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한류 넘어 ‘그 겨울’ 돌풍
일본 지상파 입성에 성공한 <그 겨울 바람이 분다> 포스터.
얼마 전부터 일본에서는 거센 우경화 바람이 일고 있다. 지난해 12월 극우 성향의 아베 신조가 총리로 임명되면서 혐한류 분위기는 한층 고조됐다. 2~3년 동안 일본에서 방송한 한국 드라마들은 이렇다 할 반응을 얻지 못했다. 한편에선 일본 드라마에 출연하는 한국스타 김태희와 구하라가 엉뚱한 혐한류 역풍을 맞아 곤욕을 치르기까지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그 겨울>은 일본 지상파 TV채널인 TBS를 통해 방송을 시작했다. 일부 위성채널에선 간혹 한국 드라마를 편성했지만 영향력이 막강한 지상파 TV에서 한국 드라마를 전면에 배치한 건 최근 혐한류 분위기를 고려할 때 이례적인 결정이다.
파격 편성에 보답하듯 <그 겨울>은 첫날 방송에서 3.7%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TBS가 앞서 방송했던 한국 드라마들의 최고 시청률이 4% 안팎인 점을 고려할 때 <그 겨울>은 초반부터 높은 성적을 올린 셈이다. 9월에 접어들어서도 비슷한 시청률이 유지되는 상황.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등장인물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이에 따른 시청률도 꾸준히 오르고 있다.
<그 겨울>의 초반 선전은 한국 드라마의 재도약 측면에서 기대를 모은다. 이 드라마를 만든 제작사 골든썸의 한 관계자는 “한국에서 먼저 검증을 받아야 해외 방송에서도 현지 시청자의 관심을 끌 수 있다. <그 겨울>은 흥행 코스를 밟으면서 초반부터 일본 시청자에게 고무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며 “한동안 케이팝을 중심으로 형성된 한류가 이제 다시 드라마로 옮겨올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한국 드라마가 현지에서 어떤 반응을 얻는지는 해당 방송사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TBS 홈페이지에는 <그 겨울>을 두고 ‘신선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여기에 주인공 조인성을 향한 여성 시청자의 반응이 더욱 뜨겁다. TBS 홈페이지에는 “조인성의 마력에 빠졌다”거나 “멋있는 드라마에서 조인성의 연기까지 볼 수 있어서 매주 즐겁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등의 의견이 이어지고 있다.
<그 겨울>이 한류 드라마로서 엘리트코스를 밟는 점도 눈길을 끈다. <그 겨울>은 지상파 TBS에 편성되기 전 위성채널 KNTV를 통해 먼저 현지 시청자를 찾았다. 1차 시험대에서 얻은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골든썸 관계자는 “<그 겨울> 방송이 시작하고 나서 KNTV 가입자 수가 갑자기 늘어났다”며 “새로운 한류 드라마 탄생에 대한 분위기는 위성채널에서 방송할 때부터 시작된 셈”이라고 말했다. 1차 관문을 무사히 통과한 <그 겨울>은 TBS로 안정적으로 진출한 셈이다.
<그 겨울>이 만드는 긍정적인 반응에 힘입어 국내 방송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오랜만에 대작 한류드라마가 탄생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일본에 드라마 두 편을 수출했던 한 드라마 제작사 대표는 “아직 방송 초기이기 때문에 결과를 예측하기는 조심스럽다”면서도 “잔잔하고 감성적인 멜로를 좋아하는 일본 시청자에게 충분히 통하는 이야기다. 한류스타 조인성과 송혜교가 갖고 있는 스타파워까지 합해졌다”며 <그 겨울>이 만들 새로운 한류를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관심은 <그 겨울>이 혐한류 분위기를 잠재우고 한동안 끊겼던 한류드라마 신드롬을 재현할 수 있을지에 쏠린다. 더욱이 올해는 한류드라마의 효시로 통하는 배용준 주연의 <겨울연가>가 2003년 4월 NHK위성채널을 통해 일본에 첫 방송한 지 꼭 10년을 맞는 해다. 이른바 ‘한류 10주년’을 맞아 한·일 양국에서 이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히 이뤄지는 상황에서 <그 겨울>은 ‘포스트 겨울연가’가 될 수 있다는 기대 섞인 시선을 받고 있다.
실제로 현재 일본에서는 ‘한류 10주년’에 맞춰 다양한 기획들이 펼쳐지고 있다. <겨울연가>보다 1년 먼저 일본에 소개돼 한류드라마의 시작을 알렸다고 평가받는 송승헌·송혜교 주연의 <가을동화>를 기념하는 대규모 이벤트도 열린다. <가을동화>로 한류스타로 떠올라 10년 동안 자리를 지킨 송승헌은 11월 20일과 22일 도쿄와 오사카에서 현지 팬들과 만난다. 단순한 팬 이벤트가 아니라 <가을동화>로부터 시작해 <겨울연가>를 거치면서 폭발한 한류를 10년 동안 이끌어온 송승헌과 그 한류의 힘을 함께 추억하는 기획으로 만들어진 행사다.
물론 혐한류가 여전한 상황에서 새로운 한류드라마의 탄생은 과거에 비해 쉽지 않다는 ‘한계론’도 나온다. 2020년 도쿄올림픽 유치를 목적으로 한동안 혐한류 운동을 줄였던 일본의 극우세력들이 올림픽 개최가 확정된 이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본 극우세력들은 케이팝에 비해 파급력이 막강한 드라마를 향해 더 거센 반대의 의견을 보내고 있다. 더욱이 현재 일본 정부가 취하고 있는 우경화 정책은 당분간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망. 이런 난관을 뚫고 <그 겨울>이 한류 신드롬을 일으킬지 관심이 모아진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