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받아 놓고 ‘혼수갈등’ 티격태격
▲ 주공(왼쪽)과 토공 심벌마크 합성. | ||
한국토지주택공사법이 통과된 후 국토해양부는 주공과 토공 인사들을 주축으로 하는 설립사무국과 통합공사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한 후 통합 준비에 박차를 가해왔다. 그러나 본사 이전, 중복기능 조정, 인력 구조조정 등 핵심 쟁점들에 대한 양측의 이견은 쉽게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설립사무국의 한 관계자는 “워낙에 첨예한 사안들이라 10년을 넘게 끌어온 것 아니겠느냐”면서 “지금까지 주공과 토공의 입장 차를 확인하는 데만 시간을 보낸 것 같다”고 전했다.
통합 추진 작업이 이처럼 난항을 겪으리라는 것은 이미 예견됐던 바다. 특히 재무부실 문제가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주공(51조 8281억)과 토공(33조 9244억)의 부채는 합쳐서 85조 원이 넘는다. 부채비율은 440%를 기록했다. 이 문제에 대한 해법 없이 통합될 경우 ‘거대한 부실 덩어리’가 탄생하게 될 것이란 지적이지만 아직 뚜렷한 방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재무부실뿐 아니라 통합으로 가는 길엔 과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아직 국토해양부와 설립사무국 등은 별다른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주공과 토공에서 국토해양부를 향해 불만을 쏟아 내고 있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적극적으로 통합 준비를 주도해야 할 국토해양부가 양측의 눈치만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토해양부 측은 “통합을 위해 만든 설립사무국과 설립추진위원회에서 모두 납득할 만한 결론을 찾아서 내놓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주공과 토공이 이번 통합 과정을 두고 국토해양부를 한목소리로 비난하고 있긴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양측의 입장 차를 엿볼 수 있다. 우선 토공은 “국토해양부가 무리하게 통합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말한다. 통합이라는 상징적 효과만을 중시하고 정작 대책은 주먹구구식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토공의 한 관계자는 “현재 국토해양부 직원들은 그 무엇보다 10월 1일이라는 날짜 맞추기에 급급해 보인다. 좀 늦어지더라도 제대로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현재 토공 노동조합은 국토해양부 측에 재무대책위원회 구성, 통합작업 중간결과 공개 등 다섯 개 요구사항을 제출한 상태다.
토공 내부에서 “통합 지지를 철회해야 한다”는 강경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이유는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본격적으로 통합 준비가 시작된 후 토공 안팎에서는 이번 통합이 ‘주공 쪽에 유리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말이 끊이지 않았다. ‘통합공사가 결국 주택공사의 몸집만 불려주는 꼴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던 것이다. 특히 본사 이전지가 주공이 원했던 진주로 결정되고 조직 개편도 규모 비례로 이뤄질 것이라는 루머가 돌면서 이는 더욱 확산됐다. 그동안 조직 통폐합을 두고 인력이 많은 주공은 ‘인력 비율별 배분’을, 토공은 ‘일대일 배분’을 주장해 왔다.
토공이 재무부실을 문제 삼고 있는 것도 주공에 비해 상대적으로 손실이 적은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토공에서는 ‘부실에 대한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통합 이후 주공의 적자를 떠안을 수 있을 것이란 우려 때문이라고 한다.
주공은 이러한 토공 측 입장에 대해 “오히려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며 불쾌감을 나타내고 있다. 국토해양부가 합리적인 방안을 만들어 놓고도 ‘토공 달래기’에 급급한 나머지 그것들을 수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공의 한 관계자는 “지금 100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토공이 발목을 잡으면 국민들의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국토해양부는 어느 한 쪽의 눈치를 볼 것 없이 통합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그동안 주공은 내심 토공의 흡수통합을 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 측에서도 조직과 예산 면에서 우위에 있는 주공 중심의 통합을 검토했었다고 한다. 이를 간파하고 통합에 반대해오던 토공이 막판에 찬성으로 돌아서게 된 것은 주공의 사업들을 민간으로 이양할 경우 일대일 통합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합 과정에서 주공의 사업들을 당분간 유지시켜야 한다는 방안에 힘이 실리자 토공은 반발했고 국토해양부가 이에 대해 재검토에 들어갔다고 한다. 주공으로서는 ‘다 잡았던 물고기’를 놓친 셈이다.
이러한 주공과 토공의 비난에 국토해양부는 억울해하는 눈치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우리는 누구 편도 아니고 열심히 일만 하고 있을 뿐인데 양측으로부터 다 오해를 받고 있으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국토해양부는 그동안 진행한 용역 결과 등을 토대로 양측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최대한 개선해나간다는 방침이다.
통합 초대사장 누가 될까?
자산 105조 원에 달하는 ‘공룡’ 통합공사의 초대 수장자리에 누가 오를지도 관심거리다. 국토해양부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임원추천위원회를 구성, 8월 1일 공모에 들어갈 계획이다. 적어도 8월 중순에는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그동안 주공과 토공은 사장 자리를 놓고도 힘겨루기를 해왔다. 서울시청 균형발전본부장 출신인 이종상 토공 사장과 건설교통부 차관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경제2분과 인수위원을 지낸 최재덕 주공 사장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던 것. 그러나 어느 한 쪽에서 사장이 나올 경우 두 조직 간 갈등의 골은 더욱 패일 것이란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향후 예상되는 구조조정을 해나가는 데도 부적합할 것이란 관측도 있었다.
이 때문인지 정부 측 분위기는 외부 인사를 임명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은 듯하다. 여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일단 공모를 통해 접수를 받아봐야 하지 않겠느냐”면서도 “초대형 공기업에 걸맞은 인사가 사장 자리에 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사실이다. 정치인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현재 현대건설 사장을 지낸 이지송 경복대 총장과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 등이 사장 후보로 자천타천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에서는 맹형규 정무수석과 이재오 한나라당 전 의원 등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