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월 14일 이상수 의원이 기자간담회에서 영수증 원본을 보여 주고 있다. 임준선 기자 | ||
이 의원은 당시 “지난해 12월17일 SK그룹 임직원 33인의 명의로 10억원을 받아 제주도지부의 영수증 33장을 발급했다”고 밝힌 바 있다. SK는 지난해 12월6일 민주당에 후원금 15억원을 낸 데 이어 대선이 임박한 12월17일 추가로 10억원을 전달했다.
하지만 <일요신문>이 확인한 결과 민주당이 지난 7월23일 공개한 선거자금 내역서에는 이 의원이 밝힌 SK 추가 후원금 10억원이 기재돼 있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지난 7월 발표 당시에는 후원금 총액만 얘기했고 기업 이름과 액수는 공개하지 않았다. 아마 후원금 1백40억원 가운데 그 내역이 들어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선거자금 내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17일 이후 민주당에 들어온 수입액은 중앙당 지원금 4억5천만원에 불과하다. 설사 이 돈이 모두 SK 후원금이라고 치더라도 5억원이 넘는 돈이 ‘장부’에서 사라진 셈이다.
이와 관련, 이상수 의원은 “조만간 민주당의 대선자금 전체에 대한 자세한 내역을 밝히겠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SK 후원금의 누락 사실로 보아 지난 7월 공개한 선거자금 내역서 자체가 ‘면피용’으로 짜맞춰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한 앞으로 우리당이 발표할 대선자금의 신빙성에 대한 의구심도 일고 있다. 이 의원의 ‘말’과 선거자금 내역서의 차이에 얽힌 ‘비밀’을 따라가 봤다.
민주당은 지난 7월23일 대선자금을 둘러싼 논란과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선거자금 내역서를 발표한 바 있다. 지난 대선 당시 민주당 선대위 총무위원장을 맡아 당 자금을 총괄했던 이상수 열린우리당 의원이 이 작업을 주도했다. 당시 이 의원은 “현행 ‘정치자금에 관한 법률’은 후원자의 이름과 금액을 개별적으로 밝히는 것을 금지하고 있어 부득이 이 부분을 제외하고 대선자금의 내력을 밝히는 점을 이해해 달라”고 밝히면서 “앞으로 한나라당과 합의해 정치자금법이 개정되면 이 부분에 대한 내역도 소상히 공개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지난 10월10일 재신임 기자회견을 기점으로 여야의 대선자금에 대한 검찰의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 의원이 당시 ‘소상히 밝히지 못한’ 여러 가지 비밀들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는 SK 추가 후원금 10억원도 이 과정에서 밝혀진 것.
이 의원은 지난 10월14일 ‘SK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대검 중수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당시 이 의원은 검찰조사에 응하기에 앞서 기자들과 잠시 간담회를 가졌다.
이때 이 의원은 “지난해 12월6일 SK그룹 산하 10개 회사로부터 15억원을 받아 경기도지부 후원회의 영수증 10장을, 같은 달 17일에는 SK그룹 임직원 33인 명의로 10억원을 받아 제주도지부의 영수증 33장을 발급했다”며 “후원금 처리에 있어서 절차상 의혹은 없다”고 주장했다.
▲ 지난 7월 민주당 공개한 ‘선거자금 수입·지출 내역’ 표지(왼쪽)와 지난해 12월 17일 전후 내역. 17일 이후 수입은 18일 중앙당지원금 4억5천 거의 전부다. | ||
하지만 이 말은 결과적으로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7월 민주당이 공개한 ‘선거자금 수입·지출 내역서’에 따르면 영수증을 받고 정상처리했다는 10억원이, 이 의원이 돈을 받은 지난해 12월17일 이후 수입액 내역란 그 어디에도 기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설사 후원금을 받은 뒤 나중에 정산처리했다고 쳐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12월17일 이후 2월14일까지 내역서의 ‘수입’ 내역에 오른 돈은 ‘중앙당 지원금’ 4억5천만원이 거의 전부다. SK 후원금 10억원 중 4억5천만원을 중앙당 지원금으로 처리했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5억5천만원은 장부에서 사라진 셈이다.
