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얘기를 듣고 나니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나 청와대 비서관 회의에서 참석자들이 대통령의 발언을 속기하듯이 받아 적는 오래된 관행이 오늘까지도 전혀 고쳐지지 않는 저변의 정서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은 대통령의 ‘말씀’을 금과옥조로 떠받들어야 했던 권위주의 정부 시절부터의 관행이다. 권위주의 정부에선 그랬다 치더라도 김영삼 정부 이후 네 번의 민간 정부 20년을 거쳐 다섯 번째인 박근혜 정부에 와서까지 같은 패션이 지속되고 있으니 문제다.
공직사회이건 민간 기업이건 회의 때 주재자의 말을 받아 적는 것을 탓할 것은 없다. 주재자의 발언 내용을 정확히 숙지해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꼭 받아 적어야만 업무 내용이 숙지되느냐 하는 것과, 대통령의 일방적 지시만 있는 국무회의가 지금 시대에 맞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말은 대통령보다 해당분야의 최고 전문가인 장관들이 더 많이 해야 정상이라는 얘기다.
이를 위해 대통령의 발언은 사전에 국무위원들에게 전달돼 회의에서 의견을 개진하는 자료로 활용되도록 하고, 사전통고가 어려운 경우라면 사후에 회의 내용을 정리해서 소관부처에 내려 보내 업무에 참고토록 하면 받아 적는 수고는 덜 수 있을 것이다. 과문의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국무회의의 필기패션은 한국만의 풍경일 듯하고, 명색이 디지털 강국으로서도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지난 6월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 때 양국 장관들이 여러 종류의 의정서에 서명 및 교환하면서 뒤에 서 있던 양국 국가원수에게 인사하는 장면이 있었다. 중국의 장관들은 박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과 차례로 악수를 교환한 뒤 제자리로 돌아갔다. 반면 우리 장관들은 시 주석과는 악수를 하고 박 대통령에게는 머리 숙여 인사를 한 뒤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것을 한국적 관행이라고 하면 그만인가. 글로벌 스탠더드의 측면에서 중국이 우리보다 앞섰다는 느낌이 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직전 국무회의에서 기자실 폐쇄를 결정하면서 당위성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그때 국무위원 중에서 누구 하나 찬반 간에 발언을 했는가를 살펴본 기억이 새롭다. 결과는 모두 침묵이었다. 받아 적지 않는 것이 불경일진대 의견 개진은 도발로 간주되었을 터다. 국무회의에서 받아 적는 시간과 노력은 말하는 시간과 노력으로 바뀌어야 한다. 대통령에게 불경으로 찍힐까봐 받아 적는 국무회의로는 창조적인 국정은 어렵다. 창조의 기초는 사고의 자유로움이기 때문이다.
한남대 교수 임종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