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O 호주보안정보부 “스파이짓 했다” 김 박사 “함께 축구만…”
한국계 호주 공무원이 FTA 협상 관련 비밀정보를 국정원에 유출한 혐의로 해고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김 박사는 2004년 농림수산부로 옮겼고 2007년부터는 선임 경제연구원으로 승진, 2009년 한국-호주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에 참여하기도 했다. 20세의 나이에 호주에 와서 연방정부의 고위관료로 자리 잡은 것은 대단한 성공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렇게 잘나가던 김 박사의 이력은 2012년 9월로 끝이 났다. 그 배경에는 한국의 국가정보원이 있었다.
호주의 수도 캔버라는 인구가 채 40만 명이 되지 않는다. 호주를 대표하는 도시인 시드니의 10분의 1 수준. 시드니의 한인 사회는 10만 명 규모인데 비해 캔버라는 3000명에 불과하다. 김 박사는 1994년 캔버라에 소재한 호주국립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할 때부터 계속 캔버라에서 지냈다. 호주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 박사의 취미는 축구. 주말이면 캔버라 근교로 달려가 축구를 즐겼다.
주호주 한국대사관의 고위급 외교관 A 씨의 취미도 축구였다. A 씨는 2009년 호주로 부임했다. 전임지에서도 그는 아들과 같이 현지의 한인들과 축구경기를 즐겼다. 김 박사가 다른 대사관 직원으로부터 A 씨를 소개받은 것은 2009년, 외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던 캔버라 공항에서였다. A 씨의 부임 시기와 겹친다.
이후 김 박사와 A 씨는 다른 한인 가족들과 같이 어울렸다. 호주 언론은 이 중 한 명은 캔버라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고 다른 한 명은 축구계 인사였다고 보도했다. 호주 시민권자라고 해서 한인들끼리 만나는 것이 문제일 리는 없다. 문제는 A 씨가 외교관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한국 국가정보원의 직원이었다는 것이다. A 씨는 주호주 한국대사관에서 상무관계 업무를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인 무역 단체에서 강의를 하는 등 무역과 관련된 직무를 수행하는 한편 당시 한국과 호주 양국의 현안이었던 FTA 협상에도 관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호주 정부는 이런 A 씨의 신분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국정원에 대응하는 호주의 정보기관은 호주보안정보부(The Australian Security Intelligence Organisation, ASIO)다. 호주 언론은 한국 정부에서 A 씨를 이미 ASIO에 국가정보원 연락관으로 보고했다고 보도했다. 한국과 호주 양국의 정보기관 협조를 위해 A 씨와 다른 국정원 직원들은 호주 정보기관에 신분을 밝히고 방문하기도 했던 것.
이렇게 상대방이 존재를 파악하고 있는 첩보원들을 ‘백색 스파이’라고 부른다. 반대로 민간인으로 신분을 위장한 정보요원을 ‘흑색 스파이’라고 한다. 백색 스파이들은 주재국에서 부적절한 첩보활동을 펼치다가 발각되면 본국으로 추방되는 것이 관례다. 대개 외교관의 신분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외교관 추방은 국제적인 망신일 뿐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첩보전의 실패를 의미한다. 더군다나 백색 스파이들은 상대방에게 노출된 신분인 만큼 그 만큼 감시의 대상이 되기도 쉽다.
지난 2009년 당시 한-호주 FTA를 위한 협상에서 농업은 호주로서는 매우 중요한 분야였다. 소고기가 호주의 주요 수출품일 뿐만 아니라 자국 내 관련 산업 종사자의 이해관계를 의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 박사가 협상에 나서는 대표단은 아니었지만 2009년 12월 캔버라에서 열린 3차 협상회담에는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호주 정보기관이 A 씨와 김 박사의 관계를 의심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
ASIO는 2010년 중반 김 박사와 A 씨와의 관계를 파악하기에 이른다. 당시 한국과 호주의 FTA 협상은 답보 상태였다. 축산 대국인 호주는 협상 과정에서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 폐지를 수용하는 대신 호주산 소고기를 미국산 소고기와 동등하게 대우해달라고 요구해왔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축산 농가의 반발을 우려해 ‘양허제외’라는 입장을 고수했고 2010년 5월 이후 협상은 중단되었다.
호주 정보기관은 김 박사와 A 씨와의 만남을 호주 국가 이익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했다. 김 박사가 관련 주요 정보를 다루는 위치에 있었으며, 직접 협상에 나서지는 않지만 협상 과정에 접근할 수 있었다는 판단을 내렸다. 특히 김 박사는 A 씨와의 접촉을 부서에 보고하지 않았다. 연방정부 공무원은 타국 외교관과 접촉했을 때 보고해야 하는 것이 호주 정부의 보안 방침이다.
