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워머’ 전락하면 브라질 멀어진다
# 월드컵 효과?
물론 아직 장담할 수는 없다. 지금은 대다수 유럽 클럽들이 갓 소집돼 전지훈련을 하거나 프리시즌 친선경기를 준비하고 있는데다 이적 시장 만료일(현지시간 8월 31일 자정)까지 여유로운 상황이다. 실제로 유럽 리그 이적은 8월 마지막 주에 봇물 터지듯 소식이 쏟아진다. 작년 런던올림픽 남자 축구 동메달리스트 자격으로 병역 면제 혜택을 받은 뒤 올 여름 논산 신병훈련소에서 4주간의 기본 교육을 마친 박주영(아스널)도 과거 프랑스 리그앙(1부 리그) AS 모나코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로 이적할 때 이적 시장 마감일에 극적으로 행선지를 바꾼 사례가 있다.
손흥민은 빅클럽 러브콜을 마다하고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으로 이적했다. 사진은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 손흥민이 드리블을 하는 모습.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월드컵은 선수들이라면 누구나 도전하고 싶은 무대다. 스스로의 명성과 이름값을 높이고 싶은 선수들은 월드컵을 적어도 한 번쯤은 뛰어야 한다는 사고를 갖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전제가 따른다. 4년마다 기회가 돌아오기 때문에 절정의 기량을 보여야 한다. 꾸준한 출전 기회와 함께 꾸준한 경기력을 보여줘야 한다. 모험을 걸기 쉽지 않다. 오히려 어느 정도 진가를 확인시킨 경우라면 익숙한 기존 팀에 남아 계속 실전 감각을 쌓는 게 낫다. 선수들의 생각도 우리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이미 유럽 리그를 누비는 선수들은 어떨까.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손흥민(바이엘 레버쿠젠)의 경우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난 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SV에서 맹위를 떨쳤던 손흥민은 올여름 이적시장을 전후로 수많은 러브콜을 받았다. 토트넘 홋스퍼, 리버풀, 첼시 등 잉글랜드부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위시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인터밀란 등 이탈리아 세리에A까지 무수히 많은 클럽들이 관심을 표명했다. 물론 그 가운데 구체적인 문서를 보내온 곳도 많았다. 분데스리가 내에서도 지난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팀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도 있었다.
그래도 손흥민의 판단 기준은 분명했다. 역시 월드컵 출전이 가장 큰 이유였다. 1차적으로 독일 내 잔류를 생각했고, 잔류 및 이적을 놓고 마지막 고민을 했다. 그렇게 이적으로 마음을 결정한 후에는 ‘좀 더 뛸 수 있는 팀’에 무게를 뒀다. 어느 정도 유럽 축구계 상위 클래스로 입지를 다진 도르트문트보다는 레버쿠젠이 손흥민에게 보다 넓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 분명했다. 손흥민의 측근도 “(손)흥민이가 크게 갈등하지 않은 결정적 사유가 있다면 바로 월드컵이었다”고 털어놓았다.
# 사고와 환경의 전환?
김보경.
지금은 독일 분데스리가 마인츠05로 이적한 왼쪽 풀백 박주호만 해도 스위스 1부 리그 FC 바젤에서 활약하며 유럽 스카우터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UEFA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 출전으로 눈도장을 받았다. 하지만 스위스에서 뛰는 동안 박주호 관련 소식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박주호의 선택이 나쁘다고 하는 이들은 더 이상 없다. 분명 박주호는 가장 성공적인 축구 인생을 개척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듯 단계를 거치며 성장하겠다는 뜻을 보인 또 다른 경우도 있었다. 김보경(카디프시티)이 그렇다. 런던올림픽 종료 후 처음부터 유럽 1부 클럽에서 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 김보경은 자신이 직접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 리그)을 첫 번째 도전지로 선택했다. 당장 프리미어리그나 분데스리가로 옮겼다가는 이도저도 안 될 수 있다는 불안감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는 ‘신의 한 수’로 통한다.
그리고 누구나 알 만한 선수 A는 오래 전부터 유럽 진출을 모색 중인데, 자신의 에이전트에게 ‘1부 리그’만 고집하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 시점에서의 자신의 분명한 한계를 알고 있어서다. A는 성급히 큰 무대로 나갔다가 실패하는 것보다 단계를 차근히 밟는 박주호-김보경 케이스가 옳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더욱이 어설픈 1부 리그 팀보다 2부 리그 팀이 재정이 좋은 경우도 있다. 실제로 A에게 최근 관심을 가진 B 클럽의 경우, 소위 빅4로 불리는 리그에 속했는데 놀랍게도 B 클럽은 A를 영입하는 조건으로 TV 중계권이나 스폰서를 받아 오라는 제안을 했다. 만에 하나, 스폰서 계약이 성사되고 이적이 현실화된다고 해도 A에게 장밋빛 미래가 없다는 건 삼척동자라도 알 만한 사실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A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유럽 축구시장에서는 ‘아시아 선수=스폰서 및 마케팅’이란 등식이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