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로 키워줬는데…’ 변심 땐 죽을맛
영화 <라디오스타>의 한 장면.
두사람 모두 업계에서 10년 여 년간 일해 온 중견 매니저다. 나이 역시 각각 30대 중후반으로 앞길이 창창하다. 일반 기업에서 일했다면 과장 정도의 직급에 올라 안정된 삶을 살고 있을 시기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불안정한 경제력 때문에 허덕여왔다. 박 씨의 한 측근은 “도박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박 씨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다. 하지만 작은 보수 때문에 항상 힘들어했다. 박 씨뿐 아니라 많은 연예 매니저들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고민을 갖고 있었다”고 귀띔했다.
한류 바람을 타고 연예계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드라마 편당 제작비는 100억 원대까지 치솟았고 톱스타들의 회당 출연료는 1억 원에 육박한다. 3개월간 방송되는 20부작 미니시리즈 한 편에 출연하면 20억 원의 개런티를 챙기고 드라마 출연 효과로 얻게 되는 CF 출연료는 편당 5억 원을 넘어선 지 오래다. 지난해 한국 영화는 관객 1억 명 시대를 열었고 아이돌 가수들은 아시아 전역의 도시 투어를 진행한다. 아시아를 넘어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배우가 배출됐고 이러한 한류 바람을 타고 코스닥에 상장돼 돈방석에 앉은 연예 기획사들이 줄을 잇고 있다.
하지만 햇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은 법. 그 이면에는 월급이 채 100만 원도 되지 않는 연예계에 막 발을 디딘 매니저 초년생도 있다. 최근에는 처우가 개선돼 100만~150만 원 안팎의 월급을 받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월급 100만 원은 언감생심이었다.
충무로 톱배우인 A의 매니저는 처우에 불만을 품고 지방 촬영을 다녀오던 도중 도로 한복판에 차를 세우고 그대로 도망가 버린 적도 있다. A의 소속사 이사는 “당시 A에게 전화를 받고 황당해서 할 말을 잃었다. 로드 매니저들의 처우가 좋지 않은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과거에 비해 사회 초년생들의 인내심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사회에 뛰어들었다면 월 150만 원 정도의 월급은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업무 강도가 일반 직업과는 다르다. 담당 연예인의 스케줄을 따라다녀야 하니 사생활 보장은 기대할 수 없다. 촬영장에서 무한 대기하며 차안에서 쪽잠을 자기 일쑤다. 게다가 성격 좋지 않은 연예인과 지내려면 인격적인 모욕까지 참아야 할 때가 많다. 월급 상승률도 높지 않다. 팀장급의 월급은 200만 원, 경력 10년이 넘어 실장급 매니저가 돼도 월급이 300만 원을 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니저들에게는 꿈이 있다. 연예계에는 로또보다 훨씬 당첨 확률이 높은 로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신인 연예인을 발굴해 스타로 키워낸다면 회당 수천만 원의 출연료와 편당 수억 원에 이르는 CF 출연료를 단숨에 챙길 수 있다. 신인의 경우 제반 비용을 제외해도 스타보다 소속사가 가져가는 몫이 더 크다. 일부 연예기획사는 CF 출연 등을 성사시킬 경우 에이전트 피(fee)를 주기 때문에 월급 이상으로 쏠쏠한 수입을 올릴 수 있다. 가수의 경우에도 거액의 행사 출연 계약을 맺으면 담당 매니저가 수고비를 따로 챙기곤 한다. 일반적인 직업에 비해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진 않지만 노력에 따라 목돈을 손에 쥘 수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자신이 공을 들인 스타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며 얻는 보람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종종 땀은 사람을 배신한다. 열심히 일한다고 반드시 대가가 돌아오진 않는다는 의미다. 하지만 땀보다 더 자주, 사람은 사람을 배신한다. 매니저들은 백방으로 뛰며 키운 스타가 결별을 선언할 때 연인에게 배신당했을 때보다 더 큰 상처를 받고 박탈감을 느낀다.
신인 시절을 함께 보낸 매니저와 함께 일하는 스타는 많지 않다.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는 이들과 함께 있는 것이 편치 않기 때문이다. 또한 경력이 많은 매니저들에게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아까워하는 스타들이 적지 않다. 때문에 1인 기획사를 차리며 함께 일하던 베테랑 매니저를 버리고 자신이 컨트롤하기 쉽고 몸값이 싼 신인 매니저들을 기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자신의 수익을 늘리기 위해 인건비를 줄이려는 심산이다.
업계 실력자로 유명한 매니저가 키운 톱배우 B는 계약이 만료된 후 가족 매니지먼트를 선택했고, 또 다른 배우 C는 단짝이었던 매니저를 뒤로 하고 어린 매니저들로 새 판을 짰다. 이후 B는 리스크 매니지먼트에 취약하다는 평을 받고 있고 C는 거듭된 잘못된 작품 선택으로 하락세다.
이에 대해 또 다른 연예계 관계자는 “스타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소속 연예인을 스타로 키우기 위해 엄청난 초기 투자비용이 들어간다. 이런 부분은 고려치 않고 일단 스타가 되면 옛 정을 뒤로하고 자기 잇속부터 차리려는 이들 때문에 많은 매니저들이 상처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
편견도 너무해
사람 장사하는 ‘파렴치한’ 취급
매니저들의 삶이 팍팍한 또 다른 이유는 대중의 따가운 시선 때문이다. 소속 연예인이나 연습생들에게 못된 짓을 한 일부 매니저들이 사법처리를 받으면 선량한 대다수 매니저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차가워진다. 매니저의 홍보와 마케팅을 통해 긍정적 이미지를 쌓고 숱한 팬을 얻게 된 스타들은 대중적으로 선한 인상을 주는 반면 매니저들은 그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파렴치한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 배우의 매니저는 이런 편견 때문에 결혼을 약속한 여성의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이 매니저는 “박봉에 시달리고 마치 ‘사람 장사’하는 사람처럼 비치니 누가 좋아하겠는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스타지만 그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쏴주는 것은 매니저의 몫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을 한다고 부도덕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비쳐지고 믿었던 스타에게마저 배신당할 때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고충을 털어 놓았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
사람 장사하는 ‘파렴치한’ 취급
한 연예인의 로드매니저. 잡일 등 업무강도가 높은데 비해 월급은 적다.
한 배우의 매니저는 이런 편견 때문에 결혼을 약속한 여성의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이 매니저는 “박봉에 시달리고 마치 ‘사람 장사’하는 사람처럼 비치니 누가 좋아하겠는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스타지만 그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쏴주는 것은 매니저의 몫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을 한다고 부도덕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비쳐지고 믿었던 스타에게마저 배신당할 때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고충을 털어 놓았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