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전의 기본 정신으로 일컬어지는 것이 ‘5R’이다. 존경(Respect) 상호성(Reciprocity) 문화의 반영(Reflecting Culture) 서열(Rank) 바른쪽(Right)이 그것이다. 12일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던 남북 간 당국회담이 무산된 것은 5R의 총체적 충돌로 빚어진 것이다.
북측은 남측의 수석대표의 급이 차관인 것에 불만을 표시하며 대표단 파견을 보류했다. 북측은 그들의 수석대표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이 상(相·장관)급이라며 남측의 수석대표로 통일부 장관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과 북은 국가의 조직이나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직급이나 격이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북한 국가원수의 호칭은 김일성은 주석, 김정일은 국방위원장, 김정은은 국방위 제1위원장으로 우리의 대통령과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김정일이 주석이라는 직함을 쓰지 않았던 것은 북한에서 주석은 김일성 하나뿐이라는 ‘지극한 효심’의 발로였다. 김정은이 막바로 국방위원장으로 호칭되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 일 것이다. 공식 호칭조차도 이런 인간적인 요소가 게재되는 체제와 직급을 맞추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정부가 북한의 노동당 통일전선부 산하 단체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서기국장을 우리의 차관급으로 간주한 것은 상호성의 측면에서 적절한 조치다. 북측이 남측을 상대할 때 과시해온 허장성세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도 필요한 조치다. 우리가 식량지원을 해주면 핵무기가 무서워서 조공을 바친다고 선전해온 그들이다. 남의 장관을 북에선 국장급이 상대한다는 것도 예의 그런 허장성세의 발로일 수 있다.
의전상의 충돌이 남북관계의 특수성에서 기인된 면이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외교상 의전에 대한 그들의 무지 탓도 커 보인다. 사실 북한의 김씨 3대가 서방세계와 외교적 의전을 갖추어 교류한 경험은 전무한 실정이다. 생전의 김정일도 외국방문은 중국뿐이었다.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은 그나마 그들이 서방의 의전을 근접해서 경험한 기회였을 것이다.
북한의 의전에 대한 무지는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의 정상회담 도중 김정일이 느닷없이 “내일 오찬을 여유 있게 하자”면서 회담의 하루 연장을 요청한 것이 대표적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특유의 순발력으로 “큰일은 내가 결정하지만 작은 일은 내가 결정하지 못 한다”고 받아 넘기자 그는 “대통령이 그런 것도 결정을 못 하느냐”고 말해 무지의 수준을 한껏 드러냈다. 당시 노 대통령은 다행히도 원래 일정대로 돌아왔다.
남북대화에서 원칙을 세우는 것은 필요하다. 대화하면서 도발하고, 합의한 것을 하루아침에 휴지로 만들기를 일삼아 온 저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버릇을 고쳐서 대화를 하는 방법도 있지만, 대화하면서 버릇을 고치는 방법도 있다. 처음 시도하는 대화라면 후자가 더 나은 방법이 아닐까?
한남대 교수 임종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