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은 둥글다더니… 너무 일찍 닫힌 ‘기회의 문’
[일요신문] 어떤 지도자든 자신이 추구하는 철학에 어울리는 선수를 선호하게 마련이다. 구현하고 싶은 그림이 A라면, A를 만드는 데 적합한 선수로 팀을 구성하는 것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 자연스레 ‘코드’가 맞는 선수가 생긴다. ‘OOO의 페르소나’라는 표현도 등장하고, ‘OOO의 아이들’이라 묶어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지도자가 선수를 택함에 있어 팔이 안으로 굽을 경우, 바라보는 시선은 호불호가 갈린다. 그 지도자가 한 나라의 대표팀을 이끄는 감독이라면 주변의 왈가왈부는 더 커진다.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는 선수들의 집합소가 되어야 할 국가대표팀이 지도자의 총애를 받는 이들로만 꾸려진다면 부정적인 면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다. 현재 홍명보호를 바라보는 축구계의 갑론을박은 그래서 불거졌다.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2차전 레바논과의 경기에서 김보경의 첫 번째 골을 구자철이 축하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홍명보호 3기 명단이 발표되자 결국 ‘홍명보 아이들’이 주류가 되는구나 라는 이야기가 축구판에 나돌기 시작했다. ‘홍명보 아이들’이란 2009년 U-20월드컵을 시작으로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을 거쳐 2012년 런던올림픽으로 방점을 찍었던 멤버들을 일컫는다. 지난 7월 동아시안컵을 시작으로 9월 평가전까지 A대표팀에 호출된 선수들을 살피면 ‘홍명보 아이들’이 자연스레 국가대표팀의 주축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런던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총 18명 중 11명(정성룡 이범영 윤석영 김영권 황석호 김창수 백성동 김보경 박종우 구자철 지동원)이 홍명보호 1~3기에 탑승했다. 부름을 받지 못한 7명(오재석 김기희 기성용 남태희 정우영 박주영 김현성) 중 박주영과 기성용은 결국 ‘품고 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며 다른 이들 역시 기회를 받을 가능성이 적잖다. ‘모든 선수들을 원점에서 경쟁시키겠다’던 홍명보 감독도 결국은 ‘아이들’ 쪽에 보다 많은 시선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배경이다.
한 축구인은 “전임 감독들이 이끌던 대표팀 면면과 비교하면 변화의 폭이 제법 크다. 물론 이 자체를 가지고 옳다 그르다 말하는 것은 곤란하다. 조광래 감독 시절과 최강희 감독 때의 선수구성도 차이는 있었다. 문제는, 너무 빨리 기회의 문을 닫아버린 인상이 있다는 것”이라며 “홍 감독은 나름 많은 기회를 제공했다 생각하겠으나 결과적으로 K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을 빠르게 정리한 느낌이 적잖다. 월드컵 본선까지 시간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서둘러 틀을 갖추고 조직력을 다져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졌는지는 의구심이 생긴다”는 의견을 전했다.
반대로 홍 감독의 선택을 이해한다는 견해도 있다. 한 해설위원은 “일단, 받아들이는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런던 멤버들이 국가대표팀에 대거 합류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자체를 잘못된 것이라 말하면 곤란하다. ‘홍명보 아이들’을 불러들이는 선택이 문제가 있으려면 그들로 인해 피해를 보는 ‘희생양’이 있어야 한다. 충분히 좋은 기량을 가지고 있는 K리거가 있는데 ‘홍명보 아이들’ 때문에 밀려났다 식의 논리가 성립돼야 한다. 몇몇 아쉬운 인재가 주목받지 못하는 경우는 있으나 다수가 희생되고 있다고 보긴 힘들다”는 뜻을 전했다.
양쪽 모두 일리 있는 말이다. 후자는 “지금은 감독의 선택을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는 시기”라는 해석으로 가름할 수 있겠다. 전자는 역시 ‘편협한 시각’에 대한 우려다. 한두 차례의 경기로 떨어져나간 선수들이 과연 제대로 측정 됐는가, 그것과 더해 자신이 이미 눈도장을 찍었던 ‘아이들’과의 비교가 동등했는가에 대한 의문부호다. 이와 관련해서는 또 다른 축구인의 의견에 귀담을 필요가 있다.
국가대표 이력이 제법 있는 그는 조심스레 “결국 월드컵을 준비하는 팀이라는 측면에서는 걱정이 되기도 한다. 무게감이 큰 무대일수록 경험이 풍부한 리더가 필요하다. 또래들로만 구성된 현재 홍명보호의 아쉬움이기도 하다. 이는 분명 보완이 필요할 것 같다”는 견해를 밝혔다. ‘홍명보 아이들’이 홍명보호의 뼈대가 되는 것은 인정해야 하는 점이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플러스알파’는 홍 감독도 생각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이어 그는 “필드에서 뛰는 선수들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과연 눈과 귀를 열어 ‘자신의 선수’가 아닌 ‘필요한 선수’도 쓸 수 있을지 궁금하다”는 뜻을 덧붙였다.
런던올림픽 당시 ‘홍명보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든든함 쪽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편애’ 이야기가 심심치 않다. 비슷한 상황인데 다른 반응이 나온다면 당사자도 주위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임성일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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