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위에선 손사래 물밑에선 발장구
▲ 테이프 누가 끊나 지난해 10월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IPTV 현지시찰 모습. 미디어법이 통과되자 재계에서는 통신 3사가 방송 산업 진출 영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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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누구도 선뜻 나설 수 없을 것이다. 득보단 실이 훨씬 많다.”
미디어법이 통과된 직후 한 대기업 관계자가 한 말이다. 그는 “대기업의 방송 진출 목적은 수익도 수익이지만 홍보효과 등 외적인 효과를 노린 것도 크다. 지금 참여할 경우 여론의 역풍을 맞아 이미지 추락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미디어법 추진에 사활을 걸고 있는 정부가 압력을 넣을 경우 총대를 멜 수도 있다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기업들 반응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은 미디어법이 정치·사회적으로 워낙 민감한 문제인 탓에 자칫 후폭풍에 휘말릴 수도 있기 때문인 듯하다. 부정적 여론이 거센 상황에서 일단은 관망하며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또한 수천억 원의 초기자금을 투입하고도 3~4년간은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점도 대기업들이 시큰둥한 이유다. 기존 지상파들과의 경쟁도 부담이 될 것이란 관측이다.
부정적 여론 탓 일단 관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대기업들은 방송 진출을 위한 사전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그 수는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방송 진출을 원했던 기업들이 제법 있다. 내부적으로 준비를 끝마쳐놓고 분위기만 좋아지면 바로 출사표를 던질 것으로 본다. 비록 수익성은 불투명하지만 방송산업을 돈으로만 환산할 수는 없다는 것이 대기업들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특히 KT SK텔레콤 LG텔레콤 통신 3사가 ‘영순위’로 거론되는 중이다. 이미 IPTV(인터넷TV) 사업을 통해 방송에 간접적으로 진출해 있어 진입이 비교적 수월할 뿐 아니라 미디어법 강행처리를 주도한 한나라당과 정부 등에서 통신업체들의 참여를 적극 유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통신 3사가 방송 경험도 있고 휴대폰 광고 등을 통해 다른 대기업보다는 국민들에게 친숙하기 때문에 거부감이 덜할 것이라는 판단하에 (통신업체들과) 접촉 중”이라고 귀띔했다.
통신 3사들이 IPTV에 전송되는 프로그램을 놓고 지상파 방송사들과 사사건건 갈등을 빚어왔다는 점도 방송 진출 가능성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그동안 통신업계에서는 “눈치를 봐가면서 빌려 쓰느니 직접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길이 열리기만 하면 지상파 방송사와는 거래를 끊을 것” 등과 같은 다소 과격해 보이기까지 하는 말들이 나오기도 했었다.
통신업체 중에서는 KT가 스타트 라인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평가다. 이에 대해 KT는 “주위에서 나오는 얘기일 뿐이다. 내부적으로는 검토한 적 없다”며 일축했다. 그러나 이를 곧이곧대로 믿기는 힘들어 보인다. 민영화됐지만 여전히 공기업 성격이 짙어 정부 정책에 보조를 맞춰야 할 뿐 아니라 이석채 KT 회장이 방송산업 참여와 미디어법 통과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회장은 지난 6월 24일 공개석상에서 “미디어법은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 정치적 해석은 곤란하다”며 기대를 나타내기도 했다.
지난 6월 1일 KTF와 합병한 이후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KT는 올해 초부터 방송 진출에 대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안팎에서는 ‘전담팀이 꾸려졌다’는 소문도 흘러나왔다. 이를 두고 당시 재계에서는 합병 이후 무선전화 및 IPTV 부문 등에서 라이벌 SK텔레콤과 펼칠 전면전에 대비한 기선제압용 포석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미디어법 통과 이후에도 KT는 통신업체 중 가장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7월 23일 KT의 한 고위 관계자가 유력 언론사 임원과 비밀리에 만난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KT가 단독 참여에 부담을 느끼고 신문사와 컨소시엄을 구성할 것을 점치기도 한다.
SK텔레콤은 KT에 비해 방송에 대해 소극적이다 못해 부정적인 기류마저 감지되고 있다. 공식적으로도 “논의된 바 없다”고 잘라 말한다. SK그룹의 한 관계자는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이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무선시장 점유율 유지에도 힘이 벅차 여력이 없다”고 털어놨다. SK텔레콤은 미디어법 통과 이후에도 아직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KT의 방송 진출이 가시화할 경우 SK텔레콤으로서는 모르는 척하기가 힘들 것이란 관측이다. 방송산업이 통신사들의 향후 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보이는 IPTV와 콘텐츠부문의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KT에 방송시장을 내주면 광고 및 마케팅에서도 열세에 놓일 수밖에 없다. 통신업계 지존 자리를 놓고 KT와 겨루고 있는 SK텔레콤도 이를 잘 알고 있을 터. SK텔레콤의 공식적인 부인에도 불구하고 방송 진출설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콘텐츠산업 성패도 걸려
LG텔레콤도 “일단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말을 아꼈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이번 미디어법 통과의 최대 수혜자로 LG텔레콤을 꼽기도 한다. KT와 SK텔레콤이 양분하고 있는 통신시장 구조를 깨트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LG텔레콤은 그동안 유·무선 시장 점유율 확대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IPTV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LG텔레콤이 KT와 SK텔레콤을 제치고 방송시장을 선점한다면 기존의 IPTV와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적지 않은 파괴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룹 차원에서도 LG텔레콤의 방송 참여에 대해 긍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LG그룹의 한 관계자는 “아직 정해진 것은 없지만 경영진이 이번 미디어법 통과를 좋은 기회로 보고 있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대폭적인 지원만 뒷받침되면 우리에게도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 관계자는 “KT와 SK텔레콤은 그동안 많은 혜택을 받아왔지 않느냐. (방송시장 진출이) 확정되면 우리가 피해자라는 것을 적극 부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