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 소리 나는 여걸 ‘열 아들 안 부럽다’
▲ 지난해 8월 방북해 김정일 위원장과 면담한 현정은 회장(왼쪽)과 정지이 현대U&I 전무. 연합뉴스 | ||
# 한진 조현아 전무
한진그룹 계열 대한항공은 최근 인사를 통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장녀 조현아 상무와 장남 조원태 상무를 전무로 동반 승진시켰다. 그룹 황태자로 각인돼온 남동생 조원태 전무와 줄곧 비교대상에 오르내려온 조현아 전무는 그룹의 호텔사업부문에서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다. 미국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한 조 전무는 1999년 대한항공 호텔면세사업본부 대리로 입사해 능력을 인정받아 고속승진을 거듭, 지난 2006년 1월 대한항공 기내식사업본부 부본부장(상무보)에 올랐다. 그해 12월 상무보에 오른 조 회장 맏아들 조원태 대한항공 전무보다 1년 먼저 임원 반열에 올랐다는 점은 한진가 남매간 경쟁구도를 눈여겨보게끔 만드는 단초가 됐다.
2008년 8월 남동생인 조원태 전무가 대한항공 핵심 보직인 여객사업본부 부본부장에 이어 그해 12월 본부장에 오르면서 남매간 경쟁의 무게가 조원태 전무로 확연히 기우는 듯했다. 그러나 조현아 전무는 지난해 4월 한진 계열의 칼호텔네트워크 대표이사에 오른 데 이어 한진관광 등기이사직까지 꿰찼다.
▲ 한진 조현아 전무(왼쪽)과 신세계 정유경 부사장 | ||
한진 안팎에선 조원태 전무로의 경영권 승계구도가 유력시되지만 경영자적 자질을 과시해온 조현아 전무에게도 일정 몫이 돌아갈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계열분리설을 부추기는 일부 인사들 사이에선 ‘항공은 아들, 호텔은 딸’이란 말까지 나돌 정도다. 그러나 칼호텔네트워크가 대한항공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인 까닭에 조현아 전무의 독자행보를 위해선 지분 확보가 필수적이다.
조 전무의 여동생 조현민 팀장(27) 또한 광고전문가로서 특화된 역량을 키워나가고 있다. 지난 2007년 3월 LG애드를 그만두고 대한항공 광고선전부에 입사해 현재 대한항공 통합마케팅커뮤니케이션팀장으로 근무 중이다.
조현아-조현민 자매는 지난 10월 29일 조원태 전무와 더불어 한진의 사실상 지주회사 정석기업 지분을 1.20%씩 취득했다. ‘정석기업→㈜한진→대한항공→정석기업’ 형태의 한진그룹 순환출자구조에서 조양호 회장은 정석기업 지분 25.66%를 보유해 그룹을 장악하고 있다. ‘황태자’ 조원태 전무와 함께 정석기업 주주 명부에 동등한 자격으로 첫 진입한 조현아-조현민 자매의 그룹 내 입지가 점점 확대될 것으로 기대되는 분위기다.
# 현대 정지이 전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맏딸 정지이 현대U&I 전무(33)에게 지난 2009년은 생애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해로 기록될 듯싶다. 지난 8월 꼬일 대로 꼬인 대북사업을 풀기 위해 현 회장이 방북할 때 어머니를 최측근에서 보좌하며 현대아산 직원 석방 등을 이끌어내 크게 주목받은 것이다. 물론 현재까지 금강산 관광 등 대북사업 재개는 요원하지만 세상에 정 전무의 존재를 알리는 데는 충분한 이벤트였다.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출신인 정 전무는 2004년 현대상선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이후 그는 설립 때부터 등기이사로 있던 현대U&I에 상무로 옮겨왔고 2007년 전무로 승진했다. 현대U&I는 현대그룹의 비상장 시스템 통합(SI)업체. 모친 현 회장이 최대주주(지분율 68.2%)고 정 전무는 현대상선(22.7%)에 이은 3대주주(9.1%)다.
이른 감이 있기는 하지만 재계에서는 현정은 회장의 후계자로 정 전무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현정은 회장이 매번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면담 때 동석시켜 그룹의 상징인 대북사업 후계자로 각인시키는 것도 후계작업의 일환인 셈이다. 정 전무는 경영수업도 차근차근 밟아나가고 있다. 현 회장은 지난 2007년 신임이 두터운 이기승 사장을 현대U&I대표이사로 겸직시켜 정 전무의 ‘개인교사’로 삼았다. 2008년 정 전무는 현대상선 기획지원본부 부본부장으로 발령받은 바 있고 지금은 사장실장을 겸직하는 등 그룹 경영에도 참여하는 중이다.
