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스타 X파일 - 광팬으로 인한 트라우마 조디 포스터

그녀의 관심 끌려 ‘대통령 저격’

[일요신문] 최근 개봉한 영화 <엘리시움>에 반가운 배우 한 명이 나온다. 바로 조디 포스터. 올해로 44년차 배우가 된 그녀는 여전히 강인한 이미지의 카리스마로 스크린을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겐 항상 따라다니는 이름이 있다. 존 힝클리 주니어. 그는 그녀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했고 그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행동했으며, 결국은 그녀를 악몽의 구렁텅이로 빠트렸다. 여배우에 대한 광적 집착으로 대통령에게 총을 쏜 사나이. 아마 힝클리 주니어의 사건은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팬덤일 것이다.

레이건 대통령 암살 미수에 그친 존 힝클리 주니어.

세살 때부터 CF를 찍기 위해 카메라 앞에서 섰고 여섯 살 때부터 배우로 활동했던 조디 포스터는 1970년대 할리우드에서 가장 바쁜 아역 배우 중 한 명이었다. 틴에이저가 된 1985년, 그녀는 <택시 드라이버>(1986)라는 영화를 제안받는다. 마틴 스코시즈 감독과 로버트 드 니로가 만난 이 영화의 주인공은 트래비스(로버트 드 니로 분). 베트남 전쟁 베테랑인 그는 뉴욕의 택시 드라이버이며, 죄악과 부패로 가득 찬 거리를 정화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진 사나이다. 여기서 포스터가 맡은 역할은 어린 창녀 아이리스. 트래비스는 그녀를 이 혼탁한 거리에서 구원해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있다.

이 영화를 본 수많은 관객들 중엔 콜로라도에 사는 존 힝클리 주니어라는 20대 초반의 청년이 있었다. 정유업을 하는 아버지 존 힝클리는 선교 단체인 월드비전의 미국 지부 회장을 맡을 정도로 사회적 신망을 지닌 인물이었고, 아들인 힝클리 주니어는 고등학교 시절 모든 스포츠에 능했으며 학급 리더를 두 번이나 맡을 정도로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1973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1974년부터 1980년까지 6년 동안 텍사스 공대에 적을 두고 있었는데 끊임없이 뭔가 시도했고 그럴 때마다 휴학을 했으며, 집에서 받은 돈으로 낯선 도시로 떠난 후 얼마 후에 빈털터리로 돌아오곤 했다. 작곡가가 되기 위해 LA에 갔지만 소득 없이 돌아오는 식이었다. 실패가 거듭되자 그는 항우울제와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택시 드라이버>에서 어린 창녀 아이리스로 출연한 조디 포스터.

이런 상태에서 접한 <택시 드라이버>는 그에게 어떤 비전을 제시했다. 특히 그는 조디 포스터에 빠져들었고 영화를 무려 15번이나 본 후 결심한다. 그녀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기로. 그는 부모에게 작가 워크숍에서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다며 돈을 타냈고, 코네티컷 지역으로 갔다. 당시 조디 포스터는 예일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는 가까운 코네티컷에 거처를 정한 후 예일의 워크숍 과정에 등록했다. 이때부터 스토킹은 시작되었다. 그는 시와 메시지를 적은 쪽지를 포스터가 있는 기숙사 문틈으로 밀어 넣었고, 몇 번은 전화 통화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포스터는 전화를 거부했고 그녀의 마음을 얻지 못한 힝클리는 콜로라도로 돌아가 계획을 세운다. 포스터에게 뭔가 인정받을 만한 ‘인상적인 사건’을 저지르기로.

처음엔 항공기를 납치하거나 포스터가 보는 앞에서 자살하는 것 등을 생각했던 그는 <택시 드라이버>를 떠올렸다. 사실 이 영화는 197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조지 월레스를 암살하려 했던 아서 브리머의 일기를 토대로 한 작품이다. 영화에서도 트래비스가 대통령 후보를 암살하려 하는데 힝클리 주니어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고, JFK 암살에 대한 자료를 모으며 당시 대통령이던 지미 카터를 따라다니기 시작한다. 내슈빌에선 총기를 소지한 상태로 경호원들에게 체포되기도하지만 풀려났고 그의 예비 범죄 행위는 계속되었다. 대통령은 바뀌었고 1981년 3월 30일 워싱턴 DC의 힐튼호텔 앞에서 연설을 마치고 나오는 레이건에게 모두 여섯 발의 총을 쏘았다. 대통령은 가슴 부분에 가벼운 총상만 입어 죽지 않았고, 범행을 저지르고 그 자리에 서 있던 힝클리는 곧 체포되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디 포스터의 사랑과 존경이다. 그 두 가지를 가질 수 없다면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우리는 나폴레옹과 조세핀 같은 역사적인 커플이며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로맨스의 관계다.”

<택시 드라이버>

사건 이후 예일 캠퍼스로 수많은 기자들이 몰려들었고 포스터는 은둔 생활에 접어들다. 그녀는 엄청난 정신적 충격에 빠졌다. 몇 달의 시간이 지나 잠잠할 무렵 또 한 명의 스토커가 잡혔다. 그의 이름은 에드워드 리처드슨. 그는 총을 지닌 채 예일 캠퍼스를 거닐며 조디 포스터를 죽일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는 것. 하지만 “그녀가 너무 예뻐서 차마 죽이지 못했다”고 경찰에서 증언했다.

이후 조디 포스터에게 ‘힝클리’라는 고유명사는 금지어가 되었다. 그 어떤 기자도 인터뷰에서 ‘힝클리’라는 이름을 언급해선 안 됐고 그 이름을 듣는 순간 포스터는 인터뷰 장소를 떠났다. 1991년엔 NBC의 <투데이쇼> 출연을 갑자기 펑크 낸 적이 있었는데 프로그램 예고에서 존 힝클리 주니어라는 이름을 언급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그 사건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한 건 단 두 번. 사건 이후 이뤄진 짧은 기자회견과 1982년 <에스콰이어>에 직접 썼던 칼럼이 전부였다.

한편 힝클리는 “그날 내가 한 행동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랑의 표현”이라고 주장했고, 재판 결과 정신이상자로 판명되어 교도소 대신 병원에 갇히게 되었다. 너무 관대한 판결이라는 여론이 들끓기도 했지만 의사는 힝클리에 대해 자아도취와 정신 분열로 인한 인격 장애이며 수동성과 공격성이 수시로 바뀌는 경계성 정신 장애를 겪고 있다고 진단을 내렸다. 이후 1999년까지 병원 생활을 하던 힝클리에게 며칠 동안 부모와 함께 지낼 수 있는 배려가 베풀어지기도 했지만, 그가 병원에서 조디 포스터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는 다시 병원에 갇히게 되었다. 이후 상태에 따라 몇 번에 걸쳐 외출이 허락되기도 했다. 조디 포스터는 그 상처에서 벗어나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지만 <피고인>(1988)과 <양들의 침묵>(1991)으로 두 번의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대중의 사랑을 되찾게 되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