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 떼주며 유일하게 곁 지킨 그 아들마저…
1994년 11월 당시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이 성수대교 붕괴 사건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지검에 도착,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 전 회장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회사는 사라졌어도 파산의 책임은 피해가지 못한 것. 2004년 최 전 회장은 분식회계 및 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여느 ‘회장님’들이 그랬듯 2008년 특별사면을 받고 풀려났다.
이처럼 기업인으로서 실패를 맛본 최 전 회장은 가정도 제대로 꾸리지 못했다. 그는 총 3번의 결혼과 3번의 이혼을 반복했는데 그때마다 온갖 루머를 몰고 다녔다. 최 전 회장의 첫째 부인은 60년대를 풍미했던 전직 배우 김혜정 씨(72)로 두 사람 사이에 1남 1녀의 자녀도 뒀으나 겨우 5년의 결혼생활 끝에 이별을 택했다. 김 씨의 표현에 따르면 “말 못할 사정으로 떠밀리다시피 이혼을 했다”고 하는데 아이들도 데리고 나와 직접 키웠다고 한다.
<일요신문>이 1999년 8월 15일자에 최 전 회장과 아나운서 장은영 씨가 결혼식 없이 몰래 혼인신고한 사실을 특종보도했다.
전 부인과의 전쟁을 치르면서도 최 전 회장은 이혼 이듬해 미스코리아 출신의 전 KBS 아나운서 장은영 씨(43)를 세 번째 부인으로 맞았다. 1999년 두 사람은 결혼식 없이 몰래 혼인신고만 했던 사실을 당시 <일요신문>(1999년 8월 15일자 378호)이 특종보도 하기도 했다. 무려 27살이라는 나이차에도 결혼을 감행했던 두 사람은 비교적 순탄한 결혼생활을 하는 듯 보였다. 다만 장 씨는 최 전 회장의 나이 때문에 둘만의 자녀를 갖지 못한 채 전처의 자식들만 돌보며 지내야 했다. 미안한 마음에 최 전 회장은 장 씨가 밖에서 일할 수 있도록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학교법인 공산학원의 이사직을 내주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결혼도 11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다만 앞서 두 번의 이혼과 달리 장 씨와는 틀어진 관계로 마무리 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혼 후 장 씨는 동갑내기 사업가와 재혼을 했음에도 최 전 회장은 장 씨의 이사직을 유지시켜줬다. 하지만 장 씨는 지난 2011년 2월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한 것이 확인됐다. 그 뒤 장 씨는 2012년 3월에 아들을 낳음으로써 최 전 회장과의 인연도 완전히 끝이 났다.
최 전 회장과 셋째 부인 장은영 씨가 딸 윤정 씨 결혼식 날 하객과 인사 나누는 모습. 오른쪽은 둘째 부인 가수 배인순 씨. 최근 익사로 숨진 아들의 생모다. 일요신문 DB
그도 그럴 것이 차남은 이혼과정에서 부모의 낯 뜨거운 진실공방전 속에서도 묵묵히 아버지의 편을 들어줬다. 아버지가 곤경에 처한다 싶으면 기자회견도 자청할 정도였다. 또한 2007년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신장이식까지 받아야 했던 최 전 회장에게 차남은 선뜻 자신의 신장을 떼 주기도 했다. 최 전 회장에게 차남은 하나뿐인 자식이자 생명의 은인이었던 것이다.
그룹 해체와 결혼-이혼의 악순환을 되풀이하면서도 차남을 끔찍이 아꼈던 최 전 회장. 그에게 지난 6일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그토록 아끼던 아들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것. 차남은 가족들과 함께 경기도 가평군 미사리 홍천강의 별장에 딸린 선착장에서 물놀이를 하다 변을 당했다. 경찰은 선착장에 있는 보트 상하차 기계에서 누전이 발생한 것을 모르고 물에 뛰어들었다 감전을 당한 뒤 강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고 소식을 들은 최 전 회장은 아들의 빈소가 마련된 병원을 찾았으나 곧장 응급실에 실려 가는 등 상당히 충격을 받은 상태라고 한다. 한때 남부러울 것 없이 최고의 인생을 구가하던 한 재벌회장의 말로는 끝없는 불운과 함께 저물고 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