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바람 거셀 땐 ‘’파도타기‘’도 한 방법
▲ 로이터/뉴시스 | ||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9월 17일 기준 국내 주식형펀드에서 해지된 금액은 4022억 원으로 올 들어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5월 30일 3433억 원 이후 처음으로 4000억 원대를 돌파한 것이다. 특히 국내 주식형 펀드의 월간 기준 하루 평균 순유출액은 이달 들어서는 1091억 원으로, 통상 ‘펀드런’으로 규정하는 1000억 원대를 넘어섰다. 펀드 환매가 본격화된 지난 4월의 하루 평균 순유출액 157억 원은 물론, 비교적 환매가 증가한 7월 419억 원, 8월 777억 원과 비교해도 그 차이가 확연하다.
2002년 이후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대량 순유출이 이뤄진 사례는 2003년 3월~2004년 9월에 3조 9430억 원, 2006년 12월~2007년 4월에 4조 6170억 원 등 두 차례였으며, 이번 유출 규모는 이러한 경우를 훌쩍 넘어선다.
현대증권 분석에 따르면 코스피지수가 1300~1500p선에서 움직인 2002년 이후 펀드에 들어온 자금 중 지난 4월 이후 유출된 자금의 비율은 36.8%에 달했다. 지수 1500~1600p선에서는 93.2%였으며, 1600~1700p선에서도 46.6%가 유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증시 급락으로 손해를 본 개인투자자들은 펀드 환매를 단행하면서 증시 상승 수혜에서도 소외된 셈이다. 따라서 최근 증시 상승으로 외국인들의 배만 불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낳고 있다. 2010년 경기회복이 본격화할 것으로 관측되면서 주식시장도 올해보다 추가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라 제시되고 있다. 이에 외국인들도 전반적인 매수세를 이어가고 있어 코스피지수는 추가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개인투자자들의 펀드 환매는 멈추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주식형 펀드 전체 설정액 중 절반에 이르는 30조∼40조 원이 현 지수대인 1700p선 이상에서 설정됐기 때문에 지수가 오를수록 환매가 가속화되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환매하면 손해라고 충고했다.
오대정 대우증권 자산관리컨설팅연구소 팀장은 “코스피지수 1700p선 이상에서도 펀드 환매는 계속 나올 것”이라며 “본전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1700p선 이상에서 들어왔던 투자자들의 3분의 1 정도는 빠져나가야 펀드런이 잦아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대열 하나대투증권 자산관리팀장은 “최근까지의 장세를 보면 외국인은 낙관론을 바탕으로 계속 사고 국내 투자자는 비관론을 토대로 계속 팔았는데, 결국 외국인이 계속 이기고 있다”면서 “펀드를 환매해도 금리가 낮아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 상황에서 추가 상승 기대감이 있다면 환매를 늦추는 전략이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가 터진 지 1년이 지나면서 수익률을 만회한 펀드 수익률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남겼다. 공포에 펀드를 던져버린 투자자와 참고 기다린 투자자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렸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기 직전인 2008년 9월에 국내 일반 주식형 펀드에 가입한 뒤 상황이 심각하게 흘러가자 같은 해 10월 말에 환매를 결정했다고 가정했다면 이 기간 수익률은 마이너스(-) 32.41%였다. 지난해 10월 27일은 코스피지수가 938.75p로 최저점을 기록한 날이다. 비운의 러시아펀드는 -56.89%라는, ‘반 토막’ 성적표를 기록하는 등 한 달 보름새 수익률은 전 유형을 막론하고 모두 마이너스였다.
반면 2008년 9월에 가입한 뒤, 펀드 계좌를 열어보지 않고 올 9월 초까지 1년을 견뎠다면 국내 일반 주식형 펀드의 경우 18.49%의 수익률을 올릴 수 있었다. 공포를 이기고 참았던 자만이 플러스 수익률이라는 열매를 딸 수 있었던 것이다.
최근 펀드시장에서 개미는 빠지는 데 반해 연기금이나 기관, 거액자산가 등 ‘큰손’들이 들어오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큰손들이 자산운용사나 투자자문사와 일대일 계약을 맺고 자금을 운용케 하는 ‘투자일임’도 늘어나는 추세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 들어 21일까지 국내 공모 주식형 펀드에서 2조 67억 원이 순유출됐지만 국내 사모 주식형 펀드로는 같은 기간 574억 원이 순유입돼 대조를 이뤘다. 사모 주식형 펀드 투자자는 개인이 아닌 연기금과 기관 등이다.
앞서 사모 주식형 펀드에는 지난 2분기 1조 2372억 원의 자금이 빠졌다가 7월에는 1087억 원이 들어왔고, 8월에도 588억 원이 빠지는 데 그쳤다. 공모 주식형 펀드에서 7월에 1조 721억 원, 8월에 1조 5735억 원이 빠지는 등 1조 원대 순유출이 이어진 것과 대조적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개인 투자 자금은 지수 상승에 대한 부담으로 계속 나가고 있는 반면, 향후 시장을 좋게 보고 있는 큰손들의 자금은 계속 들어오고 있다”며 “아직도 지수는 전고점을 20% 넘게 남겨놓고 있는 상황인데, 2년간 기다려서 원금을 회복했다고 갖고 있는 펀드를 굳이 해지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고 조언했다.
최근 코스피지수 급등과 펀드런에 따라 펀드업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자산운용업계의 ‘투톱’인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삼성투신운용의 희비가 엇갈려 미래에셋운용이 펀드 수탁고에 이어 순자산총액(NAV)도 1위로 올라선 것이다. 미래에셋운용은 지난 21일 기준 펀드 설정액 57조 6502억 원, 순자산 50조 8268억 원으로 삼성투신운용의 48조 8224억 원, 48조 7973억 원을 모두 앞섰다. ‘주식형 펀드 절대강자’ 미래에셋과 ‘인덱스펀드 대표주자’ 삼성투신은 수탁고 측면에서는 업계 1위와 2위를 치열하게 다퉜지만 NAV에 있어서는 삼성투신이 1위 자리를 줄곧 유지해왔다.
미래에셋은 순자산 기준으로 2007년 4월부터 10월 사이 잠깐 삼성투신을 앞선 적이 있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되고 전 세계 증시가 급락하면서 2008년 10월 8일 삼성에 1위 자리를 내준 뒤 좀처럼 회복하지 못했다. 수탁고는 지난 6월 9일 미래에셋이 삼성투신을 앞지르고 나서 1위 굳히기에 들어가는 모양새다.
류민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