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말했다는 그녀의 남편은 그녀의 슬픈 가족사가 그녀의 잘못이 아님을 알고 이해하는 속 깊은 남자 같다. 일이 터지지 않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일이 터졌을 때 그 일을 바라보고 처리하는 방식에 그 사람이 있음을 다시 한 번 느낀다. 그녀의 남편이 안정적인 정서를 가진 남자라서 다행이라 느끼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너의 잘못이 아니다’란 문장의 힘을 강조했던 영화가 바로 맷 데이먼이 주연한 <굿 윌 헌팅>이다. 어린 시절 계부의 학대에 시달리고, 황폐한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난 적이 없던 윌은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는다. 천재적인 머리 덕에 주목을 받아도 자기 가정사를 알면 모두들 자기를 떠날 거라고 믿는 윌은 겉으로는 자존심 덩어리로 나타나 쉽게 흥분하고 발끈하지만, 실상은 자존감이 매우 낮은 청년이다. 윌은 마음을 열지 못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마음을 열지 않아도 되는 친구들만 사귀고,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나면 차일까봐 차버리는 것!
그런 윌에게 심리치료를 하는 숀 교수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가난은 네 잘못이 아니다. 부모의 이혼은 네 잘못이 아니다. 계부의 학대는 네 잘못이 아니다. 그것은 네 잘못이 아니다.
“It’s not your fault.”
마음속에 부끄럽다고 느끼는 것은 어떤 것인가. 부끄러워 안 할 수 있는 것은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런데 내가 어찌 해볼 수 없는 것 중에 내 수치가 되고 부끄러움이 된 것이 있다. 그것은 대체로 당신 책임이 아니다. 그것을 자기라고 여겨 자기 책임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 문을 걸어 잠그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마음 문을 걸어 잠그게 된 데에는 사회적 편견이 일조하기도 했다. 집안에서 받은 상처가 너무 아파서 가까운 친구에게 얘기했는데, 그것이 어느 날 화살이 되어 날아와 또 하나의 상처로 남았다면 세상 천지에 마음 편한 자리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가까운 사이에서는 배려가 필요한 것이다. 부부 사이에 건드려서는 안 되는 콤플렉스 중 1위가 배우자의 집안이라고 하지 않나. “당신이 뭘 배웠겠나.
그런 부모 밑에서.” 상대의 불운을 이해하고 감싸주기는커녕 불운을 약점으로 알고 까발려 상처 내는 사람이 가까운 사람일 때 그 막막함을 어찌할 것인가.
옛 어른들은 ‘구시화문(口是禍門)’이라고 했다. 입이 재앙의 문이니 잘 다스리라는 것이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기도 하지만, 말 한마디로 철천지원수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말이 무서운 것이다.
수원대 교수 이주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