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팔던 ‘뻥쟁이’ 농협도 들었다 놨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박 씨에게 로비 명목으로 돈을 건넸다가 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상황. 검찰은 박 씨가 받은 금품이 과연 대출과 관련해 농협 관계자들에 대한 로비에 사용됐는지를 파악하는 데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예상된다.
서울북부지검은 지난 2월 16일 청와대 등 고위층 인사와 잘 안다며 대출 알선비 명목으로 수억 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건설사 대표 박 아무개 씨(53)를 구속기소했다. 박 씨는 지난 2009년 7월 말 서울 A 교회 담임목사 B 씨에게 접근, 200억 원대의 대출을 알선해주겠다며 수억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박 씨는 지난해 초부터 A 교회에 참석하면서 교인들의 신망이 두터웠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교회 관계자들은 검찰에서 “평소 헌금도 잘하고 사근사근한 성격 탓에 교우들과 사이도 상당히 좋았다”는 진술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교회 사람들과 친분을 쌓게 된 박 씨는 “이명박 대통령 사위와 사업을 하다가 알게 됐고 아주 친하다. 청와대 고위직 인사들과도 상당한 친분이 있다”라며 교인들에게 접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자연스럽게 담임목사 B 씨와도 친분을 쌓은 박 씨는 A 교회가 추진하려는 학교 설립 사업이 자금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목사의 고민을 들은 후 “청와대 고위급 인사들을 잘 아니 수백억 원의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금융권의 로비자금 명목으로 B 목사에게 2억 5000만여 원을 요구한 후 “대출을 성사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그해 12월 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적은 금액의 ‘정상적인’ 대출밖에 이뤄지지 않자 B 목사는 박 씨에게 로비자금 명목으로 건넸던 돈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박 씨는 돈을 돌려주기는커녕 잠적해버렸고 A 교회 측은 사기 혐의로 박 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이후 지명수배를 받아온 박 씨는 지난 2월 13일로 검찰에 체포됐다.
박 씨는 검찰 조사에서 “A 교회 목사에게 돈을 받은 것은 맞지만 학교 사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컨설팅료 명목이었다”면서 “대통령 사위 등과 같은 고위층 인사는 물론, 그쪽에 관련된 사람은 알지도 못하고 그런 말을 한 적도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수사 결과 박 씨는 B 목사뿐만 아니라 사업상 알고 지내던 지인들과 평소 친분이 있던 교인들 등 여러 명을 상대로 거액의 대출을 받게 해주겠다며 사기 행각을 벌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까지 피해자들이 로비자금 명목으로 박 씨에게 건넨 것으로 파악된 금액만 십수억 원에 달하는 상태다.
정작 문제는 ‘단순 사기사건’으로만 여겨졌던 이번 사건의 불똥이 농협중앙회로 튀고 있다는 점이다. 검찰에 따르면 박 씨는 B 목사에게 접근할 당시 청와대는 물론, 농협 임원들과의 친분도 내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에서 파악한 또 다른 피해자들의 경우 박 씨가 농협 임원들에게 로비해 대출을 받아 주겠다는 조건으로 수억 원에 이르는 돈을 받아 가로챈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들 중 일부는 검찰에서 “실제로 농협 직원이라고 소개받은 사람을 직접 만난 적이 있다”는 주장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 결과 이들이 박 씨로부터 소개받았던 해당 인물은 실제 농협 직원이 맞지만 박 씨 사건과는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다. 해당 농협 직원은 검찰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박 씨가 한 번 만나달라고 해 간 자리에서 사람들을 소개받게 됐고 대출을 받는 과정에 대해 설명만 해줬을 뿐”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싱겁게(?) 끝나는 듯했던 사건은 검찰이 박 씨에게 로비자금을 건넨 사람들 중 일부가 실제 농협으로부터 담보 평가액 이상의 거액 대출을 받았다는 정황을 잡으면서 수사 기류가 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소유 부지의 감정평가 결과를 조작하는 방법으로 거액의 대출금을 받은 인물들을 찾아냈다는 것이다.
여기에 박 씨가 사업과 관련해 평소 일부 농협 직원들과 친분이 두터웠다는 주변 진술까지 확보되면서 의혹의 눈초리가 점점 더 농협 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한다. 박 씨는 수년간 건설업체를 운영해 대출 문제 등으로 실제 농협의 몇몇 고위직 인사들과 친분이 있었다는 것.
이런 일련의 의혹들로 인해 검찰의 한 관계자는 “단순 대출 사기사건으로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현재 검찰에서는 박 씨와 박 씨 가족들 관련 계좌추적을 통해 해당 금원이 일부 농협 관계자들에게 흘러들어간 정황이 있는지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검찰 수사가 확대 기류를 보이자 일각에서는 ‘농협 고위급 임원이 해당 사건에 실제로 연루돼 있다’는 설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이에 대해 검찰 수사팀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아직 수사 중인 사안이며 특별한 정황이 나온 것은 없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농협 측은 이번 사건 자체에 대해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농협 관계자는 “수사가 진행 중인 건이라면 우리 쪽에서 알 수 없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아직까지 특별한 얘기를 들은 것이 없다”고 답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