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와 접촉 후 모두 연기처럼…
2006년 실종된 김미자 씨를 찾는 전단지. 4000만 원에 달하는 돈을 들고 홍 씨를 만나러 간 후 연락이 끊겼다.
김 씨 가족들로부터 실종신고를 받은 경찰은 당일 김 씨와 만나기로 했던 홍 씨를 참고인으로 불렀다. 덤프트럭 기사로 일하던 홍 씨는 김 씨의 보험 고객이자 10년 넘게 친구로 지내온 사이였다. 홍 씨는 경찰 조사에서 “김미자 씨가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고 연락도 받지 않았다. 기다리다 결국 만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진술했다. 경찰도 홍 씨에 대한 특이점도 발견하지 못해 바로 풀어줬다.
김 씨 실종 4일 만인 2006년 6월 14일, 경남 밀양 송원리의 인적 드문 한 농로에서 김 씨가 사건 당일 타고 나갔던 차량이 발견됐다. 차 앞뒤 번호판은 다 떼어져 있었고, 차 내부 김 씨의 물건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현찰 4000만 원 역시 흔적도 없었다.
김 씨 차량 발견으로 수사에 박차를 가하던 경찰은 수상한 점을 찾아냈다. 실종 당일 김 씨를 만나지 못했다는 홍 씨의 진술과는 달리, 홍 씨가 김 씨와 함께 차에 타고 있는 모습이 CCTV에 찍힌 것. 김 씨가 은행 인출기에서 현금 210만 원을 찾을 때도 홍 씨는 김 씨 차에 함께 있었던 것이 드러났다. 김 씨 실종 다음날 김 씨 차량이 발견된 밀양 근방에서 홍 씨를 봤다는 목격자들의 증언도 속속 나타났다.
혐의점이 발견되고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홍 씨는 소식을 끊고 잠적했다. 이에 경찰은 홍 씨를 공개수배했고, 사건 발생 6개월 만인 2006년 12월 시민의 제보로 울산 울주군에서 포장마차를 하고 있던 홍 씨를 검거할 수 있었다. 검거 당시 홍 씨는 변장을 하고 가명을 쓰고 있었다.
홍 씨를 수사하고 있던 경찰은 김미자 씨의 실종이 자신의 딸 최점옥 씨(당시 41세) 실종과 너무나도 비슷하다는 한 어머니의 제보를 접수했다. 최 씨가 사라진 건 김 씨가 사라지기 9개월 전인 2005년 9월 30일. 최 씨 역시 실종 당시 통장에서 1700만 원을 인출하고, 1300만 원을 대출받는 등 3000만 원의 현금을 소지하고 집을 나섰다. 또한 그의 차량 역시 최 씨 실종 10개월 만인 2006년 7월 경남 김해 진영읍의 한 초등학교 부근에서 발견됐다.
더욱 의심스러운 사실은 최점옥 씨가 사라진 김미자 씨, 용의자 홍 씨와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는 점이었다. 최 씨는 1998년부터 김 씨의 보험 고객이었다가, 김 씨의 추천으로 김 씨가 다니던 보험회사에 취직해 보험설계사로 일하고 있었다. 홍 씨는 김 씨의 소개로 2002년부터 알게 됐고, 최 씨 역시 사건 당시 소지하고 있던 3000만 원을 이용해 홍 씨와 덤프트럭 사업을 구상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 씨의 어머니는 “용의자였던 홍 씨가 내가 운영하던 식당에 밥 먹으러 2~3번 오기도 했다. 그래서 딸의 실종과 홍 씨가 관련이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이 수사를 확대하자 유사한 형태로 실종된 이는 김미자 씨와 최점옥 씨 2명뿐이 아니었다. 김해와 부산 일대에만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실종 여성이 3명이나 더 있었다. 경남 김해 생림면에 살던 김 아무개 씨(당시 46세)는 지난 2002년 3월 13일, 당시 함께 살던 어머니에게 “식당에 일하러 간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는 집을 나서며 남편과 이혼하며 받은 위자료 4000만 원을 들고 나선 것으로 파악됐다.
2011년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도 이들 여성들의 연쇄 실종사건이 다뤄지기도 했다. 사진출처는 SBS.
이들 3명 역시 김 씨 실종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홍 씨와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사이였고, 함께 덤프트럭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앞서 살펴봤듯 실종 당일 모두 거액의 돈을 소지하고 있었다.