ASIO는 기초 조사를 실시한 후 호주 연방 농림수산부에 김 박사로부터 보안 관련 서면조사를 받도록 요구했다. 김 박사는 이때 정부 보안 절차와 외국 정부 관리와의 접촉에 대해 답했다. 두 달 후 김 박사는 사전 예고 없이 호주 정보기구에서 나온 두 명의 직원으로부터 직접 조사를 받게 된다.
A 씨와 자유무역협정에 대해 얘기를 나눴는지 묻는 질문에서 김 박사는 처음에는 아니라고 답했으나, 나중에는 2009년 12월 A 씨와 대화를 나눴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김 박사는 이미 대외적으로 공표된 사실에 한정되었을 뿐이며 민감하게 여길 수 있는 내용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심문 말미에 ASIO의 요원들은 김 박사에게 A 씨와 다른 3명의 외교관들은 바로 한국의 국정원 직원이라고 알려줬다. ASIO는 김 박사에게 ‘정보요원들은 매우 지능적으로 공작을 수행한다’는 주의를 줬다. 그리고 향후 국정원 직원과 접촉 시 보고해야 한다는 경고도 전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11년 5월까지도 A 씨와 김 박사의 만남은 지속되었다는 것이 호주 정보기관의 판단이다. ASIO의 감시요원들은 A 씨가 김 박사를 만나는 축구장에서 관중으로 가장한 채 미행하고 사진을 촬영했다. 김 박사는 이를 자신의 직장이나 호주 정보기관에 보고하지 않았다. 김 박사는 이에 대해 ‘업무량이 많았고 미루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해명했다. 무엇보다 축구장에서 우연히 만난 것으로, 업무와는 아무 상관없었다는 것이 김 박사의 주장이다.
김 박사는 2010년 조사 후 거의 1년 가까이 ASIO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2011년 9월 15일 ASIO는 총책임자인 데이비드 어바인 국장 명의로 김 박사에 대해 ‘보안 부적격’ 평가를 내린다. ‘호주 정부 방침을 어기고 보고 없이 지속적으로 한국 국정원 직원과 접촉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호주 언론은 한국 정부에서 A 씨를 이미 ASIO에 국정원 연락관으로 보고했다고 보도했다. 사진출처=<시드니모닝헤럴드> 온라인판
ASIO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김 박사는 행정심판원에 이의를 제기했다. 김 박사는 한국 외교관과의 접촉은 순전히 사적이었으며 어떤 부적절한 대응도 없었다며 관련 혐의를 부인했다. 또한 무역 협상과 관련된 이야기도 공개적으로 알려진 정보에 국한되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행정심판원은 ASIO의 손을 들어줬다. 보안 부적격 평가가 정당했다는 결정이다.
행정심판원은 A 씨와 김 박사가 감시를 피해 비밀스럽게 만났으며 이런 행동은 호주에 대한 충성심에 의심을 불러일으킨다고 판단했다.
김 박사는 현재 심판원의 결정에 불복해 연방법원에 항소한 상태다.
호주에서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8월 시드니 호주 연방경찰의 한국계 직원 김 아무개 씨가 해고당한 것이다. 호주 언론은 시드니총영사관에 파견된 국정원 직원이 김 씨에게 호주의 대테러 관련 정보를 요청했다가 2009년 3월 스파이 혐의로 추방됐다고 보도했다. 김 씨 또한 ‘외국 관리와의 접촉’을 보고하지 않은 이유로 ASIO의 보안 관련 심사에 부적합판정을 받았다. 김 씨 역시 해고에 불복했으나 호주 공정근로위원회는 김 씨의 개인적 품행과 ASIO의 판단 등을 고려할 때 해고가 정당하다고 결정했다.
정보가 곧 힘인 현대 사회에서 FTA 협상과 같이 국익이 직결된 분야에서는 정보를 선점하고 이에 따라 협상력을 높이는 것이 필수적이다. A 씨가 호주대사관의 담당요원으로 파견된 2009년은 한-호주 FTA 협상이 한참 진행 중인 시점이었다. 이로부터 1년도 되지 않아 한국과 호주 FTA 협상은 중단되었다. 과연 국가의 이익을 위한 첩보전의 승자는 누구일까. 호주 언론에는 이미 4명의 국정원 직원들의 실명이 공개됐고 아직까지 한-호주 FTA 협상은 재개되지 않고 있다.
김태경 호주일요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