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흐린 ‘미꾸라지들’ 설 땅 없다
홍명보 감독이 내분설에 휩싸인 국가대표팀을 어떻게 하나로 뭉치게 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작은 사진은 2009년 U-20 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홍명보. 이상민 인턴기자
홍 감독이 부임하면서 자연스레 축구 담당 기자들의 관심은 코칭스태프의 구성과 7월 20일부터 국내에서 개막할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선수권에 나설 홍명보 1기 멤버들이었다.
이 와중에 이동국(전북 현대)이 화두에 올랐다.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을 마치고 지금은 제2의 고향과 같은 전북에 돌아간 전임 사령탑 최강희호 체제에서 2% 아쉬움을 남기면서 영웅에서 역적으로 내몰린 그였기에, 이동국이 첫 출항을 알릴 홍명보호에 포함될지 여부가 엄청난 관심을 끌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동국의 합류는 당장 어려워 보인다. 홍 감독이 정식 부임하기에 앞서 축구협회 기술위원회(위원장 황보관)가 추린 40명의 예비 엔트리에 이름이 빠졌다는 소식이 여러 스포츠 매체들의 보도를 통해 전해진 것이다. 대표팀 선임 기자회견에 참석한 홍 감독도 “동아시아 선수권에 나설 23명의 최종 명단은 예비 엔트리에서만 뽑을 것”이라고 선언한 터라 센추리클럽(공식 A매치 100회 이상 출장) 가입을 불과 한 경기 앞두고 이동국의 전진은 잠시 멈출 가능성이 높아졌다. 기술위원회가 예비 엔트리에 발탁된 선수들 면면 공개를 극구 꺼렸던 가운데 변수도 나올 수 있었지만 전북과 최 감독이 이동국의 배제 사실을 직간접적으로 알리면서 이동국의 예비 엔트리 탈락은 어느 순간 기정사실화됐다.
하지만 동아시아 선수권의 특성을 살필 필요가 있었다. 동아시아 축구의 오랜 라이벌인 일본의 선언에서 이 대회의 성격을 알 수 있다. 자국 프로축구 J리그에서 뛰는 젊은 선수들을 위주로 출전시키겠다는 뜻을 일찌감치 공표하면서 실험을 선언했다. 물론 한국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홍 감독은 동아시아 선수권 우승을 목표로 하기보다 철저히 실험 위주로 대회를 소화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그동안 태극마크와 크게 인연을 맺지 못했던 새내기들을 상당수 발굴해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해 보겠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6월 19일 열렸던 기술위원회가 끝난 직후 축구협회는 국내 각 구단들에게 일부 선수들의 영문 프로필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여기에는 과거 대표팀에서 활약한 경험이 적어 축구협회가 보유한 대표팀 선수단 데이터베이스(DB)에 없는 인원들로 한정됐고, 20대 초반부터 많게는 30대 초중반까지 다양했다고 알려진다.
이런 마당에 이동국이 빠진 건 크게 놀랄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더욱이 일각에서 제기한 ‘이동국이 브라질월드컵 출전도 어려워졌다’는 것도 아니다. 이동국은 이미 한국 축구 최고 스트라이커로 명성을 떨쳐왔고, 언제든 중용될 수 있다. 검증이 끝났다는 의미다. 다만 1979년생이란 점이 다소 걸림돌이 될 수도 있겠지만 홍 감독 본인도 30대 초중반의 나이로 2002한일월드컵에 출전, 4강 신화를 진두지휘한 바 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선수 길들이기 차원에서 대표팀에서 탈락시켰을 때조차 포기하지 않고 철저히 실력으로 다시 대표팀에 복귀했다.
홍 감독은 특정 선수에 연연해하는 타입은 아니다. 정말 필요하다면 외압이나 여론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선택하고 그 결과에 책임진다.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병역 논란에 휩싸였던 박주영(아스널)을 18인 대회 엔트리에 발탁한 사실만 봐도 그렇다. 이동국은 “(예비 엔트리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초심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실력만 유지하고,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홍 감독도 충분히 이동국의 발탁을 검토할 수 있다. 어쩌면 자신처럼 한 순간의 아픔에 굴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는 이동국의 모습을 홍 감독이 기대하고 있을 수도 있다.
# 세대교체 & 뒤바뀔 해외파 패러다임
이동국
홍 감독은 원칙주의자다. 자율도 보장하지만 또 그만한 책임도 요구한다. 규율과 규칙이 상당히 엄격하다. 대표팀을 맡으면서 홍 감독은 내내 ‘팀’을 강조했다. 선수들이 나 혼자 대신 오직 팀을 위해 살고 죽기를 원한다. 만약 여기서 어긋나는 선수가 있다면 홍명보호에 발탁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요즘 한국 축구의 ‘대세’라는 해외파, 특히 유럽파 상황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몸은 유럽 무대에 있다고는 해도 크게 부각되는 이들은 일부에 불과하다. 꾸준히 출전 기회를 잡으며 실전 감각을 유지하고 고른 활약상을 전한 이들도 많지 않다. 오히려 최근 도마에 오른 대표팀 내분설의 중심에 있던 선수들은 대부분 유럽 리거들이었다. 당연히 홍 감독은 대대적인 수술을 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홍 감독의 성향을 잘 아는 많은 축구인들은 “메시나 호날두에 버금가는 수준이 아니라면 분위기를 흐트러뜨리는 선수는 살아남을 수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고 단언한다.
오히려 음지에서 묵묵히 제 몫을 하는 선수들이 중용될 수 있다. 홍 감독은 J리거들에게 상당한 관심을 보여줬다. 원하지 않는 팀에서 뛸 수도 있는 국내 신인 드래프트를 피해 일본 축구를 기착지로 삼은 어린 선수들에게 따스한 조언도 자주 남겼다. 그 유명한 ‘편의점 도시락’ 발언도 J리거들에 대한 걱정의 발로였다. 팀에 해악을 끼치는 화려한 유럽파보다 팀에 보탬이 되는 일본파와 중동파에 시선을 돌릴 공산도 분명 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