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엄친아’는 왜 노총각일까
올해 마흔한 살인 중소기업에 다니는 A. 서울 소재 K 대학을 졸업한 그는 어쩐 일인지 결혼에는 영 관심이 없다. 아니, 관심이 없다는 말도 부족할 정도다. 아무리 선이 들어오고, 소개팅 제의를 받아도 돌부처마냥 꿈쩍도 하지 않는다. A의 관심은 오로지 하나. 사회인 야구에 빠져서 동호회 사람들과 하루가 멀다 하고 야구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대기업에 다니는 연구원인 B 역시 마찬가지다. Y 대를 졸업한 후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마흔두 살의 노총각인 그는 좋은 집안에 재력까지 겸비한 그야말로 엄친아다. 그런데 그 역시 장가에는 통 관심이 없다. 직장 동료들이나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골프를 치거나 술을 마시는 등 놀기에 바쁘다. 오히려 결혼한 친구들이 자유로운 B를 부러워할 정도. 반대로 가정에 매인(?) 친구들을 보면서 B는 다짐한다. ‘역시 장가는 안 가거나, 늦게 가는 게 좋아, 아무렴~’
강남의 작은 건물에서 부모님과 함께 거주하고 있는 C는 무직이다. 나이는 벌써 40대 중반을 바라본다. C는 옥상에 마련한 자신만의 공간인 옥탑방에 틀어박혀서 하루 종일 무위도식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런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 취직할 생각도, 그렇다고 결혼할 생각도 없는 C는 “다 귀찮아요. 이렇게 혼자가 편해요”라고 외치면서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
이 셋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시쳇말로 ‘찌질남’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결코 능력이 없어서 노총각이 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스펙도 화려하고, 직장도 번듯하고, 또 재력도 어느 정도 되는 그야말로 ‘괜찮은’ 노총각들이다. 이런 노총각들을 볼 때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렇게 괜찮은데 왜 여태 장가를 못 간 걸까?’
이 질문은 사실 처음부터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들은 장가를 ‘못’ 간 게 아니라 ‘안’ 간 게 아닐까. 내가 아는 이런 부류의 ‘괜찮은’ 노총각들은 대개 능력만 있다면 언제든 결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에 똘똘 뭉쳐 있다. 조금이라도 더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아니면 영원히?) 이들은 지금 현재를 온몸으로 즐기면서 하루하루 결혼을 미루고 있다.
얼마 전 알게 된 동생뻘 되는 어떤 남자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노총각들은 크게 세 가지 부류가 있다나. 첫째, 정말 남성적인 매력이 없어서 노총각이 된 경우다. 말인즉슨, 여자들에게 전혀 어필하지 못하는 외모와 성격, 그리고 조건들 때문에 여자들에게 외면당해 노총각으로 남은 경우다.
둘째, 여자를 만나면 그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눈에 훤히 다 보여서 노총각이 된 경우다. 이런 남자들에게 여자들은 이미 시시한 존재다. 몇 마디만 나눠 봐도 이 여자가 돈만 보는 속물인지, 내숭을 떠는 여우인지, 나와는 잘 맞을지 안 맞을지 등등 마치 투시능력이라도 갖춘 듯 다 안다고 생각(혹은 착각)한다.
셋째, 주위의 유부남들 탓에 결혼생활이 뭔지를 이미 다 알아버린 경우다. 이른바 간접 결혼을 해도 골백번은 더한 것이다. 이들에게 결혼은 끔찍한 지옥의 문과도 같이 느껴진다. 이러니 숙제를 미루듯 자꾸만 미루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일단 나부터도 그러니 말이다.
조금은 외로우면서 자유를 누릴 것이냐, 자유를 포기하고 덜 외로울 것이냐. 이 선택의 기로에서 오늘 하루도 이렇게 간다.
김태은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