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눈밖에 날라’ 잇단 나홀로 행보
한덕수 무역협회 회장(오른쪽). 인수위사진기자단
여기에는 19개의 경제관련 단체들이 연서명했다. 무역협회를 제외한 경제5단체를 비롯해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전국은행연합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금융투자협회 여신금융협회 대한건설협회 한국석유화학협회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한국시멘트협회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한국제지연합회 등이 참여했다.
경제5단체 중에선 무역협회만 서명하지 않았다. 무역협회는 “무역과 큰 상관성이 없어 빠지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무역협회는 무역진흥이 고유 역할이고 그 주체가 수출기업인데, 기업경영과 직결돼 있는 문제인 상법 개정안에 대해 공동보조를 취하지 않겠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면서 “정부에 대한 눈치 보기가 아니면 달리 해석이 안 된다”고 날을 세웠다.
무역협회의 나 홀로 행보는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7월 정부 측에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으로 인한 기업들의 애로를 전달한 ‘기업활동 규제 입법에 대한 경제계 의견서’에도 무역협회의 서명만 빠졌다. 앞서의 경제단체 관계자는 “당시에도 무역협회는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경제민주화에 재계가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결국 무역협회를 제외한 경제4단체 명의로 건의서가 제출됐다.
같은 달 옛 파견법에 대한 헌법소원사건에 대한 경제5단체의 의견서를 낼 때는 무역협회를 포함해 경제5단체가 연서명을 했다. 그러나 그때도 무역협회는 “특정 사건에 대해 경제단체가 공동 건의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부정적 의견을 보였다. 다른 단체 관계자들이 사정하다시피하면서 어렵게 도장을 받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아웃소싱의 불법파견 논란에 대한 경제계 입장을 내는 데도, 다른 단체들은 “아웃소싱을 통한 생산방식이 세계적으로도 보편적인 현상인 만큼 이에 대한 규제가 부당하다”는 입장을 나타냈지만, 무역협회는 불참 의사를 피력했다. 무역협회를 제외한 4단체 명의의 건의서가 고용부에 제출될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경제단체 관계자는 “당시에도 무역협회가 정부가 추진하는 일에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마땅치 않다는 취지로 불참한 것으로 안다”면서 “정부를 향한 건의문에 무역협회가 빠진 사례가 몇 건 더 있었다. 이는 지난해 2월 한덕수 전 총리가 무역협회 회장에 취임한 이후 벌어진 일들”이라고 했다.
지난해 10월에는 경제단체들이 경제 활성화를 위해 행정처분을 받은 기업인들(주로 건설업자)에 대한 일괄사면 건의서를 청와대 법무부에 제출했다. 당시 무역협회 실무자는 “잡범 수준의 사람까지 사면한다는 것은 정서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며 불참 의사를 밝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련의 일들에 대해 무역협회는 ‘오해’라고 해명하고 있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언론에 “상법 개정안 반대 건의서에 동참하려고 했으나 한 회장이 해외 출장을 가는 바람에 최종 문구를 보지 못해 경제단체들과 함께하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재계는 여전히 한 회장의 행보를 믿지 못하는 눈치다. 한 회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지난 2006년 한미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대통령 직속 한-미 FTA 체결지원위원장 겸 한미 FTA 특보를 맡아 협상을 이끌었다. 이후 경제부총리와 총리까지 지냈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한-미 FTA 비준의 조속한 처리를 위해 주미대사로 임명됐고, 이를 그만둔 뒤에도 경제단체의 요직이랄 수 있는 무역협회장을 꿰찼다.
정권의 성격이 판이하게 달라졌지만, 그는 ‘한미FTA 전도사’로 관운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현재 무역협회를 이끄는 것을 보면 정부의 눈 밖에 날까 조심스럽게 운신하는 관료의 전형적인 모습밖에 없다”면서 “그런 스타일로 기업들의 애로를 건의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선택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1946년 설립된 무역협회는 무역업체들을 회원으로 하는 민간 경제단체다. 설립목적에 회원들의 ‘대정부 건의 및 답신’이 명문화돼 있다. 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정부에 건의하는 등 무역 업계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주로 한다.
박웅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