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존재감 무시 못할걸…’
‘친노그룹’의 핵심인사인 문성근 전 대표권한대행이 지난 3일 탈당을 전격 선언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김한길 신임 당 대표가 ‘계파 청산하겠다’, ‘민주당 쇄신하겠다’고 말하지만 그게 어디 구호만으로 되는 일이겠나. 지금 민주당 의원들끼리 불신이 너무 깊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안철수 세력이 신당을 만들기 전까지 당 쇄신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 사이 친노니, 비노니, 주류니, 비주류니, 이런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지난 9일 중립 성향으로 알려진 한 의원이 밝힌 민주당의 앞날은 암울했다. 이 의원은 5·4 전당대회 이전에도 기자에게 “당내 계파 문제가 생각보다 뿌리가 깊고, 이 때문에 초·재선 지역구 의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푸념했다. 그는 “지금 새누리당에 ‘친박’이 없어졌다고 볼 수 있나.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구심점이 없으니까 드러나지 않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언론에서는 민주당 계파만 유독 거론한다. 기자들도 민주당은 계파 이야기 말고는 쓸 게 없다고 대놓고 말한다”며 불편한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5·4 전당대회에서 승리한 김한길 대표는 ‘계파주의 해체’를 가장 먼저 거론했다. 하지만 지금 민주당 안에서는 ‘특정계파 배제’ 이야기가 더 많다. 한창 진행되고 있는 당 지도부와 당직자 개편 과정에서 “친노계는 상징적인 몇몇 자리에 고명처럼 얹어질 것”이란 말까지 나돈다. 여기에 전당대회 전날 탈당을 선언한 문성근 전 상임고문, 대선평가보고서 내용에 반발해 탈당한 명계남 이스트필름 대표는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이들의 탈당으로 많은 친노 지지자들은 “민주당 비상대책위와 대선평가위가 활동 기간 내내 비주류를 옹호했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친노 사이에선 ‘아예 10월 재·보선 전까지 태업하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최근 당직에서 물러난 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기자에게 “당원들이 직접 뽑아 세운 지도부인 만큼 온전히 맡기는 것이 맞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새 지도부에게 일임한다는 말이지만 역으로 손 놓고 지켜만 보겠다는 뜻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안희정(왼쪽) 충남도지사와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가 악수하는 모습. 앞으로 친노는 이들을 중심으로 세력이 분화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일요신문DB
당 지도부에서는 ‘친노 달래기’를 위해 문재인 의원의 역할을 주문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7일 김한길 대표가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문재인 의원을 만난 것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를 모았는데, 이 자리에서 문 의원이 전면에 나서 계파 극복에 나서 달라는 주문이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문 의원은 전당대회 때도 참석하지 않았고 당분간은 전면에 나서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문 의원 측 한 보좌관은 “전당대회에 불참한 것은 당내 선거에 중립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지금은 공보담당도 특별히 없는 상태”라고 전했다. 문 의원 측 다른 보좌관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지명직 최고위원 제의에 관해 “제의받은 적 없고, 당분간 지역구 중심으로 의정 활동을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한 친노계 중진 의원 보좌진은 “김한길 지도부 역시 친노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쪽으로 당을 운영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노무현재단의 경우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사람이 3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 숫자는 이번 전당대회 때 드러난 민주당 당원 수(4만 2000여 명)에 육박하는 규모다. 재단 하나가 제1 야당과 맞먹는 수준인데, 당 지도부로서도 포용하면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전했다.
조심스럽게 제기되는 마지막 반전 카드는 안철수 세력과의 연대 가능성이다. 지난해 대선 때 단일화 과정에서 앙숙이 되다시피한 두 세력이 앞으로는 서로의 필요성을 느끼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지난해 민주당 통합 과정을 주도한 ‘혁신과 통합’의 한 운영위원은 “안에서 총질한 비노에게 굴복하느니, 안철수 의원이랑 화해하는 게 낫겠다는 이야기도 있다”며 “밖에서 보는 것처럼 안철수 의원과 친노의 사이가 그리 나쁘지만도 않다. 특히 전대 이후 비노계가 당 지도부를 맡으면서 신당을 만들려는 안철수 의원 측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지 않나. 친노는 지난 대선 단일화 과정에서 안철수 측과 의견을 주고받았던 전례가 있기에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윤희웅 실장은 “대선 때 안철수 의원 측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은 것은 친노가 아닌 비노계 의원들이었다. 상황이 바뀌었다고 단기간에 관계가 회복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