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지난 9일 이연택 대한체육회장(오른쪽)과 국가대 표 코치진들이 처우개선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 ||
국가대표선수들의 요람이라는 태릉선수촌에서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던 걸까. 또 ‘지도자’들이 앞에 나서야 했던 속사정은 과연 무엇일까.
문제를 제기했던 국가대표 코치협의회는 “일단 이연택 회장의 말을 전적으로 신임하기로 했다”며 “우리가 여건이 좋아지리라는 희망을 갖는 것은 이 회장이 행정가 출신이고 또한 체육인이기에 문제의 본질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코치진에 따르면 이 날 이연택 회장은 코치진의 출석요구가 없었음에도 협상에 자진해서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 날 협상에선 대한체육회 내부의 정보전달 체계의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난 것으로 전해졌다. 코치진은 이미 지난 5월14일 문화관광부 장관, 대한체육회장, 체육진흥공단이사장 앞으로 ‘처우개선과 훈련방안에 대한 건의’를 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협상 테이블에 나온 이연택 회장은 “전혀 본 바가 없다”며 체육회 직원들을 나무라기 바빴다. 이에 대해 한 대표팀 코치는 “ 이것말고도 이제까지 많은 건의서를 보냈지만 단 한번도 결정권자에게 전달이 되지 않았다”며 “선수들과 코치들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협상의 주 안건은 표면적으로 수당 인상과 시설 확충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히 돈 문제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김태우 코치협의회 총무(현 레슬링 국가대표팀 감독)는 “솔직히 여기 들어오는 선수나 코치들은 각 분야의 최고다. 국제대회에서 2등 입상은 명함도 못 내민다. 그만큼 각 분야 엘리트들이 모인 곳인데 대우가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선수나 코치진의 자긍심을 상하게 할 만큼 처우가 형편없었다는 지적이다.
한 대표팀 코치는 “선수들은 솔직히 ‘사람’ 대접 받으며 운동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데 하루 수당이 5천원이다. 밖에 나가서 접시를 닦아도 이것보다는 더 받는다”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실제로 선수들이 털어놓는 불만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부 선수들은 ‘선수촌 식사가 형편없어 외식을 해왔는데 이젠 밖에 나가서 먹는 것도 지겹다’고 말한다. 이들은 또한 ‘일주일에 한 번 물을 가는 목욕탕에는 가서 목욕해봤자 때가 더 낀다’고 우스개 소리를 하며 “여기 와서 이틀만 우리랑 생활을 해보면 알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선수촌 관계자는 “하루 식사원가가 2만5천원으로 결코 형편없는 음식은 아니다. 또 선수들의 개선요구에 따라 요즘은 집에서 먹는 식단을 겸하고 있다. 그리고 목욕탕 문제는 이틀에 한 번 물을 갈고 있는 것이 방침이다. ‘일주일에 한 번’은 들어본 적도 없다”고 해명했다.선수촌에 소집된 선수들이 받는 한 달 ‘월급’은 대부분 8만~15만원선. 그러나 대표팀에는 훈련복을 비롯해 치약 같은 생필품이 거의 지급되지 않아 자기 돈을 써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
||
| ▲ 훈련거부 파동이 일단락된 가운데 태권도대표선 수들이 훈련을 재개했다. 이종현 기자 | ||
선수들은 일부 종목 대표선수와의 ‘차별’과 형평성 문제를 거론하기도 했다. 한 예로 대표팀 축구선수들이 받는 수당(15만원)과 다른 종목 선수들이 받는 수당(보통 5천원)이 약 30배 차이가 난다고 꼬집었다. 이외에도 ‘월드컵 대표팀의 16강 진출 병역 면제 혜택’에 대해서도 많은 얘기를 쏟아냈다. 한 선수는 “차라리 축구선수들이 병역혜택을 받은 것은 잘된 일이다. 정부가 형평성을 고려한다면 이번 기회에 다른 종목 선수들의 ‘병역문제’가 매듭지어졌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른바 ‘비인기 종목’의 한 선수는 “선생님(코치)들은 외부로부터 압력을 너무 받아 (끝까지 주장을 펴기가) 힘들다. 그래서 이번 일이 잘못될 경우 선수들이 나설 것이다. 우리도 여기서 선수생활을 마치면 지도자의 길에 들어서게 되는데 남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고 답했다.
실제로 몇몇 코치들은 협상이 있기 전 날 여러 군데에서 직겙A♣岵 ‘협박’전화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한 코치는 “대표팀 감독은 ‘파리 목숨’이다. 따라서 불만이 있어도 나서서 말하기 힘든 상황이다”고 실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태릉선수촌에는 경제적으로 힘든 선수도 있지만 선수촌에 들어올 정도면 대개 회사나 단체에 소속돼 있게 마련이어서 심각하게 생활고를 겪는 선수들은 없다고 한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코치진, 특히 비인기종목 코치진의 처우다.
선수촌 내 전임 감독일 경우 한 달에 1백80만원을 선수촌에서 받고 나머지는 협회에서 보조비 30만원 정도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체나 대학에 소속되어 있는 감독(이중직)은 한 달에 1백50만원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 이들은 대회를 앞두고 선수촌에서 대부분 8개월에서 10개월 정도 지내게 된다. 집에 가는 횟수는 많아야 일주일에 3~4번 정도. 그나마 집이 지방에 있는 코치들은 집에 갈 엄두도 못 낸다고 한다. 상당수 코치들이 가정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한 코치는 “해마다 겪는 일이지만 여기 코치들 중 상당수가 이혼 위기에 처해 있는 것으로 안다”고 털어놓았다.
대부분의 전임코치들은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맞벌이에 의존하고 있지만 한창 초등학교에 다닐 아이들을 돌봐주지 못해 가정문제로 비화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상당수 비인기 종목의 전임 코치는 체육과 관계없는 직장을 다니기 힘들기 때문에 대회기간이 끝나고 다시 소집이 있을 때까지 ‘손가락만 빨고 앉아 있을’ 수 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했다.
코치진의 생활고는 다음과 같은 예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2년 전 한 육상 코치가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코치직을 그만두고 선수촌을 나가서 숯불갈비식당에서 숯불 굽는 사람으로 취직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한 감독은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 우수한 체육인재가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생활고 때문에 일해야 하는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