모든 정황이 홍 씨를 범인으로 가리키고 있었지만 홍 씨는 혐의를 철저히 부인했다. 김미자 씨를 만나지 못했다는 진술이 거짓으로 드러나자 “김미자 씨를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김 씨가 차키를 차에 꽂아둔 채 어딘가로 사라져 나타나지 않아 혼자 차를 끌고 왔다” “갑자기 괴한 3명이 와서 나를 폭행하고 김 씨를 납치해 가버렸다”는 등으로 진술을 번복하기 시작했다. 김 씨의 차량을 운전해 밀양 송원리의 농로에 버린 사실에 대해서도 “나와 만난 뒤 곧바로 김 씨가 실종된 데다가, 김 씨가 가지고 있던 현금이 없어진 사실이 드러나면 내가 범인으로 의심 받을까봐 두려워 김 씨의 차량을 옮기고 도피생활을 한 것일 뿐, 난 김 씨의 실종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의 관계자는 “거짓말탐지기를 동원하니 당연히 ‘거짓’으로 나왔다. 하지만 홍 씨는 승복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결국 김해경찰서는 진술 번복 등 심증은 있었지만, 김미자 씨를 비롯해 5명의 실종 여성들의 시체 등 구체적인 물증을 찾지 못해 홍 씨를 살인이나 시체은닉 또는 납치, 감금 폭행 등의 혐의로 기소하지 못했다. 다만 홍 씨는 김 씨 차량의 번호판을 훼손하고 유기한 재물은닉 및 자동차관리법 위반 혐의로 2007년 5월 법정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을 뿐이었다. 홍 씨는 그 후 2009년 만기 출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홍 씨는 출소 이후 지금 어디에 있을까. 사건 당시 끝까지 홍 씨의 혐의를 입증하려 했던 경찰의 한 관계자는 “김 씨 실종사건은 현재 다른 담당자가 맡아서 수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 하지만 내가 다른 부서로 이동해서 어떻게 돼 가는지 잘 모르겠고, 출소 후 홍 씨의 행방에 대해서도 파악이 안 된다”면서도 “다섯 명의 실종 여성들과 유사한 형태의 사건이 이후에는 또 발생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한편 네 번째로 실종된 최점옥 씨의 어머니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딸의 실종사건에 새로이 밝혀진 사실이 있느냐”며 애가 타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경찰들도 못 찾는 것을 내가 찾을 수 있겠나 싶어서, 세월이 약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하고 지내려 하는데 딸 얼굴이 자꾸 생각나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최 씨의 실종은 가족들의 삶에도 큰 상처를 줬다. 어머니는 “딸이 실종되고 얼마 안 있어 사위(최점옥 씨의 남편)는 손자 2명과 함께 연락을 끊었다. 딸 실종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손자들이 고등학생이 돼 2번 정도 찾아온 것이 전부였다. 이후 사위가 손자들에게 나를 다시는 못 보게 했나 보더라. 연락처도 바뀌었다. 자기도 상처가 있었으니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끝을 흐렸다.
죽기 전에 딸의 생사라도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어머니는 기자에게 경찰에 재조사를 문의할 수 있느냐고 재차 물었다. 하지만 경찰에서는 사건에 대한 새로운 정황이 나오지 않는 한 재수사는 힘들지 않겠느냐는 답변이 돌아올 뿐이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재수사·유죄 판결 가능성
살해당한 정황 없어 ‘희박’
2002년부터 2006년까지 김해와 부산 일대에서 벌어진 40대 여성 연쇄실종 사건의 피해자 가족들 중 한 가족이 지난 7월 김해 중부경찰서에 재수사를 문의해왔다. 그들이 재수사 가능성의 근거로 제시한 것은 지난 2010년 부산에서 일어난 ‘시신 없는 살인사건’의 대법원 판결이었다. 대법원이 지난 6월 28일 피고인 A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 것.
A 씨는 2010년 부산에서 보험금을 목적으로 자기 이름으로 30억 원 규모의 보험을 든 뒤, 여성 노숙자를 살해하고 자신이 죽은 것처럼 속인 혐의로 기소됐었다. 사건 당시 노숙자의 시신이 화장돼 없었기 때문에 확실한 물적 증거가 없어 법정에서 논란이 됐으나, 결국 재판부는 A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것이다.
피해자 가족들은 이번 대법원 판례로 비춰봤을 때 비록 실종 여성들의 시신이 발견되지는 않았어도 연쇄실종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홍 아무개 씨를 기소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주장을 내세웠다.
그러나 경찰에서는 김해·부산 40대 여성 연쇄실종사건은 시신 없는 살인사건과 달라 기소가 어렵다고 난색을 표했다. 경남지방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시신 없는 살인사건의 경우는 시신을 화장해 확실한 물적 증거가 없었지만 피해자가 ‘살해당했다’는 정황은 확실했기 때문에 기소가 가능했다. 그러나 이번 연쇄실종사건은 아직 피해자들이 실종된 것인지, 살해당해 죽은 것인지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홍 씨를 기소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살해당한 정황 없어 ‘희박’
A 씨는 2010년 부산에서 보험금을 목적으로 자기 이름으로 30억 원 규모의 보험을 든 뒤, 여성 노숙자를 살해하고 자신이 죽은 것처럼 속인 혐의로 기소됐었다. 사건 당시 노숙자의 시신이 화장돼 없었기 때문에 확실한 물적 증거가 없어 법정에서 논란이 됐으나, 결국 재판부는 A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것이다.
피해자 가족들은 이번 대법원 판례로 비춰봤을 때 비록 실종 여성들의 시신이 발견되지는 않았어도 연쇄실종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홍 아무개 씨를 기소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주장을 내세웠다.
그러나 경찰에서는 김해·부산 40대 여성 연쇄실종사건은 시신 없는 살인사건과 달라 기소가 어렵다고 난색을 표했다. 경남지방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시신 없는 살인사건의 경우는 시신을 화장해 확실한 물적 증거가 없었지만 피해자가 ‘살해당했다’는 정황은 확실했기 때문에 기소가 가능했다. 그러나 이번 연쇄실종사건은 아직 피해자들이 실종된 것인지, 살해당해 죽은 것인지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홍 씨를 기소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