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은 북한으로부터 땅을 빌려서 지은 공단이다. 시장경제에선 공장주가 계약을 위반하지 않는 한 땅 주인이 행사할 권리는 제한적이다. 기껏해야 토지 반환소송을 통해 계약위반 여부를 따진 뒤 승소하면 건물을 철거하게 하는 방법밖에 없다. 개성공단 설립 계약서에도 그런 일반적인 상거래 조항이 있었을 것이나 북측은 ‘존엄 훼손’이라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공단을 폐쇄했다. 북측이 말하는 존엄 훼손이란 개성공단이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현금수입원이기 때문에 절대 폐쇄하지 못할 것이라는 남측 언론들의 추측 보도를 일컫는다. 그런 식의 남측 언론보도는 김정일 시대에도 있었다. 그러나 서해교전,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 때도 정상 조업됐던 개성공단이다.
개성공단에서 서베를린의 자유와 개방을 기대하기는 아직 이르다. 개성공단을 통해 들어가는 남쪽의 바람은 아주 미미하다. 그곳에선 아예 남한 방송을 들을 수 없고 휴대폰 사용도 안 된다. 북쪽 근로자들에게 함부로 말을 걸 수도 없다.
그렇다고 서베를린적 요소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북쪽 근로자들이 가족들에게 맛보이려고 퇴근 때 호주머니에 넣어가지고 가는 간식용 초코파이, 공장 구내식당의 풍성한 한 끼 식사, 배우는 기술, 버는 월급, 남쪽 직원들이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와 눈빛, 이런 것들이 요란한 정치적 구호보다 더 강력한 남풍(南風)일 수 있다.
북측이 원하든 원치 않든 개성공단은 그들에게는 시장경제 학습장이다. 남북 간 위기적인 대결상황에서도 공단이 폐쇄되지 않았던 것은 우리의 인내심 못지않게 북한의 학습의지도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협력 사업의 우여곡절은 북한이 시장경제에 면역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거부반응이다. 개성공단의 면역력이 해주 남포 의주 원산 등지로 확산돼야 평화통일도 가능해진다.
북한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의 폐쇄를 통해 확실히 알아야 할 게 또 있다. 시장경제를 진심과 성의를 갖고 가르쳐 줄 나라는 한국뿐이라는 사실이다. 중국이 도움될 것 같지만 동족만큼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난주 타결된 개성공단 협상이 북한 측에 그런 인식 변화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한남대 교수 임종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