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누군지 모르시겠지요?”
낯이 익긴 익었다. 그런데 누군지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저는 병무청에서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을 검사한 담당 의사였어요. 이제 기억이 나세요?”
“아, 그렇구나. 기억나요. 그때 고생하셨죠.”
그는 지금은 병무청 의사를 그만두고 강남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그와는 반대로 서울시장 아들의 병역특혜 문제에 대해 아직도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의사가 있었다. 돈까지 걸겠다며 시장 아들의 몸을 사행성 도박의 수단으로 변질시키고 있다. 의사도 편이 갈리고 의견도 상반됐다.
유일한 경험자인 내가 <일요신문>에 진실을 쓰고 인터넷에 올렸다. 엄청난 공격이 왔다. ‘오천만 대한민국 국민의 수준을 개똥으로 보고 쓴 싸가지 없는 글’이라는 비난부터 시작해서 융단폭격을 받았다. ‘종북 좌익세력의 나팔수 박원순을 변호하는 걸 수치스럽게 생각하라’고 하면서 ‘좌익 프락치’라고 매도하기도 했다.
댓글들을 보면서 발견한 사실은 진실이 그들의 머릿속에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있는 것은 원인 모를 증오와 미움이었다. 박 시장을 미워하니까 그 변호사인 나도 죽일 놈인 것이다. 논리나 증거, 그리고 진실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미움이 우리 사회 곳곳에 짙게 깔려있다. 30년 가까이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다닌 법정 안을 보면 원초적인 미움이 가득 차 있다. 미운 상대편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모략도 서슴없이 제기한다. 증인도 편을 갈라 어떤 거짓말도 주저 없이 한다. 진실보다는 누구 편인가가 중요하다. 진실과 객관성을 생각하면 배신자가 되기 쉽다.
그러면 법정 밖의 세상은 어떨까. 광우병 파동 때 미국 산 쇠고기만 먹으면 98%가 광우병에 걸려 죽는다는 허위 과장 방송이 있었다. 즉각 광화문의 밤은 붉은 촛불의 바다를 이루었다. 압수된 방송작가의 이메일에는 “이명박에 대한 증오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라고 적혀 있었다. 미국 쇠고기 먹고 죽은 사람이 없는 걸 보면 광우병파동도 미움이 원인이다.
사랑을 보급해야 할 마지막 보루인 종교계는 어떨까. 얼마 전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장의 성매수 의혹사건을 맡은 적이 있었다. 실체는 별게 아니었다. 목사가 노래연습장에 끌려가 가곡 세 곡을 부른 게 전부였다. 그게 유흥업소에 가서 성매매를 했다는 음모로 만들어졌다. 배경은 역시 교단 대표에 대한 질시와 미움이었다. 미움이 대중을 동원하는 능력은 대단하다. 즉각 많은 성직자들이 들고 일어나 대상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다. 미움은 음모를 진실로, 진실을 가짜로 만든다. 음모가 사실이기를 바라는 비틀린 마음들이 황사같이 세상을 뒤덮고 있다. 편을 갈라 패거리에서 씌우는 색안경을 벗어 던져야 한다. 미움과 증오는 악마의 색깔이기 때문이다.
변호사 엄상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