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포냐 기행이냐…아님 막장?
임성한 작가
그의 컴백은 늘 시청자와 방송가의 관심을 모았지만 <오로라 공주>가 특히 더 눈길을 끈 건 지난해 1월 그가 겪은 ‘사건’ 때문이다. 당시 임 작가는 남편을 잃었다. 2005년 방송한 <하늘이시여>에서 만난 결혼했던 연출자 손문권 PD는 경기도 일산에 있던 자택에서 목을 매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유명 작가의 남편이자 드라마 PD의 죽음은 세간의 이목을 끌었고, 고인의 유족은 ‘며느리’ 임 작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까지 제기했다. 지금도 법적 분쟁이 진행 중이다.
<오로라 공주>는 손문권 PD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함께 준비해온 드라마다. 개인적인 아픔과 우여곡절을 겪은 뒤 내놓은 신작으로 관심을 끌었지만 정작 방송을 시작하고 나서는 시청률이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방송 두 달째인 7월 초까지 시청률은 10.3~10.4%에 머물렀다. ‘진부하다’는 평가도 나왔다. 그 와중에 손창민과 오대규의 돌연 하차 소식이 알려졌다.
두 배우는 여주인공 전소민(오로라 분)의 두 오빠로, 이야기를 이끄는 중심인물들이었다. 갑자기 빠질 경우 그동안의 드라마 전개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는 무리수가 따른다. 더욱이 시청자들도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더 큰 문제는 두 배우가 하차 통보를 받는 과정에서 나왔다. 비중이 높은 주연 배우인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제작진과의 의견 조율 없이 대본을 받아보고서야 하차 사실을 접했다.
<오로라 공주> 제작 발표회 모습. 현재 주연급이던 손창민(맨 왼쪽)과 오대규(맨 오른쪽)는 하차했고 박영규(왼쪽 두 번째)도 하차설이 돌고 있다. 사진제공=MBC
해당 방송사인 MBC나 <오로라 공주>의 외주제작사인 MBC C&I 측은 하차 논란 이후에 어떠한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서도 이를 수습하기는커녕 MBC는 ‘오로라 공주 시청률 상승 최고 경신’이라는 내용의 보도자료까지 배포해 빈축을 샀다. 이를 두고 한 방송 관계자는 “드라마 제작진의 노이즈 마케팅이 시청률을 높였다는 걸 방송사 스스로 인정한 꼴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꼬집었다.
제작진의 뚜렷한 해명이 없으니 의혹은 더욱 커진다. <오로라 공주> 제작진이나 출연 배우 주위에서 여러 추측이 나오는 가운데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는 임성한 작가의 집필 스타일이 만들어낸 일”이라는 지적에 힘이 실리고 있다.
드라마 외주제작사의 한 관계자는 “임성한 작가는 평소 드라마를 쓸 때 제작진과 소통하는 걸 꺼린다. 주연을 맡은 여주인공과 몇 번 미팅을 하는 정도에서 끝난다. 이번 <오로라 공주> 때도 이메일을 통해 대본만 전달할 뿐 연출진과의 교감도 거의 없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임 작가는 애초에 드라마 기획안인 시놉시스 자체를 만들지 않고 이야기를 쓴다. 남자 주인공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도, 그게 작가의 본래 의도였다고 주장한다면 사실 할 말이 없다”고 덧붙였다.
일부에서는 배우들과 임성한 작가 사이의 불화설도 제기한다. 배우 중 일부가 다른 드라마에 출연하고 싶다는 뜻을 제작진을 통해 임 작가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고 결국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서 ‘주인공 하차’라는 카드가 등장했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손창민과 오대규에서 ‘하차 통보’가 끝날 것 같지 않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조심스러운 예측이다. 또 다른 주인공인 박영규 역시 하차가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하루 나오는 대본을 통해서만 하차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현재 드라마 촬영 구조 상, 박영규는 대본을 보며 자신의 출연 여부를 점검하는 처지다.
드라마 방송화면 캡처
<오로라 공주>는 당초 남녀 주인공은 전소민과 오창석을 중심으로 양쪽 집안의 겹사돈 이야기가 주된 줄거리였다. 손창민, 오대규 역시 겹사돈을 맺는 주요 인물들이었지만 이들이 빠지면서 <오로라 공주>의 전개 방식은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하다.
현재 드라마는 전소민의 삼각관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앞으로도 이 이야기가 드라마의 주요 전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바로 이 점이 임성한 작가가 남자 주인공들을 한 번에 ‘날린’ 이유라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최근 <오로라 강조>의 시청률은 12.0%까지 올랐다. 하차 논란을 겪으면서 2%포인트 정도의 시청률이 오른 셈이다.
방송가의 한 관계자는 “당초 네 커플이 맺는 겹사돈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임성한 작가가 생각만큼 이야기가 잘 풀리지 않자 새로운 전개를 꺼내려고 주인공들을 빼는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드라마 전개는 작가 고유의 권한이지만 주연 배우를 고르고 배치하는 건 한편으론 시청자와의 약속이다. 대중과 소통하지 않는 드라마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의문”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