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난 가계부를 어찌할꼬’
▲ 그때 괜히 건드렸나… 국정감사를 앞두고 기획재정위와 기획재정부 간 팽팽한 신경전이 벌이지고 있다. 사진은 윤증현 장관. | ||
기획재정위 소속 국회의원들과 보좌관들은 무엇보다도 재정부가 제대로 된 자료를 주지 않고 있다는 점에 강한 불만을 나타내며 칼을 벼리고 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과거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 때는 정보공개를 원칙으로 해서 국정감사 때 자료 협조가 원활하게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 웬만한 자료 요청에 대해서는 ‘없다’거나 ‘결재가 필요하다’며 자료를 내놓지 않고 공무원들이 이메일까지 바꾸는 등 민감한 모습”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자료를 제공받지 못해 통계청 등에서 발표한 경제 통계자료를 가지고 경제전반을 분석하고 있다. 국정감사 때 이러한 자료 비협조에 대해서 강력하게 따질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분위기는 여당인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기획재정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과거에 비해 보내온 자료의 내용이 부실한 것은 물론, 자료가 넘어오는 시간 자체도 늦어지고 있다. 이래서는 제대로 된 분석이 불가능하다”면서 “관세청과 국세청 등은 한참 전에 자료를 보내왔음에도 재정부만 자료를 주는 시간을 미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 기획재정위가 국정감사에서 타깃으로 삼을 부처가 재정부밖에 없다는 점도 재정부 관료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기획재정위가 과거 재정경제위로 불릴 당시만 해도 국내 금융에 대한 감사권 일부를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국정감사 타깃이 금융위원회 등 다른 부처로 분산됐다. 재정부가 거시경제를 다루는 탓에 속된 말로 ‘꺼리’가 되는 자료를 만들기 힘든 점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정부부처 개편과 국회 상임위 재조정으로 국내 금융 관련 사항이 모두 국회 정무위로 넘어가면서 사정이 바뀌었다. 기획재정위 소관에 재정부를 빼면 무게가 있는 부처가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또 다른 기획재정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실 관계자는 “국세청과 관세청 등이 기획재정위 소관으로 되어 있지만 나올 자료가 빤한 데다 무게가 떨어진다. 재정부의 각종 정책 등을 다루지 않으면 국정감사 기간에 자료를 내놓아봤자 언론에 보도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지난해 재정부가 확장적 재정정책과 감세, 희망근로 등 각종 경제정책을 쏟아냈던 만큼, 다룰 내용이 적지 않다. 특히 악화된 재정건전성에 대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한국은행법 개정안을 두고 기획재정위 소속 일부 의원들 사이에 재정부에 대한 앙금이 남아 있는 점도 재정부 관료들에게는 부담이다. 한국은행에 금융기관 조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한국은행법 개정안은 지난 5월 국회 기획재정위 소위를 통과했지만 상임위 전체회의에서 일부 의원들과 재정부의 반대로 처리가 미뤄졌다. 당시 재정부는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검토한 뒤 9월 정기국회에 연구결과를 제출하겠다며 처리 연기를 요구했다.
이번 정기국회에 재정부는 “한국은행법 개정을 지금 추진할 경우 부처 간 갈등이 예상되는 만큼 금융위기가 극복되는 내년 이후에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연구결과를 제출했다. 은행에 대한 감독권을 다시 가져오려는 기획재정위 의원들의 ‘소망’을 짓밟은 셈이다. 당연히 의원들의 재정부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 박종근 한나라당 의원은 기획재정위 회의에서 “금융위기로 은행건전성 감독이나 금융위험 관리 체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컨센서스가 전 세계적으로 형성돼 있는데 재정부는 다른 나라에서 결론을 내면 그때 손을 쓰자는 것이냐”고 지적했고, 김성식 한나라당 의원도 “재정위가 수개월간 10여 차례 논의하고 공청회도 거친 안에 대해 재정부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식으로 우를 범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가뜩이나 기획재정위 의원들이 재정부에 대해 칼을 갈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 예산정책처가 입지를 넓혀나가는 것도 재정부 관료들에게는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다. 예산정책처는 그동안 재정부가 추진해온 감세 정책을 놓고 충돌이 잦았다. 재정부가 감세에 따른 세입감소분이 향후 5년간 33조 원이라고 설명한데 반해 예산정책처는 이보다 세 배 가까이 많은 90조 원이 줄어들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당시 재정부는 윤영선 세제실장이 예정에 없이 기자실에 내려와 이에 대한 해명을 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러한 국회 예산정책처가 국정감사를 앞두고 ‘2004∼2008 공기업 재무현황’과 ‘2009년도 국가주요 쟁점사업’에 이어 두 권으로 된 국정감사 참고자료 책자를 며칠 사이에 줄줄이 발간, 재정부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 의원들에게 ‘재정부의 약점은 여기’라는 것을 꼭 집어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예산정책처는 이들 책자를 통해 재정부의 아킬레스건인 재정건전성 문제를 다시 한 번 거론한 것은 물론, 재정부가 추진의사를 분명히 한 소득세 및 법인세 인하에 대해 유보를 주장했다. 또 재정부가 상당한 결과를 이뤘다고 내세우는 성과중심 예·결산에 대해서는 자료의 신뢰가 크게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예산정책처는 지난해 집행한 유가환급금에 대해서는 2008년도 실직 은퇴 폐업 등으로 경제활동을 하지 못한 계층이 빠지는 등 지급기준이 모호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 이상 조짐을 보이는 주택가격 상승에 대해 강남 일부 지역의 문제라며 일부 규제정책으로 안정을 노리는 재정부와 달리, 전반적인 주택가격 상승 우려를 지적하며 금융규제 추가와 함께 세제, 주택 공급확대, 부동산 관련제도 정비 등 종합적 대책 마련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처럼 국회가 전 방위적으로 재정부를 압박하는 모양새를 보이자 재정부 관계자들은 긴장하고 있다. 한 재정부 관료는 “국회 요청 자료를 준비하느라 시간이 걸리는 것이지 시간을 끌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국정감사가 보통 때보다 한 달 가까이 미뤄진 것 등도 영향을 미쳤다”면서 “국정감사가 행정부처에는 항상 껄끄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올해는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다른 때보다 많은 정책을 행한 탓에 지적받을 내용이 많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재정부 관계자는 “국정감사가 다가오면서 법인세 및 소득세 인하, 감세 정책, 한국은행법 개정안 등 국회 기획재정위 의원들과 이견이 많았던 점이 부담이 되기는 한다”면서도 “하지만 재정부가 지난 한 해 동안 취해왔던 정책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기 침체 탈출을 이끌어 왔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준석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