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산다고 쉽게 보이니? 콱!
▲ 드라마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 | ||
여성 입장에서 부모의 품을 떠나는 시기는 결혼이 가장 흔하다. 하지만 최근 결혼 적령기의 개념이 없어지고 늦은 결혼 혹은 화려한 싱글을 꿈꾸는 여성들이 늘면서 일찍 독립하는 1인 가구 비율이 부쩍 증가했다. 식품회사에 근무하는 C 씨(여·29)는 대구가 집이다. 처음에는 집 근처 직장을 다녔지만 아버지의 잔소리를 피해 서울로 왔다.
“대학 졸업하고 직장생활도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매번 친구들과 멋진 시간 한번 보내기도 힘들고, 쉬는 날 집에서 늘어져 있기도 눈치 보여서 탈출을 감행했어요. 아버지와 집에서 자꾸 큰소리 내는 것도 싫었고요. 일단 서울로 이직했고 그 핑계로 독립했죠. 혼자 사는 게 처음이라 초반에는 쉽지 않았어요. 제대로 된 방 한 칸 구하는 것도 어렵고,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죠. 지금 독립 3년째인데 부동산 임대 관련 박사가 됐네요.”
가구는 어디가 저렴한지, 집을 구할 때 꼼꼼히 살펴야 할 법적인 부분은 무엇인지 이젠 친구에게 조언을 해 줄 정도가 됐다는 C 씨. 그는 “살면서 수없는 사건 사고들이 있을 텐데 지금 미리 경험해보고 배워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혼자 살면 ‘살림의 달인’이 되기도 한다. 대학 때 자취생활로 시작해 독립 10년차인 Y 씨(여·30)는 뭐든 척척 해결한다.
“10년쯤 혼자 살다보니까 정말 ‘독립형 인간’이 되더라고요. 무슨 일이 생겨도 당황하지 않고 혼자 완벽하게 처리하죠. 대학 1학년 때는 같은 건물에 왜 다른 원룸은 도시가스고 우리 집만 LPG냐고 아빠와 통화하면서 엉엉 울던 바보였는데 말이에요. 지금은 간단한 전기 고장 같은 건 ‘껌’이고요, 어지간한 찌개나 국, 반찬도 뚝딱 만들죠. 호사스럽게 식기세척기나 음식물 쓰레기처리기를 살 수는 없어서 나름의 노하우도 생겼어요. 최대한 기름기 없게 요리하는 법과 냄새 안 나게 음식물을 처리하는 방법도 터득했죠.”
지난해 화제가 됐던 ‘건어물녀’ 생활도 완전한 독립생활에서나 가능하다.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낭만이고 뭐고 한심한 인간이 되지 않으려면 바지런해야 하기 때문. 의료기기 회사에 근무하는 J 씨(여·28)는 달콤한 독립생활을 즐기고 있다. 취업이 확정되는 순간부터 준비해서 1년 만에 원룸을 구해 나왔다.
“서울이 집이고 해서 처음에는 부모님 반대도 컸지만 이제 장성한 마당에 부모님 눈치 보면서 살고 싶진 않았어요. 휴일 아침에 뒹굴 거리는 그 맛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죠. 며칠씩 청소를 안 해도 누가 잔소리를 하나, 설거지 밀렸다고 흉보는 사람도 없고. 더운 여름날 샤워하고 일일이 옷 챙겨 입고 나오지 않아도 되니까 너무 좋아요. 퇴근하자마자 바닥에 배 깔고 누워서 낄낄 대고 TV 보면서 전화 오면 우아하게 차 마시며 문화생활 한다고 말해도 알 리가 없잖아요. 요새 같아선 결혼도 크게 생각 없는 거 있죠.”
J 씨는 한 달에 한두 번 부모님 댁에 들러 애교도 좀 떨고 반찬거리도 잔뜩 얻어온다. 그는 “제 밥벌이가 가능하다면 한번쯤 독립투쟁을 불사할 만하다”며 “무한자유를 느껴봐야 삶이 주는 여유가 더욱 고마워진다”고 충고했다.
싱글의 독립은 청춘사업과도 무관하지 않다. 자유연애를 꿈꾸는 이들에게 독립생활은 큰 매력이다. 교육관련 기업에 근무하는 K 씨(여·29)는 그의 집에서 데이트를 즐긴다. 남자친구와 근무시간이 달라 밖에서 데이트를 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란다.
“저는 퇴근시간이 일정하지만 남자친구는 개발자여서 야근도 많고 출퇴근 시간도 들쭉날쭉해요. 밤 10시가 넘어 끝나면 늦은 시간에 갈 곳도 마땅치 않고 집에서 영화 한 편 다운받아 같이 보는 게 훨씬 낫죠. 쉬는 날에는 맛 집을 돌기도 하지만 재료 사다가 함께 요리해 먹는 재미도 있잖아요. 안 좋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시간도 절약하고 밖에서 쓰는 돈을 줄일 수 있잖아요.”
K 씨는 전에는 여성전용 ‘코쿤’(미니 원룸)에 살았다. 어느 정도 단체 생활의 개념이 적용되는 곳이라 그때는 남자친구의 출입이 불가능했고 변변한 데이트 한 번 하기도 어려웠다고. 그는 “일주일에 얼굴 한 번 못 볼 때도 많았지만 이제 작은 집을 얻어 달라졌다”며 “독립했다고 해서 가볍게 사는 것은 옳지 않지만 연애에 분명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물론 그녀들의 ‘독립투쟁기’가 언제나 희망찬 것은 아니다. 생각보다 힘든 일상에 포기하는 사람도 있고 사회적으로 인식이 좋지 않아 씁쓸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통신회사에 근무하는 L 씨(여·31)는 혼자 살고 있지만 누가 물으면 항상 가족과 함께 산다고 이야기하는 편이다.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도 그렇고, 새로운 모임에서 낯선 얼굴들과 인사할 때는 늘 집이 어디인지, 혼자 사는지 물어볼 때가 많잖아요. 사실대로 말하면 반응이 여러 가지예요. 혼자 살아 좋겠다며 부럽다고는 하지만 특히 남자들의 경우는 쉽게 보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예의상 술자리에 끝까지 남았는데 한번은 동호회에서 처음 본 남자분이 너무 취했으니 재워달라고 하더군요. 완전 어이 상실이에요. 그 다음부터는 동생과 함께 산다고 이야기해요.”
완전한 자유를 꿈꾸던 N 씨(여·28)는 현재 독립생활을 접었다. 창원에 살다가 서울의 중소기업에 일자리를 얻게 되자 잘 알아보지 않고 반지하 월세를 얻은 것이 화근이었다.
“직장생활 초반이라 모아놓은 돈도 없고 해서 반지하로 얻었는데 이건 뭐…. 빨래는 며칠을 말려도 뽀송한 느낌이 없고 장마철에 비가 올 때면 서서히 축축해지는 벽 때문에 불안한 밤을 보냈죠. 취객이 길가 쪽 창문을 두드려 대는 건 기본이고 때로는 현관문까지 열려는 변태에게도 익숙해질 무렵 사건이 터졌죠.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고생해서 장만한 대형 TV와 각종 IT 기기들을 싹 도둑맞은 거예요. 그 뒤로 바로 서울 생활 접고 집 근처로 직장을 옮겼습니다.”
드라마나 영화 속 여성 직장인들의 화려한 싱글 라이프는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산다. 하지만 현실은 이렇다. 그래도 독립만세를 부르고 싶다면 ‘투사’가 되는 길밖에 없다.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