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찔끔’ 행동은 ‘미적’
안철수 의원이 5월 22일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이사장으로 영입한 최장집 교수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한편 안철수 캠프 측 일부 인사들은 최 명예교수의 사임이 안 의원과의 사적인 갈등에서 빚어진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안철수 캠프는 현재 공황 상태다”라며 최 명예교수의 사퇴는 애초부터 예견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안철수 캠프가 사실은 해체될 조직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 인사들은 안철수 캠프 몰락의 원인으로 ‘자금력 부재’와 ‘안 의원의 태도’를 꼽았다. 익명을 요구한 안철수 캠프의 한 인사는 “(최 명예교수와의 결별은) 이미 예견된 사태였다. 안 의원은 누가 다 해주는 걸 본인이 올라타는 스타일이지, 자신이 새로운 생각을 해서 어떤 걸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다. 안 의원이 스스로 만들어낸 건 ‘안철수 백신’이 유일할 것”이라며 “어떨 때 안 의원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누가 해주기만 바라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안 의원의 이런 소극적인 대처 때문에 신당 창당에 대한 열망들이 안 의원의 정치적 배경이었던 최 명예교수에게 간 것 같다. ‘최장집 당신이 직접 움직여 창당을 해 달라’는 부담으로 말이다”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캠프 측 관계자 역시 “정치하는 건 사람을 모아서 일을 시키고 돈을 써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안 의원은 자금을 풀지 않는다. 돈이 없으면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최장집이란 고령의 학자가 자기 돈을 써가면서 조직을 만들고 사람을 모을 수 있겠나. 안 의원이 애초부터 최 명예교수에게 뭘 기대하고 ‘인바이트’(초대)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안 의원은 민주당도 그렇게 영입하기 원하는 최장집만 꽂아 넣으면 자기들끼리 조직화하고 신당 창당하고 잘 굴러갈 줄 알았던 것 같다”며 안 의원의 소극적인 태도를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앞서의 윤 전 장관은 “겪어본 바로는 안 의원은 신중하고 적극적이지 않은 편이었다. 뭔가를 적극적으로 나서서 하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신당 창당 과정에서도 그러한 태도를 보였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안 의원이 최 명예교수를 다시 붙잡지 않으면 회복 불능의 정치적 위기가 올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안 의원이 다시 최 명예교수를 붙잡을 가능성은 과연 있는 것일까.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안철수가 최장집을 붙잡는 제스처는 하겠지만 최장집 입장에선 자신의 결정을 번복할 가능성은 없다. 최 명예교수가 전형적인 학자 스타일이라서 그렇다. 즉 안 의원에게 있어 최 교수는 이미 지나가 버린 KTX나 마찬가지”라고 분석했다.
기자가 만나본 안철수 캠프 측 일부 인사를 비롯해 그 캠프에 관심을 보여 온 정치권 인사들 다수는 이번 ‘최장집 사퇴 사태’를 두고 안 의원에게 실망했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원로 인사는 “안 의원이 앞으로 뭔가를 희생하는 태도를 보이겠다고는 하지만 이번 일로 안 의원한테 마음이 떠난 사람이 많다. 안 의원은 상대가 자신을 존중하고 존경해주기만을 바라지 말고 위기를 감수하더라도 흙탕물에 뛰어들어서 뭔가를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안 의원의 신중함을 알고 존경하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지체하다 보면 ‘안 의원이 신당 창당도 남이 해주길 미적거리며 기다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이제는 정말 움직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