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진순재 ‘숨겨논 영어실력 기대하시라’
<꽃보다 할배> 출연진들. 왼쪽부터 박근형, 신구, 이서진, 이순재, 백일섭. 사진제공=tvn
‘꽃보다 할배’의 일등공신은 누가 뭐래도 ‘H4’라 불리는 할배 4인방이다.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은 “직진순재, 시크남, 분위기 메이커, 문제적 인물”이라는 각자에 대한 나영석 PD의 평가처럼 저마다 색다른 매력을 뽐내며 시청자들의 웃음보를 건드렸다.
여기서 드는 첫 번째 궁금증. 과연 네 사람은 평소에도 친분이 있을까? 물론 오랫동안 연예계에 종사하며 함께 늙어갔지만 이들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이거나 친분을 드러낸 적은 없다. 동시기에 활동했지만 나이대나 캐릭터가 겹쳐 함께 출연한 적도 거의 없다.
이에 대해 신구는 “아무래도 자주 못 만난다. 그래도 워낙 오래 얼굴을 본 사이라 서로에게 특별하다. 전에도 그랬지만 드라마를 함께해야 얼굴을 맞댈 수 있지 따로 만날 기회는 많지 않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진중하고 사려 깊은 성격을 가진 신구는 <꽃보다 할배>에서 깊은 속내를 꺼내 보이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샀다. 프랑스 파리의 민박집에서 함께 투숙 중인 20대 어린 여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 여학생이 참 용기가 대단하다”고 말하고 에펠탑를 본 후 “난 이번 기회가 마지막일 거라 생각한다. 죽어가면서도 이날 본 잔상이 그대로 남을 것 같다”는 그의 말은 웃음 끝에 코 끝 찡한 감동도 안겼다.
하지만 “출연 제안을 받고 흔쾌히 응했다”는 신구는 “불란서(프랑스를 가리키는 신구의 표현)는 전에도 촬영차 가봤지만 구석구석 돌아보지 못했다. 지금 출연하는 드라마가 없기도 했지만 인생 말년에 동년배들과 이곳으로 여행을 오면 좋은 추억거리도 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래도 방송을 목적으로 한 녹화인데 기본적인 설정과 대본이 없을까. 물론 H4가 수행해야 하는 미션은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법이나 방향은 출연진이 직접 결정한다. 백일섭이 무겁다는 이유로 장조림통을 내팽개친 후 발로 차고 침실에 있는 카메라를 다 떼어내라고 한 것도 모두 리얼이다. 일반적으로 TV 프로그램에서 출연진이 음주를 할 수 없지만 애주가인 신구가 출발 전 마트에서 직접 소주를 구입하고 파리에서 귀한 소주를 H4가 정겹게 나눠 마신 것도 모두 진짜다.
H4의 숨은 분위기메이커는 ‘막내’ 백일섭도, ‘짐꾼’ 이서진도 아니다. 바로 ‘맏형’ 이순재다. 촬영 전만 해도 올해 79세인 이순재가 촬영 도중 체력적인 문제를 호소하면 어찌할지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맏형이 ‘촬영 불가’를 외치면 다른 출연진도 영향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우였다. 오히려 이순재의 무한 체력이 <꽃보다 할배>에 혼란을 야기했다. 파리 샤틀레역에서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어디론가 향하는 이순재를 쫓아가며 다른 출연진까지 건사하느라 이서진이 혼쭐났다.
하지만 마냥 순탄한 여정은 아니었다. 특히 관절염 때문에 무릎이 좋지 않은 백일섭은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고역이었다. 게다가 남에게 도움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터라 무거운 짐까지 직접 책임지며 힘겨운 모습을 보였다.
백일섭을 괴롭힌 것이 또 하나 있었다. 다름 아닌 작은 침대. H4는 파리에 머무는 동안 여행객이 주로 사용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180cm에 육박하는 신장에 몸무게가 80kg이 넘는 백일섭은 이순재 신구 박근형에 비해 잠자리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관절염 때문에 고생한 그가 침실 카메라를 제거해달라고 요청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백일섭은 “여행하는 동안 보통 배낭여행객들처럼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었다. 그런데 작은 침대 때문에 여간 고생한 게 아니다”고 회상했다.
언어 소통 역시 H4가 극복해야 할 과제였다. 함께 여행길에 오른 뉴욕대 출신 이서진이 통역사를 자처했지만 네 명을 일일이 쫓아다니며 통역을 할 수는 없는 노릇. 하지만 적극적인 H4 덕에 큰 불편함은 없었다.
평소 대본 숙지력과 준비성이 엄청나 좀처럼 NG를 내지 않기로 유명한 박근형의 면모는 <꽃보다 할배> 촬영 중에도 빛났다. 그는 프랑스 가이드북을 구입해 기본적인 회화를 익힌 후 파리 시민들과 대화를 시도하며 실전에 접목시켰다. 서울대 출신인 이순재 역시 <꽃보다 할배>를 통해 숨겨둔 영어 실력을 공개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H4의 열정이 대단하지만 워낙 고령인 터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제작진도 상비약을 챙기고 응급사태에 대비한 매뉴얼을 준비하는 등 분주하다. 그리고 출연진의 항공편은 비즈니스 클래스로 준비한다. 현지에서 다니는 것보다 10시간에 걸친 비행시간이 더 고역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물론 이서진도 비즈니스석을 탄다. H4에 비해 나이가 어리지만 불혹이 넘은 이서진 역시 장거리 비행이 어렵기는 매한가지”라고 귀띔했다.
<꽃보다 할배>가 방송된 후 시청자들은 한목소리로 시즌제를 외치고 있다. 제작진은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워낙 출연진의 나이가 많기 때문에 무작정 다음 시즌을 결정할 순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이미 시즌2는 제작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들의 다음 행선지는 대만. 기존 출연진이 고스란히 이달 말 대만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신구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갈 거다. 이달 말쯤 대만으로 떠난다. 대만 편까지는 네 명이 모두 간다. 이서진이 합류할지는 모르겠다”고 귀띔했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