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고 백 없던 나는 젊은 시절 영하 20℃의 최전방 철책에서 군 생활을 했다. 복무기간도 남들의 두 배였다. 그래서 병역면제를 받은 인간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박 시장도 그런 나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27년 전, 서소문의 한 허름한 빌딩에서 박 시장과 나는 위 아래층의 변호사였다. 고교도 선후배 사이였다.
어느 날 그는 한 달에 100만 원 정도로 살면서 시민운동을 해보면 어떨까 하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 후 참여연대 시절 소액기부를 부탁하기도 하고 아름다운 가게를 시작할 때도 역시 도움을 청했었다. 헌신적인 그의 삶을 보고 조금 도왔다. 아들 병역 의혹에 대한 사건은 변호사로서 재능기부를 부탁한 셈이었다.
진실은 단순하다. 그냥 확인해 보면 되는 것이다. 만약 잘못이 있으면 그날로 서울시장직을 그만두라고 할 생각이었다. 살라고 하니 생각이 많지 죽으려고 하면 간단하다. 신체검사를 한 병무청 담당 의사를 만났다. 그는 자기가 ‘비리 의사’로 매도되고 있다고 오히려 분노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정작 피해자는 시장보다 그 의사였다. 담당 의사는 병무청의 CCTV를 보면 박 시장 아들 신검 장면이 확인되고 그곳의 CT 사진과 제출된 MRI 자료를 비교하면 분명한데 왜 모략이 번지느냐는 것이다.
규정에 따른 공정한 판정인데 왜 의혹으로 번지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전에도 박 시장 소송을 맡아 본 적이 있다. 박 시장은 신중과 묵묵부답이 특기다. 거짓말도 반박하지 않으면 진짜가 되는 세상이다. 시간을 끌 필요도, 박 시장과 의논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공인된 큰 병원에서 공개적으로 재검을 받겠다고 발표해 버렸다.
박 시장 측에서 변호사가 일방적으로 독주한다는 우려가 나왔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판단할 수 있지만 나는 진실만 확인하면 됐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이 가장 큰 힘이라는 걸 얼마쯤은 아는 나이가 됐다. 서울대 병원 측은 공개신검을 거절했다. 정치 사건에 휘말리기 싫은 것 같았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으로 갔다. 수많은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박 시장 아들의 키와 몸무게를 재게 하고 MRI 촬영을 하게 했다. 언론사 카메라들이 경쟁적으로 그 과정을 촬영했다. 최고의 의대 교수진이 공개적으로 박 시장 아들의 다리와 허리를 비틀고 직접 상태를 점검했다.
신중한 교수회의 끝에 200여 명의 취재진 앞에서 의학계 최고 권위자들이 진실을 발표했다. 의혹을 제기한 의사가 공개 사과를 했다. 그게 다였다. 의혹 제기자를 상대로 고소고발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그걸 말렸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해야 큰 그릇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계속 의심을 버리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인정 못해서가 아니라 정치인이 된 박 시장에게 어떤 하자가 존재해 주어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내가 매일 보는 성서에선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얘기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를 악마라고 하기도 한다. 진실이 밝혀졌는데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안타깝다. 그들은 최고 권위를 가진 의료진을 비리 의사로 만들지 모른다. 진실을 더 이상 보일 방법이 없을 것 같다.
변호사 엄상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