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소송’은 비자금 감추기 꼼수?
노재헌 씨와 신정화 씨가 결혼식을 올리는 모습. 일요신문 DB
해외로 떠나기 전 노 씨는 대학에서 신부가 될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의 장녀 신정화 씨를 만나게 된다. 당시 노 씨는 서울대 경영학부에, 신 씨는 기악부에 재학 중이었다. 교내 서클에서 만난 두 사람은 3년의 연애 끝에 1990년 5월 21일 청와대에서 백년가약을 맺었다. 하지만 그들을 둘러싸고 정략결혼이라는 소문도 끊이질 않았다.
결혼 뒤 두 사람은 국내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이듬해 노 씨는 박준규 당시 국회의장의 비서로 활동했으며 1994년부터는 민자당 대구 동구을 지구당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정치에 관심을 나타냈으나 1995년 노 전 대통령이 뇌물수수혐의 등으로 구속되자 모든 것을 버리고 신 씨와 함께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그곳에서 노 씨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1989년 미국으로 떠났던 노 씨는 스탠퍼드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를 취득했지만 이번엔 조지타운대의 로스쿨을 선택했다. 이후 노 씨는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해 법조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2000년 도세시앤드휘트니 로펌 변호사를 시작한 뒤 홍콩으로 건너가 세계 10대 로펌 중 하나로 꼽히는 화이트앤케이스 홍콩지사에서도 일하며 주로 기업경영자문 등을 맡았다. 한때 홍콩에서 ‘렉스 라피스’라는 컨설팅 업체를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또한 노 씨 스스로 나서 홍콩의 한인교민들을 모아 자선단체 ‘뷰티풀 마인드’를 설립해 수차례 자선공연을 펼친 경력도 있다.
그러나 2007년 노 씨는 홍콩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국내 법무법인 바른에 입사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법조인으로 조용히 살던 노 씨는 돌연 2011년 이혼소송을 진행하면서 구설에 휘말리기 시작했다. 우선 이혼소송을 제기한 쪽은 신 씨였다. 그해 3월 신 씨는 홍콩법원에 노 씨를 상대로 이혼 및 재산 분할, 양육권 청구 소송을 냈다. 사유는 상대방의 외도였다. 그러나 노 씨는 순순히 이혼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같은 해 10월 노 씨 역시 신 씨를 상대로 서울가정법원에 이혼 소송을 제기한 것. 한때 몸을 담았던 법무법인 바른 소속 변호사들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이혼과 함께 세 자녀의 양육권, 위자료 1억 원도 요구했다. 그 역시 이혼사유를 배우자의 외도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뒤부터 두 사람의 치열한 법정공방이 이어졌다. 신 씨 측은 노 씨의 이혼소송을 두고 “홍콩 법원에서 노 씨에게 재산내역 공개를 요구하자 이를 숨기기 위해 서울 법원에 소송을 낸 것”이라 주장하는 등 불똥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까지 튀었다. 신 씨 측의 설명에 따르면 노 씨의 재산에는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상당수 섞여 있었고 이를 보호하기 위해 노 씨가 이혼소송이라는 맞불을 놨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노 씨 측이 사돈에게 맡겼던 비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소송을 벌인 것이라 보기도 했다. 실제 지난해 6월 노 전 대통령은 자녀들이 결혼식을 올린 1990년 사돈인 신 전 신동방그룹 회장에게 건넨 비자금 230억 원을 찾아 달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검찰에 내기도 했다.
이처럼 각자의 집안까지 가세하며 지루한 법정공방을 벌인 두 사람은 지난해 7월 홍콩 법원으로부터 이혼확정 판결을 받았다. 홍콩법원은 신 씨의 손을 들어줘 두 사람의 이혼과 함께 친권은 공동으로 하되 양육권은 신 씨가 갖는다고 판결했다. 이에 불복한 노 씨는 국내에서 재판을 이어가다 결국 지난 5월 항소를 포기하면서 이혼을 확정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마무리된 상황은 아니다. 신 씨가 제기한 재산분할 소송은 홍콩 법원에서 여전히 심리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노 전 대통령이 제출한 진정서에 대한 검찰의 조사도 남아있다. 자칫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들통 나거나 거액의 재산을 내놓아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르는 것.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노 씨는 별 다른 일을 하지 않은 채 누나 소영 씨가 설립한 한중문화센터에서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