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려다니던 김한길 ‘승부수’ 던졌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지난 1일 서울광장에서 시민들에게 국정원 개혁 촉구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다. 박은숙 기자
김한길 대표의 극단 처방은 사실 의외의 결단이다. 7월 중순, 정세균 고문을 비롯한 몇몇 민주당 인사들의 장외투쟁 주장이 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국정조사를 포기하고 그런(장외로 나가는) 게 결단력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며 선을 그었기 때문. 사실 이러한 결단 직전까지 김한길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여권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더라도 파행은 절대 막겠다는 기본 안을 고수했다.
김한길 대표의 긴급 기자회견 직전 <일요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한 조경태 최고위원 역시 “새누리당 입장을 일부 수용하더라도 국정조사가 파행으로 가선 안 된다는 것이 당 지도부의 입장”이라면서 “장외투쟁에 대해선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부정적 입장을 적극적으로 피력했다(36쪽 인터뷰 기사 참조).
그렇다면 김한길 대표가 종전의 입장과 상반되는 극단적 결단을 내린 배경은 뭘까. 김 대표의 긴급 기자회견 직후 기자와 만난 민주당 핵심 당직자는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김한길 대표로서는 정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의원총회를 통해 장외투쟁에 대한 대다수 의원들의 요구가 결집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무엇보다 여권이 부추겨 놓은 정쟁에 질질 끌려만 다니는 나약한 야권과 그 지도부에 대한 비판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며 “국정원-NLL 정국에서 그 어떤 주도권도 없이 친노 진영에 끌려 다녔던 김한길 대표 본인의 위치도 맘에 크게 걸렸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김한길 대표 본인이 취임 당시 처음에 약속했던 ‘선명한 야당, 강한 당대표’를 쟁취하기 위해서라도 장외투쟁은 필수불가였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김한길 대표의 이번 승부수는 무리수로 귀결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대선 이후 들어선 민주당의 당 지도부는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 돌입한 바 있다. 지난 6월 비대위원장직 퇴임 직후 <일요신문>과 만난 문희상 의원은 “앞으로 민주당에 있어서 장외투쟁은 없다. 정당이니만큼 모든 문제는 의회 내에서 해결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문 의원은 당시 “비대위는 차기 지도부가 잘 달릴 수 있도록 ‘레일’ 까는 일에 집중했다”고 표현했다.
대선 패배 이후 흐트러진 당을 재정비하고 명실상부 제1 야당의 순기능을 다 할 수 있도록, 여권과 진정 정책으로 승부할 수 있도록, 당 시스템을 재건하는데 집중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됐든 김한길 대표의 이번 선택은 앞선 지도부의 바람과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 꼴이 됐다. ‘장외투쟁 불가’라고 꼭 집어 얘기한 전임 지도부 수장의 발언을 민망하게 만든 셈이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역시 민주당에 냉랭한 여론의 반응이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8월 1일, 정책 전단지를 나눠주던 김한길 대표는 별 관심 없다는 듯 그저 지나치는 시민들, 심지어 받자마자 전단지를 땅바닥에 버리고 가는 여러 시민들을 목격하며 굴욕(?)을 겪기도 했다.
민주당 민주정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내심 씁쓸해 하며 “무엇보다 20%대로 하락한 당 지지율이 가장 큰 문제다. 이번 국정원-NLL 정국 속에서 민주당은 여권의 정치공작에 당한 피해자 격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해 여권과 함께 당 지지율이 동반 하락하는 기현상을 겪었다”면서 “반면 이 시점에서 대통령 지지도는 다시금 60%를 상회하고 있다. 장외투쟁의 핵심은 결국 의회 밖 시민의 공감을 얻고 동행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게 전혀 안 되고 있는 것이다. 큰 문제”라고 말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