‘경영 6년차’로 아직 창창한 현 회장이 정 전무의 후계수업에 공을 들이는 것과 관련해 재계 일각에서는 범 현대가와 경영권분쟁의 긴장감이 가시지 않은 상황을 이유로 들기도 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 회장이 정지이 전무를 빨리 전면에 내세워 ‘현씨 현대’를 ‘정씨 현대’로 바꿈으로써 원조 ‘정씨 현대’의 공격을 막으려는 것 아니냐”고 관측하기도 했다.
후계수업의 중간평가는 나쁘지 않다. 정 전무가 전무로 승진한 2007년 현대U&I의 매출액은 672억 원에서 2008년 852억 원으로, 영업이익은 66억 원에서 85억 원으로 증가했다. 2009년 실적도 좋은 것으로 알려진다. 문제는 재벌 계열 SI업체가 대부분 그렇듯 현대U&I의 계열사 의존도가 높다는 것. 2008년 현대U&I 매출액의 56.76%가 현대상선 등 계열사와의 거래를 통해 발생했다. 이를 의식한 듯 현대그룹 관계자는 “지난 10월 부산대와 산학협력을 체결하는 등 현대U&I의 계열사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정 전무가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연말 현대U&I는 현대택배 지분을 기존 15.6%에서 25.4%로 늘렸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경영상황이 어려운 현대상선이 보유해오던 현대택배 지분 9.8%(120만 주, 115억 원)를 인수한 것. 이로써 ‘정지이 전무의 현대U&I’는 ‘현대택배→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택배’로 이어지는 현대그룹 지배구조의 핵인 현대택배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했다. 종합해 보면 지난 한 해 정 전무는 실적과 지배력에다 인지도까지 올린 셈이다.
2010년 새해 현대그룹 앞에는 커다란 문제가 산적해 있다. 대북사업 재개와 현대상선의 턴어라운드, 그룹의 사활이 걸린 현대건설 인수전 등. 현 회장의 딸이 아닌 ‘후계자’로서 정 전무가 이러한 문제 해결에 어떤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 이미경 부회장은 CJ의 미디어 사업을 총괄하고 있지만 지분은 1.32%에 불과하다. | ||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친누나인 이미경 CJ E&M(CJ엔터테인먼트&미디어) 총괄 부회장(52)은 CJ의 미디어 산업을 이끌면서 지난 한 해 동안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일궈냈다. <해운대> <트랜스포머:패자의 역습> 등 최고 흥행 영화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 CJ의 케이블 음악채널 엠넷(Mnet)의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가 웬만한 공중파 방송 부럽지 않은 8%대 시청률을 냈으며 오락채널 티브이엔(tvN)에선 남녀 심리를 코믹하게 풀어낸 <롤러코스터>가 4~5%대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는 지난 연말 <헤럴드경제>가 선정한 ‘대중문화 파워 30인’에 4년 연속 1위에 오를 정도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CJ는 최근 케이블 방송 온미디어를 인수해 총 18개의 케이블채널을 보유한 국내 최대 PP(Program Provider·케이블 프로그램 공급사)로 우뚝 서게 됐다. CJ의 온미디어 인수 성사 직전 주요 MSO(Multiple System Operator·복수종합유선방송 사업자) 대표들이 긴급 회합을 가졌을 정도로 CJ가 케이블 업계에 발휘할 영향력이 공중파 위력과 맞먹을 정도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차명재산 파문 등으로 이재현 회장이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사이 이미경 부회장의 그룹 내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이재현 회장과의 경영능력을 비교하는 시선도 하나둘 늘어가고 있다. CJ가 케이블 업계 공룡으로 거듭나면서 미디어산업을 진두지휘해온 이미경 부회장의 계열분리 가능성 또한 거론되기 시작한다. 그룹 측에선 줄곧 계열분리 가능성을 부인해왔지만 이미경 부회장의 영향력이 확대될수록 이재현 회장이 그룹 주력인 식품·유통·생명공학 분야를 챙기고 이미경 부회장이 미디어계열을 책임지는 분가 시나리오가 재계 인사들 사이에 그려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같은 계열분리 구상엔 현실적으로 무리가 따른다. 이미경 부회장의 CJ미디어 지분율은 1.32%로 이 회사 지분 50.14%를 지닌 CJ㈜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룹 지주사 CJ㈜의 최대주주는 이재현 회장으로 지분율은 42.01%에 이르는 반면 이 부회장은 CJ㈜ 주식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남동생의 배려 없이는 누나가 절대 ‘딴 살림’을 차릴 수 없는 구조인 셈이다.
