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고민없는 애주가라면 ‘보수파’
별다른 고민 없이 즐겁게 술을 즐기는 사람들이 보수적인 경향이 더 강했다. 사진은 영화 <싸움>의 한 장면.
과거 독일 녹색당 총수였던 요슈카 피셔가 의회에 첫 등원하던 날의 광경은 전 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당시 피셔는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당당하게 등원했으며, 그의 이런 모습은 다분히 좌익 성향이 짙은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독일에서 녹색당은 물론 좌파 정치인들 사이에서 이렇게 튀는 차림새를 한 정치인은 찾기 힘들어졌다. 이들은 이제 우익 정당인 기민당 정치인들과 별로 구분되지 않는 차림새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전히 우익과 좌익은 서로 다른 특성으로 구분되긴 하는 걸까? 이에 대해 학자들은 ‘그렇다’라고 말한다. 외적으로는 거의 구분이 가지 않는다 해도 이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유형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미국의 리서치 기관인 ‘퓨 리서치 센터’가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나는 행복한가?’라고 묻는 조사에서 보수적(우익) 성향의 사람들은 40%가 ‘그렇다’라고 응답한 반면, 진보적(좌익) 성향의 사람들은 27%만이 ‘그렇다’라고 응답했다. 그리고 중도 성향의 사람들은 33%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또한 불쾌한 감정에 대해서도 우익 성향의 사람들이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떤 불쾌한 사건이나 사물을 대했을 때 ‘더럽다’는 느낌을 더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다음의 몇 가지 조사 결과를 보면 조금이나마 해답을 얻을 수 있다. 먼저 ‘주량’에 대한 연구를 실시한 미국의 심리학자 스콧 아이델만과 크리스 크랜달의 조사 결과를 보자.
이들이 보수적 성향의 사람들과 진보적 성향의 사람들의 집을 살펴본 결과, 보수적 성향의 사람들의 집에는 진보적 성향의 사람들의 집에서보다 술병이 더 많이 발견됐다. 이는 보수주의자들이 집에서 술을 마시는 횟수가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하며, 다시 말해 이들은 술에 취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들이 이렇게 술을 즐겨 마시는 이유에 대해서 연구진들은 무언가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진보적 성향의 사람들은 말짱한 정신으로 무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더 강하다.
레모네이드를 마시는 좌파 정치인 위르겐 트리틴(위)과 맥주를 마시는 우파 정치인 마르쿠스 죄더(아래). 사진출처=포쿠스
심리학자인 존 조스트는 보수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의 살림살이를 비교 연구했다. 보수주의자들의 집에서는 모든 것이 질서정연했고, 깨끗했으며, 청소가 잘 되어 있었다. 그리고 스케줄 달력, 세탁물 바구니, 다리미, 많은 양의 비누, 세제 등이 특히 눈에 띄었다. 이를 통해 그가 도출해낸 귀납적 결론은 다음과 같다. 보수주의자들은 ‘양심적이며, 질서를 좋아하고, 책임감이 강하다.’
이에 반해 진보주의자들의 집은 창조적이고 새로운 물건들로 가득했다. 다시 말해 세계를 향해 열려 있고, 체험을 좋아하는 생활 방식을 나타내는 사물들이 많았다. 이를테면 여행책, 영화극장 표, 음반 CD 컬렉션, 미술품 등이 눈에 띄었다.
이에 대해 조스트는 ‘보수주의자들은 빨래를 더 자주 하고, 진보주의자들은 극장에 더 자주 간다’라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이런 일상의 습관들을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근본 가치로 바꿔 보면 정치적 성향과 아주 무관하지 않다고도 말했다.
뉴욕대학교의 심리학 교수인 조나단 하이트는 자신의 저서 <정의로운 마음>에서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진보주의자)의 정신적인 특성을 보다 자세하게 설명하고 분류했다. 하이트는 보수와 진보는 도덕적으로 공통된 면도 있는 반면 매우 다른 면도 있다고 말했다.
먼저 둘 모두 ‘정의’를 중요시 여긴다는 점은 같다. 공정한 사회를 향한 열망은 지금까지 좌파 진영의 대표적인 특성이라고 여겨져 왔다. 하지만 보수주의자들 역시 ‘정의’를 열망하긴 마찬가지라고 하이트 교수는 말했다. ‘배려(보호, 복지)’와 ‘공정성’은 양측 모두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이다.
단,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여기에도 차이는 있다. 보수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정의’의 기본축에는 ‘깨끗함’ ‘권위’ ‘집단’이 있다. ‘깨끗함’은 ‘지저분한 태도’를 거부하는 것을 말하며, ‘권위’는 부모나 상사에게 자세를 낮추는 준비된 상태를, 그리고 ‘집단’은 소속된 사회의 전통에 순응하는 것을 말한다.
진보주의자들 역시 그들만의 ‘깨끗함’을 요구한다. 하지만 보수주의자들과는 달리 노골적으로 드러내진 않으며, 그 성격 또한 다르다. 이를테면 이들은 ‘깨끗한’ 바이오제품이나 ‘돈으로 사는 더러운 권력’에 대한 혐오 등으로 ‘깨끗함’을 추구한다.
위에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진보주의자들이 보수주의자들보다 행복감을 덜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또한 이들은 보수주의자들처럼 걱정 없이 즐거울 수도 없다. 왜냐하면 이들은 세상의 온갖 부정과 불공평에 대해서 더 많이 괴로워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니 그만큼 더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기부 성향에서도 둘은 차이를 보였다. 시라큐스 대학의 아서 C. 브룩스 사회학 교수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보수적 성향의 시민들이 진보적 성향의 시민들보다 훨씬 더 기부를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테면 보수적 성향의 가정은 평균 수입은 6% 적은데 자선 목적으로는 30%가량을 더 지출했다. 또한 진보주의자들은 돈만 덜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헌혈도 30% 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브룩스 교수는 공정성에 대한 욕구가 꼭 현실에서 남을 돕는 것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보수주의자들이 기부를 많이 하는 것이 이타심 때문인지, 의무감 때문인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무튼 이론적인 동정심 그 이상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브룩스 교수는 말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