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몰려와 구멍 난 바지를 가리키면서 옷을 달라고 했다. 함께 간 이철수 선교사가 이렇게 내막을 알려주었다.
“구호품을 가지고 와서 대부분 사진만 찍고 가지 난민들에게 직접 전달하지는 않죠. 그러니 배달사고가 나서 물품들이 엉뚱하게 전용되는 겁니다. 저 같은 선교사들이 직접 전달하면 좋겠어요. 그러면 사고도 없어지고 복음을 전하는 좋은 기회가 될 텐데 말이죠.”
암시장에서 많은 구호품들이 거래되는 걸 목격했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기부문화가 열매를 맺으려면 그 실행과정이 엄격하고 사랑과 진정이 묻어 있어야 한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몇 개의 소송을 봤다. 부산대에 195억 원을 기부한 송금조 회장 부부가 소송을 제기했었다. 학교 측에서 돈을 엉뚱하게 다른 데 썼다는 이유였다. 아름다운 미담이 추악한 송사로 바뀌고 구순을 바라보는 노부부의 가슴에 대못이 박혔다. 기부를 했던 송금조 회장은 “참 나쁜 사람들이다. 내가 그 돈을 모으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라고 탄식했다.
평생 김밥장사를 해서 번 돈을 대학에 기부한 할머니의 좌절도 전해 들었다. 그 돈을 받은 대학의 담당자가 할머니 이름을 넣기로 약속했던 강당 건물에서 슬며시 이름을 빼버렸다는 것이다.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문제다.
<사랑의 리퀘스트>란 방송 프로그램을 보고 평택의 넓은 농장과 거액을 쾌척한 강태원 옹이 있었다. 역대 최고액의 개인기부로 화제가 되고 대통령까지도 잘 쓰겠다고 감사의 뜻을 표명했던 선행이었다. 강 옹은 불쌍한 노인들을 위한 시설을 해 달라고 부탁하고 저세상으로 갔다.
그러나 10년이 흐른 지금 강태원 옹의 아름다운 기부 역시 송사에 휘말려 얼룩졌다. 강 옹의 뜻과는 달리 돈의 사용 목적은 방송 지원으로 되어 있었다. 그가 기부한 농장은 복지사업을 하지 않았다고 수십억 원의 세금폭탄을 맞았다. 부두 노동자와 노점상을 하면서 벌었던 강 옹의 피 같은 돈이 집행하는 사람의 무성의로 안개같이 증발했다.
관련자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그 원인을 살펴보았다. 기부 받은 측의 어두운 마음이 도사리고 있었다. 애초 그 돈을 다른 데 쓰고 싶었다. 말장난과 법 장난으로 기부자를 농락했다. 이사라는 직책을 명함에 한 줄 넣기 위해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그럴 듯해 보이고 남의 돈 쓰는 재미가 괜찮은지도 모른다. 연줄을 타고 낙하산식으로 내려온 실무 책임자는 월급이나 받고 편안히 지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기부는 염불보다 잿밥에 눈 먼 사람들에 의해 추악한 잔치판이 됐다. 법은 나쁜 사람들을 보호하는 엉뚱한 결론을 냈다. 일단 기부했으면 무엇에 쓰든지 상관하지 말라는 케케묵은 법 이론이 악용되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기부문화가 꽃필 수가 없다. 이건 일면만 보는 내 의견이다. 아니기를 희망한다.
변호사 엄상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