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페이지(의회 견습생)’ 건드렸다 의원직 훅~
게리 스터즈 의원(왼쪽)과 댄 크레인 의원(오른쪽 사진 가운데)은 1983년 성추문으로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미국 정치사에서 이른바 ‘윤창중 사건’과 가장 흡사한 케이스를 꼽는다면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공화당의 댄 크레인 의원과 민주당의 게리 스터즈 의원이 불신임된 사건이 떠오른다. 1983년 7월 14일, 미국 의회의 윤리 위원회는 당시 하원의원이었던 댄 크레인과 게리 스터즈를 회부한다. 죄목은 미성년자에 대한 성추행. 그 상대는 의회의 견습생, 즉 업무 보조를 하던 ‘인턴’들이었다. ‘페이지’(page)라고 불리는 그들은 의원의 업무를 도우며 잡무를 처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는데, 두 의원이 그들을 건드렸고 뒤늦게 발각되어 의원직을 박탈당하게 된 것이다.
댄 크레인이 일을 저지른 건 1980년. 그는 17세의 페이지를 교외의 아파트로 데리고 가 성관계를 가졌다. 게리 스터즈는 1973년에 하원의원에 당선 되었을 때 자신을 돕던 17세의 ‘페이지’(그는 남자였다!)를 건드렸다. 그들은 2주 동안 포르투갈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과거의 일이 드러나자 두 의원은 모두 자신이 했던 행동을 시인했다. 사실 당시 워싱턴 D.C.의 법에선 16세까지를 미성년자로 간주했기 때문에 틴에이저이긴 하지만 그들이 17세 이상의 페이지들과 성적 관계를 맺는 건, 강제성만 없었다면 충분히 용인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국회윤리위원회는 실정법과 무관하게 “의원과 페이지 사이의 그 어떤 성적 관계라도, 의원으로서 지켜야 할 도덕적 의무에 대한 심각한 위반”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그 전까지 의원이 성적인 문제로 불신임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특히 뉴트 깅리치 같은 강경파들이 치고 나왔고, 압도적 다수에 의해 댄 크레인과 게리 스터즈는 의원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흥미로운 건 이후 깅리치도 섹스 스캔들에 관련되어 좌초한다는 점이다).
왼쪽부터 데이비드 우, 아널드 슈워제네거.
하지만 이런 조치로 미국 정가가 성적으로 깨끗해진 건 전혀 아니었다. 대통령을 비롯, 고위 관료와 의원들 사이엔 숱한 섹스 스캔들이 있었고, 수많은 대권 주자들이 그런 이유로 낙마하곤 했다. 최근 5년 동안의 굵직한 일들만 간추려 본다. 가장 최근엔 대만 출신의 하원의원인 데이비드 우가 있다. 첫 중국계 의원인 그는 자신의 선거를 후원했던 절친의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딸에게 성관계를 강요했다가 고소당했다. 2011년의 일이었다. 같은 해 5월엔 전직 캘리포니아 주지사이자 빅 스타인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가정부인 패티 바에나와 십수년 전 정을 통해 낳은 아이가 세상에 드러났다.
2010년 5월엔 기독교적 가치의 전도자로 유명했던 공화당 하원의원 마크 사우더의 불륜 사실이 드러났다. 2009년엔 공화당의 차기 대선 주자 중 하나였던 존 엔자인이 혼외정사 문제로 당의 정치 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내 인생 최대의 실수”라며, 자신의 가족과 상대방 가족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 것에 대해 사과했다. 그는 클린턴 대통령의 르윈스키 스캔들 때 탄핵을 주도했고, 동성애자인 동료 의원에게도 사임 압박을 했던 보수주의자였다. 그와 함께 클린턴 탄핵을 주도했던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 존 샌포드도 2009년에 8년 동안의 혼외정사가 드러났다. 2001년 9·11 테러 당시 취재를 위해 아르헨티나에서 온 한 여성과 우연히 알게 되어 8년 동안 관계를 맺어왔던 것이다.
2008년엔 민주당 하원의원인 팀 마호니가 비서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후 돈으로 무마하려 했던 사실이 들통 났다. 게다가 그에겐, 비서와 불륜을 저지르는 기간 동안에 ‘제3의 여인’마저 있었다고. 상대방 의원의 섹스 스캔들로 운 좋게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던 마호니는 자신도 결국 섹스 스캔들로 정치 인생을 마감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주었다.
이외에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마치 정치인의 특권인 양 바람직하지 못한 성적 행동으로 스캔들에 오르내렸고, ‘스캔들의 인플레이션’ 속에서 웬만한 성추문은 별 문제 아닌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몇몇 사건들은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