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이 송두율 교수에 대한 구속을 강행하자 송 교수측 변호인들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0월3일 서울지검 소환 장면. | ||
국가정보원과 검찰로 옮겨가며 모두 13차례의 조사를 받은 끝에 ‘거물간첩’으로서의 혐의가 짙어졌다는 공안당국의 판단에서다. 하지만 그의 수감을 둘러싸고 송씨와 그를 지지하는 세력과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를 반드시 입증하겠다는 검찰·국정원 등의 힘겨루기는 더욱 격해지고 있는 형국이다.
송씨가 검찰에 의해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튿날인 22일 오전 9시를 조금 넘긴 시각. 서울 서초경찰서 수사과에서는 송씨 부인 정정희씨를 비롯한 가족·측근과 경찰 관계자와의 날카로운 신경전이 벌어졌다.
수사과에 도착한 송씨측 일행 5명이 면회를 요청하자 경찰측이 이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송씨측이 “원칙적으로 오전 9시부터 유치자 면회가 가능한 것 아니냐”고 거칠게 항의하고 나서야 10분간의 면회가 주어졌다.
면회 직후 양측은 송씨에 대한 물품반입을 놓고 다시 한번 맞섰다. 가족들이 준비해 온 송씨의 옷과 약품·책 등을 경찰이 “처방전에 없는 약품을 반입할 수 없다”며 불허한 데 따른 것이다. 경찰은 가족들이 “얼마 전 수술한 곳에 발라야 한다”며 재차 요청하자 치질연고만 반입을 겨우 허용했다.
송씨측과 경찰은 요구르트 한 병을 놓고도 입씨름을 벌였다. 송씨가 “아침을 먹지 못했으니 불가리스 요구르트를 먹게 넣어달라”고 해 가족들이 이를 반입하려 했지만 경찰측이 “간식도 정해진 시간에 넣어야 한다”고 우겼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경찰이 판정승해 오전 11시30분 사식시간이 돼서야 송씨는 요구르트를 먹을 수 있었다.
송씨에 대한 경찰의 이런 빡빡한 태도는 물론 송씨 수사를 맡아온 서울지검 공안1부의 분위기를 상당부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송씨를 바라보는 검찰의 눈길이 차갑게 식어 있다는 얘기다.
이런 기류는 지난 20일 서초동 대검청사 15층 회의실에서 열린 전국 공안부장검사회의 때 송광수 검찰총장의 훈시 대목에서도 감지된다. 송 총장은 “최근 남북교류 확대 같은 시대적 상황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특정 이념에 경도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활동을 철저히 차단해 나가야 한다”고 힘을 주었다.
사실 이런 팽팽한 분위기는 구속결정에 이르기까지 검찰의 내부 움직임에서도 예고됐다. 10월17일 수사팀을 지휘하던 박만 서울지검 1차장이 “송 교수가 사실상 자수한 데다 ‘참회’ 수준의 반성이 있으면 관용할 수 있다”며 조건부 선처 입장을 밝혔다. 같은 날 검찰은 송씨측 요구를 받아들여 송씨를 예정보다 이른 오후 4시께 돌려 보내기도 했다.
▲ 박만 서울지검 1차장. | ||
특히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된 21일 오후부터 검찰의 분위기는 한껏 굳어졌다. 서울지검의 한 고위 간부도 영장청구 직후 송씨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그는 경찰서에 수감된 송씨 건강문제와 관련해 ‘아픈 데도 있다는데’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 정도 질병이야 뭐 다 있는 것 아니냐”며 구속에 지장이 있을 정도가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언급한 송씨에 대한 ‘법적인 포용과 우리 사회의 관용’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려했지만 사안이 워낙 중요하다”고 못박았다. ‘어느 정도 반성이 있어야 기소를 안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도 “저쪽(송씨측)에서 커닝을 하니까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송씨측의 입장을 배려하면서 국정원 조사과정에서의 문제점도 짚어낼 것 같던 조사초기와는 확연히 달라진 태도다.
사태가 이렇게 치닫자 송씨의 구속을 관철해 낸 송광수 체제의 검찰과 청와대·법무부 사이에 이상기류가 형성된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법조계 안팎에서 떠올랐다. 무엇보다 노무현 대통령이 10월13일 국회연설에서 “우리 사회의 포용력을 세계에 보여주자”며 사실상 송씨에 대한 관용을 촉구했지만 검찰은 이에 개의치 않은 꼴이 됐다는 점에서다.
“노동당 후보위원인 게 드러나도 처벌할 수 있겠느냐”던 강금실 법무부 장관에 대해서도 검찰은 아랑곳하지 않고 ‘구속수사’라는 초강수로 받아쳤다. 국민여론에 민감한 파장을 미칠 수 있는 주요 공안사건이 청와대의 의중을 벗어나 검찰의 손에서 주물러지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와 검찰 사이에서 수사조율 역할을 맡았던 청와대 파견검사가 복귀하고 양측의 핫라인도 두절된 상황에서 청와대는 더 이상 나설 수는 없는 상황이라는 게 법조계의 해석이다.
일단 검찰의 송씨 구속 강행에 대해 강 법무부 장관도 “검찰의 의견을 수용하겠다”고 밝혀 장관의 지휘권 발동 논란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검찰과 법무부 사이에 적지 않은 감정의 앙금이 남을 게 분명하다.
특히 이런 맥락에서 검찰총장의 검찰인사 배제설과 법무부 간부 징계 문제에 이어 대검 감찰권 이양, 인사협의권 명문화 등 문제로 갈등 조짐을 보여오던 강 장관과 송 총장 사이가 송두율 문제로 인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란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아무튼 송씨와 검찰측의 힘겨루기는 구속수사를 계기로 더욱 가파른 기세를 보이고 있다. 예상 외로 강경한 검찰의 입장에 뒤통수를 맞은 송 교수측은 구속과 동시에 묵비권 카드를 꺼냈다. 구속수사 과정에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 인정 문제 등 질문이 되풀이될 경우 사실상 조사에 응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송씨측의 묵비권 행사에 대해 서울지검 고위 관계자는 “그럼 우린 수화로 해야겠군”이라며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묵비권 운운하는 송씨측 조치에 자극받은 듯 검찰은 24일 송씨에 대한 첫 구속 수사 과정에서 변호인 입회를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영장청구 전에는 강요·폭언 등 여러 오해가 있을 수 있었지만 법원이 혐의사실을 어느 정도 인정해 구속수사의 필요성을 인정한 만큼 수사의 보안을 유지하고 효율적인 수사진행을 위해 변호사 입회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그러자 46명의 법조인으로 짜인 송씨측 변호인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독일국적 포기를 선언했던 송씨측을 위해 주한 독일대사관이 송씨 접견과 강금실 장관 면담을 요청하고 나서자 검찰은 껄끄러워하고 있다. 송씨측이 ‘접견권 제한’을 주장하며 수사과정을 문제삼고 있는 데서 나아가 독일정부를 등에 업고 검찰을 코너에 몰려 하는 게 아니냐 하는 측면에서다. 송씨와 검찰·국정원의 이런 신경전은 앞으로의 조사과정뿐 아니라 기소가 이뤄질 경우 재판과정에서도 더욱 치열한 양상을 띨 것이란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진필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