이에 대한 이상수 의원의 반론을 들어보자. 우선 이 의원은 지난 7월 공개한 내역서에는 후원금을 낸 기업의 이름과 금액을 상세하게 기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치자금에 관한 법률’에 후원자의 이름과 금액을 개별적으로 밝히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그래서 10억원도 SK 출처를 밝히지 않고 공식후원금 1백40억원에 ‘묻혀’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민주당이 모금한 기업의 후원금은 모두 중앙당에 들어왔기 때문에 내역서에는 ‘중앙당 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기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결국 SK 돈 10억원도 중앙당 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내역서에 나와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차이가 있다. 민주당의 선거자금 내역서에 따르면 SK로부터 추가 후원금을 받은 12월17일 이후 수입액 기록은 단 세 번뿐이다. 그 중 첫 번째는 12월18일 ‘중앙당 지원금’ 명목으로 4억5천만원이 기록돼 있다(두세 번째는 이자 수입 등을 포함해 9백만원에 불과하다). 이 중앙당 지원금이 모두 SK 돈이라 해도 나머지 5억5천만원은 누락된 상태다. 그렇지 않다면 아예 SK의 후원금 10억원은 기록돼 있지 않고 4억5천만원은 다른 곳으로부터 받은 후원금일 수도 있다.
이 의원은 지난 11월3일 기자와 1차 통화를 한 지 10분 뒤 전화를 걸어와 “아까 내가 얘기를 대충 했지만 그런 부분을 쓰려면 사람을 만나서 자세하게 얘기하는 게 좋다. 하지만 궁금한 것이 있으면 다시 천천히 물어 보라”고 밝혔다. 자신의 1차 답변에 뭔가 미진한 것이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다른 내용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 의원은 “지난해 12월17일 받은 SK 후원금 10억원은 SK그룹 임직원 33인의 명의로 받아 제주도지부의 영수증 33장을 발급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때 SK 후원금 10억원도 일단 제주도지부의 계좌에 들어갔다가 다시 중앙당으로 입금되어야 하는데 그런 절차를 ‘생략’했다는 설명이었다.
이 의원은 이에 대해 “제주도지부의 영수증을 발급했으므로 후원금이 들어오면 바로 제주도 후원회 계좌로 그 돈을 집어넣어서 중앙당을 통해서 받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 12월19일이 선거일인데 17일 수표를 받았으니까 언제 제주도 후원회로 넣어서 제때 돈을 쓸 수 있나. 그래서 우리 본 계좌에 바로 넣으면 즉시 빼내 쓸 수가 있으니까, 그러면 중앙당까지도 안 가고 우리가 바로 쓸 수 있다. 그래서 나중에 정산할 때 서로 정산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의 얘기로는 SK 10억원을 제주도지부 영수증으로 받았지만 바로 중앙당에 입금하는 ‘편법’을 썼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돈이 선거자금 내역서에는 제대로 기재되지 않은 데 대해선 별다른 설명을 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기자들이 전체를 다 파악하지 못하고 마치 내 말이 틀린 것처럼 보고 있는데 나도 미치겠다. 조만간 한번 제대로 대선자금 전모를 자세하게 발표하겠다”고 공언하면서 “혹시 현재 의혹이 있더라도 나중에 전부 공개되면 모든 의혹이 풀릴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렇다면 이 의원이 12월17일 받았다고 한 SK 후원금 10억원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야당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기업체 비밀 후원금만을 따로 기록해두는 ‘이중장부’에 SK 10억원이 기재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SK로부터 이미 한도초과의 선거자금을 받아쓴 민주당으로선 그 나머지 자금에 대해서 따로 관리할 필요성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더욱이 현 민주당에서도 대선 당시 이 의원이 대선 비밀자금을 위해 따로 ‘이중장부’를 만들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터라 의문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SK 추가 후원금 10억원이 내역서 어디에도 기록돼 있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증발한 셈이 된다. 이럴 경우 이 돈의 용처를 두고도 상당한 논란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더 큰 문제는 민주당이 지난 7월 국민 앞에 공개한 선거자금 내역서의 신뢰도에 관한 것이다. <일요신문>은 지난 8월21일자(587호)에서 이 내역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바 있다. 당시 내역서에는 선거가 끝나고서나 받을 수 있는 국고보조금을 미리 수입금에 잡아놓고, 12억원에 이르는 국민참여운동본부 후원금도 수입 내역에 기록하지 않는 등 적잖은 허점을 드러낸 바 있다. 문제는 민주당이 ‘자신있게’ 내놓은 이 내역서의 신뢰도에 의문이 생기면서 노 대통령의 정치개혁 의지에도 생채기가 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