# 신세계 정유경 부사장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외동딸인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38)은 이 회장을 빼닮은 외모 덕분에 ‘리틀 이명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정 부사장은 최근 인사를 통해 조선호텔 상무에서 신세계 부사장으로 승진해 신세계 경영 전면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정 부사장은 1994년 조선호텔에 입사해 호텔 리노베이션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신세계인터내셔널의 명품사업과 백화점 실내장식 등에도 관여해왔다. 이명희 회장 외부일정 때 정 부사장이 수행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는 등 이 회장의 신뢰도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다.
정 부사장의 승진은 신세계가 줄곧 고수해온 전문경영인 체제를 마감하고 오너경영인 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하는 데 큰 보탬이 될 전망이다. 지난 정기인사에서 이명희 회장의 맏아들 정용진 부회장은 신세계 대표이사 직함을 달았다. 구학서 회장 중심의 전문경영인들의 위세가 대단했던 만큼 정 부회장 체제를 뒷받침할 수 있는 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정 부사장의 승진은 주목받을 만하다.
지난 연말 인사에서 입사 4년 만에 부사장직에 올라 화제가 됐던 정 부사장의 남편 문성욱 신세계 I&C 부사장 역시 정용진 체제 안착을 위한 조타수로 꼽힌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게 그룹 경영권을 넘겨주는 과정에서 이명희 회장이 신세계를 들고 분가한 것처럼 정 부사장의 계열분리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일부 시선도 있다. 그러나 정 부사장의 신세계 지분율이 2.52%에 불과하고 경영경험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계열분리 관측은 시기상조라는 것이 재계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에겐 딸만 둘이 있다. 지난해 초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와의 이혼으로 화제를 뿌린 장녀 임세령 씨(33), 그리고 최근 들어 경영활동 폭을 넓혀가는 것으로 알려진 차녀 임상민 씨(30)가 향후 대상의 오너경영인 체제를 꾸려갈 것으로 관측된다.
# 대상 임세령-임상민 자매
대상그룹 지주사 격인 대상홀딩스의 최대주주는 올해 30세에 불과한, 임 명예회장의 차녀 임상민 씨다. 대상그룹은 지난 한 해 동안 임상민 씨 지분율을 크게 늘리는 데 주력하면서 임상민 씨로의 경영권 승계 가능성을 부각시켰다. 임상민 씨는 지난 4월 임창욱-박현주 부부로부터 대상홀딩스 주식 250만 주를 매입한 데 이어 11월엔 대상㈜로부터 60만 주를 사들였다. 지난 4월 초까지만 해도 29.80%였던 임상민 씨의 대상홀딩스 지분율은 현재 38.36%까지 치솟은 상태. 임상민 씨는 대상㈜에 출근하면서 신규 프로젝트팀 업무를 통해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편 ‘돌아온 맏딸’ 임세령 씨가 향후 어떤 스탠스를 취하게 될지도 관심을 끈다. 임세령 씨는 대상홀딩스 지분 20.41%를 보유해 동생에 이은 2대주주에 올라 있다. 지난해 초 이혼 직후부터 임세령 씨가 외부활동에 큰 관심을 보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맏딸로서 경영에 참여할 가능성이 제기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고 있다.
# 애경 채은정 부사장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의 외동딸인 채은정 애경산업 전무도 지난 연말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오빠인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 부회장과 남동생 채동석 애경그룹 유통·부동산개발부문 부회장, 채승석 애경개발 사장엔 승진 속도에서 뒤처져 있는 게 사실. 그러나 지난 2007년 11월 전무 승진 이후 2년 만에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최근 그룹 내 입지가 강화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채은정 부사장은 이번 승진을 통해 애경산업의 화장품사업 전반을 총괄하는 부문장으로 올라섰다. 채 부사장 남편 안용찬 부회장은 애경산업 내에서 생활·항공 부문장을 맡아오고 있어 애경산업 내 부부경영 체제를 다질 태세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