 지역정가에서 “최 의원이 원내대표가 되면 1년 동안 TK가 더 많은 것을 잃을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수군거림이 들리고 있다.
특히 이번 원내대표 경선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초선들 사이에서는 최 의원 비토 이야기도 나온다. 요지는 “원래대로라면 4선 의원이 원내대표를 맡아왔고, 3선인 최 의원이 양보하는 것이 맞는데 굳이 하려는 것 아니냐. 3선 원내대표는 예외적 사례였을 뿐이다”, “지난 대선에서 백의종군한다고 해놓고 정권 재창출되자마자 원내대표로 떡 하니 돌아오는 것을 두고 ‘순수성’을 의심하는 분들도 있다”는 등의 지적이었다.
최근 PK를 바라보는 TK의 시선은 부러움 가득한 질투에 가깝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으로 정치권을 좌지우지했던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을 잃었고, 5선이 되는 박종근 이해봉 전 의원도 낙천하거나 불출마하면서 ‘지역의 어른’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무엇보다 박·이 전 의원이 비리에 연루됐거나 해서가 아니라 다만 ‘고령’이었다는 이유에서 정치권 밖으로 밀려나면서 “살려놨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자성론이 뒤늦게 일고 있다.
특히 최근 부산의 5선 정의화 의원이 차기 국회의장감으로 부상하면서 “PK가 청와대, 정부, 새누리당에 이어 국회까지 장악하게 될 것”이란 이야기가 회자하고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인(人)프라 면에서 이번 국회에서는 TK가 절대 PK를 좇아갈 수 없다. 유기준 최고위원, 서병수 사무총장, 나성린 정책위의장 권한대행, 김정훈 정무위원장 등이 미들급 정도로 체급을 올렸고 이밖에도 경남에서 이주영 원내대표 후보, 정갑윤 국회부의장 후보 등이 있다”며 “그런데 TK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10억 원의 추경이 배정된 신공항 수요 조사가 부산 가덕도로 기우는 분위기가 연출되면 TK는 곧바로 전쟁을 선포할 가능성이 있다. 코너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 듯, 벼랑 끝에 선 TK의 거센 저항이 발발할 것이란 관측이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