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주름살’ 펴지려면 멀었다
▲ 고가에 판매되는 수입 화장품 사이트로 위쪽부터 랑콤, 샤넬, 에스티로더.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 ||
수입 화장품 소비자들은 하나같이 “안 그래도 비싼 제품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다”며 하소연한다. 수입 화장품은 그동안 품목별로 가격을 인상하거나, 제품마다 인상률을 다르게 설정해 소비자의 눈을 피해왔다. 독점 수입업체 측은 “원가부담 때문”이라 변명하지만 환율 하락에도 불구하고 가격 인상은 계속됐다. 실제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2월 1600원을 찍은 이후 지난 연말 1170원으로까지 계속 미끄럼을 탔다. 그럼에도 샤넬(Chanel) 시슬리(Sisley) 등 주요 수입 화장품은 지난 1년간 여러 차례에 걸쳐 3%에서 높게는 9%까지 가격을 올렸다.
이러한 독점 수입의 폐해를 해소하고자 보건복지가족부가 내놓은 정책이 바로 ‘병행수입’ 허용이다. 병행수입이란 해외 화장품을 국내 독점 판매권을 갖고 있는 공식 수입업체가 아닌 일반 수입업자가 다른 유통경로를 거쳐 국내로 들여오는 것을 말한다. 특정 브랜드를 한 업체가 독점적으로 수입·판매했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여러 업체가 경쟁하게 되면서 가격 하락이 기대됐다. 지난 6월 ‘병행수입 제품도 적법하게 수입된 진품’이라 밝힌 법원의 판결 역시 병행수입업자들의 활발한 행보를 보장했다.
이후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백화점에서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동일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시슬리 수프리미아(피부 수명 연장 에센스, 50㎖)의 경우 백화점에서는 85만 원에 판매되고 있지만 S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76만 5000원이다. 에스티로더(Estee Lauder) ‘갈색병’은 백화점에선 14만 5000원인 데 반해 G 쇼핑몰에서는 10만 5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그럼에도 소비자들이 선뜻 구매하지 못하는 이유는 ‘저렴한 가격=짝퉁’이란 인식 때문이다.
그러나 당국과 업계에 따르면 적법하게 병행수입돼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되는 제품은 진품이라고 한다. 병행수입을 하기 위해서는 수입할 때마다 제조번호별로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로부터 이미 수입된 화장품과 동일한 것으로 확인받고 표준통관예정보고 및 품질검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 게다가 병행 수입업자의 리스트가 식약청에 보관돼 있으므로 필요시 적법한 수입업자인지도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병행수입 도입 이후로 ‘구매대행업자’와 구별이 애매해져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구매대행업자는 고객의 의뢰를 받아 제품구매만 해준다. 따라서 직수입한 제품을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없고, 판매할 경우 화장품법 5조에 따라 2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구매대행은 병행수입과 같은 안전성 검사를 거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불법구매대행이 만연할 경우 유통 경로가 불분명해져 소비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 화장품과 관계자는 “수입 화장품에 국문라벨이 붙어있다면 병행수입 제품으로 보면 된다. 구매대행은 직수입이므로 국문라벨이 붙을 수 없다”면서 둘의 구별 방법을 소개했다. 이 관계자는 “구매대행업자가 국문라벨이 부착되지 않은 제품을 개인적으로 판매한다면 식약청에 신고해 달라”고 당부했다. 보건복지가족부 의약품정책과 관계자도 “불법구매대행 때문에 말들이 많다”면서 “구매대행업자와 병행수입업자의 확실한 구별을 위해 관련 법규를 점검 중에 있다”고 밝혔다.
한편 병행수입 허용 초기 중소업체 외에 LG생활건강(뷰티플렉스) GS리테일(GS왓슨스) 등 대기업에서 병행수입업 진출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기대를 모았으나 아직까지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병행수입을 검토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병행수입에 뛰어든 대기업이 없어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고 답했다. 반면 GS왓슨스 관계자는 아예 “현재 병행수입을 하고 있지 않으며 앞으로도 할 계획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병행수입 허용으로 수입 화장품 가격 거품이 빠질 것으로 기대했던 소비자들에겐 섭섭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대기업이 뛰어들지 않으니 업체 간 경쟁을 통한 가격 하락 현상은 미미한 탓이다. 대한화장품협회 관계자 역시 “솔직히 병행수입이 가능해진 후로 뚜렷한 화장품 시장의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화장품 병행수입 허용 1년, 복지부의 야심찬 정책은 시장을 바꾸지 못한 듯하다. 이제 다른 정책을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짝퉁 방지 '전성분 표시제' 아시나요
'반쪽 화장' 하나마나
게다가 식약청 화장품과 관계자까지 “표시 성분만 가지고 진품 여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렇게는 신도 모를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할 정도로 소비자들의 판단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에 보건복지가족부 의약품정책과 관계자는 “현재 표시성분 및 용량과 관계된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 중에 있다”고만 답했다. 새 법안에는 뭔가 획기적인 구별법이 있을지 궁금하다.
정유진 인턴기자 kkyy122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