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고개’ 넘어야 무지개 보인다
▲ 주요 증권사들의 내년 코스피 전망치가 최저 1400에서 최고 2200선까지 크게 벌어졌다. | ||
내년 증시를 비관적으로 내다보는 증권사들은 그 이유로 ‘짝수 해 징크스’를 첫 번째로 꼽고 있다. 짝수 해 징크스란 2000년 이후 짝수 해에는 경기 회복국면이 이어졌지만 오히려 주가가 약세를 보이는 현상. 이 같은 시차는 증시가 실물경제와 동행하기보다는 기대를 반영해 선행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2010년에도 지난 네 번의 짝수 해 징크스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정보기술(IT) 거품으로 2000년에는 연간 경제성장률이 8.5%에 달했지만 거품이 꺼지면서 2001년 4.0%로 ‘반 토막’이 났다. 반면 코스피지수는 2000년 50.92% 급락했지만 2001년 경기침체기에는 오히려 37.47% 반등했다.
2003년 카드사태 여파도 비슷한 양상이다. 2003년에 내수가 얼어붙으면서 성장률이 2.8% 떨어졌지만 코스피지수는 30% 가까운 상승세를 나타냈다. 이듬해인 2004년 경제성장률은 4.6%에 달했다. 올해도 경제성장률이 0% 안팎에 그치겠지만 내년 성장률은 4%대 중반으로 높아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경기선행지수는 올 연말께 정점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실물경제가 꾸준히 나아지더라도 증시는 ‘급등’장을 재현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구희진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내년 코스피지수 고점으로 1850을 제시하면서 “4~5월께 고점을 찍은 뒤 조정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하반기에는 1500과 1850의 박스권에서 제한적으로 반등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결국 내년 증시에서는 연간 기대 수익률이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조한 양상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내년 증시 약세론의 두 번째 이유는 글로벌 경기선행지수가 하락세로 돌아서고 출구전략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신영증권은 내년 코스피지수 범위를 1400~1980선으로 제시하면서 초반과 종반이 강하고 중반은 상대적으로 약한 ‘낙타 등’ 모양을 띨 것으로 전망했다.
분기별로 보면 내년 초반까지는 글로벌 경기선행지수의 상승에다 공장 가동률 상승에 따른 미국 기업이익의 증가, 신축적 통화정책 지속으로 강세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중반 이후 국내외 실업률이 정점에 이르면서 출구전략 추진에 대한 우려가 고조돼 시장은 약세로 전환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SK증권도 “내년에는 증시 기대수익률을 낮춰야 한다”면서 “다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2~3년 상승 사이클의 초기 국면”이라고 전망했다. SK증권 측은 “내년에는 경기와 정책의 불확실성 등으로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며 “호시우보(虎視牛步) 전략으로 자산을 배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호시우보는 호랑이처럼 예리하게 주시하되 실제 행동은 소처럼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 SK증권 측은 특히 업종과 종목별 차별화가 두드러질 것이라며 시황이나 거시경제보다 종목별 흐름에 주목할 것을 주문했다. 자산시장에서도 ‘고위험 고수익’ 투자 패턴에서 ‘저위험 저수익’ 구도로 바뀔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 증시가 올해의 상승추세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본 IBK KB투자 푸르덴셜투자증권 등 낙관론자들도 있다. 하지만 지난해와 달리 매우 신중한 모습이다. IBK투자증권은 내년 코스피지수 폭을 1620~2070으로 예상했다. 오재열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이사는 “코스피지수 적정 주당순자산배율(PBR)을 1.3~1.7배로 감안, 내년 지수 목표치를 산출했다”며 “하단(1620) 지수대는 주가수익배율(PER) 10배 수준이어서 그 이하는 과도한 하락”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 경제 정상화로 기업매출이 확대되고, 지분법 이익(어떤 회사의 지분투자를 통해 얻은 이익)이 증가하면서 글로벌 경쟁력이 강화돼 사상 최대 기업실적이 예상된다”면서 “기업가치(밸류에이션) 매력이 확대되므로 주식을 사야 할 시점”이라고 보탰다.
오 이사는 “내년 코스피지수는 모건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셔널(MSCI) 선진국지수 편입 기대가 높아질 2분기 중반에 연중 최고를 기록, 상고하저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KB투자증권은 “내년 상반기에 경기 회복 속도가 둔화되겠지만 하반기에는 2011년의 회복에 대한 기대 때문에 증시 또한 되살아날 전망”이라며 예상 지수범위를 1400∼2100으로 설정했다. 내년 초에 있을 일시적 경기 둔화는 같은 해 2∼3분기에 주식시장에 좋은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금리 인상에 대한 우려가 단행 이전까지 시장에 반영되고 기업 구조조정 과정의 불확실성이 증시에 가장 큰 위협이 될 것이라는 게 KB투자증권의 분석이다. 내년 코스피지수가 약세를 보이면 주식을 사라는 조언이다.
푸르덴셜투자증권은 기업 실적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도 확대될 전망이어서 내년에 지수가 2045∼2200까지 상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금리인상과 전 세계적인 수요 회복의 미비, 환율 하락으로 인한 우리 기업의 수익성 악화 같은 부정적 요인도 있다며 지수가 1571∼1703 범위에서 머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내년 증시가 변동성이 커지면서 코스피지수가 조정을 받을 경우를 감안해 유망업종과 추천 종목은 시가총액 대형주에 집중됐다. 전문가들은 올해 한국 시장을 주도했던 정보기술(IT)과 반도체가 내년에도 주도업종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선적인 관심업종으로 △상장기업 실적 개선을 주도하는 IT와 반도체 △이익증가율 상위 업종인 철강 은행 건설 △내수소비 회복 및 환율하락 수혜 기대주인 항공 여행 보험 음식료 정유 등을 꼽았다. 최우선 추천종목으로는 삼성전자 포스코 우리금융 GS건설 LIG손보 대한항공 하나투어 CJ제일제당 GS 롯데쇼핑 현대차 삼성전기 등을 내놨다.
류민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