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성별에 따라 방 쓰라는 요구에 진정 제기…인권위, 교육감에 “성소수자 포용 정책 마련” 권고
인권위는 지난 10월 23일 서울시교육감 등에게 성소수자 학생이 학교 행사에 참여하는 데 불이익이 없도록 학교 내 성별 분리시설 이용 관련 가이드라인 마련, 성소수자 학생의 학업 수행의 어려움에 대한 정기 실태조사 실시, 성소수자 학생에 대한 상담 등 지원 강화 방안 마련을 권고했다고 19일 밝혔다.
지난해 서울의 A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진정인 B 씨는 트랜스젠더 남성(Female to Male, FTM)으로, 학교가 주관하는 2박 3일 수련회에 참가하기 위해 수련회 담당 교사, 교감 등과 상담했다. 트랜스젠더는 남성은 여성으로 태어났으나 스스로를 남성으로 인식한다.
B 씨는 학교 측이 "법적 성별이 여성이므로 여학생 방을 쓰지 않으면 수련회에 참가할 수 없다"고 해서 결국 수련회에 참가하지 못했으며, 이듬해인 올해 3월 A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B 씨는 자퇴하기 전인 지난 2월 A 고등학교장을 상대로 "트랜스젠더에 대한 차별"이라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A 고등학교장(피진정인)은 "법적 성별이 남성으로 정정되지 않은 B 씨가 남학생 방을 사용할 경우 B 씨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의 성적 권리 침해와 더불어 성범죄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주장했다.
B 씨는 차선책으로 독방 사용을 요청했으나 A 고등학교장은 "다른 학생들에게 (독방 사용의) 정당성을 납득시키기가 어려웠으며, B 씨의 부모도 수련회 참가를 원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성소수자 학생의 처우에 관한 지침이 없었던 A 고등학교는 교육청과 교육부에 여러 차례 상황을 전달하고 지침을 문의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유사한 사례가 없었다"면서 학교 측에 "법 테두리 내에서 사안을 처리할 것"을 요청했다.
인권위 차별시정위원회는 "학교 수련회 참가는 학교 구성원으로서의 권리이자 소속감과 학업 성취를 높이기 위한 교육활동의 일환"이라면서 "이러한 활동에 성소수자 학생도 동등하게 참여할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 공교육의 역할이며 의무"라고 봤다.
인권위는 특히 트랜스젠더가 자신이 인식하거나 표현하는 성별을 인정받지 못하고 혐오와 괴롭힘의 대상이 될 것을 우려하는 등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B 씨가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학교 활동에서 스스로 배제될 수밖에 없었다고 판단했다.
인권위 차별시정위원회는 B 씨가 수련회에 참가하지 못한 것과 관련 "외형적으로는 본인 또는 부모에 의한 것으로 보이나 실질적으로는 다른 구체적인 대안 검토 없이 법적 성별만으로 진정인을 처우한 결과"이며 "이는 서로 다른 것을 자의적으로 같게 취급하는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이어 "B 씨가 설령 수련회에 참여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성별 정체성을 숨기거나 부인하여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면서 "이는 개인의 자아 발달에도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이를 종합해 "A 고등학교가 다른 대안을 마련하지 않은 채 B 씨에게 자신이 인식하는 성별과 다른 성별의 시설을 이용하게 한 것은 합리적 이유 없이 교육시설의 이용 등에서 진정인을 배제한 것"이라면서 "이는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에서 정한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더불어 "수련회 참여 배제를 결정한 것은 A 고등학교장이지만 교육 당국의 구체적인 정책이나 지침이 미비한 상황에서 일선 학교가 독자적으로 관련 대안을 마련하기는 어렵다"면서 서울시교육감에게 "성소수자 학생들이 직면한 어려움을 파악해 다양성이 보장되고 포용적인 교육활동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