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홍업씨는 신문이나 방송 등에는 전혀 눈길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바깥 일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에 관한 기사들 때문에 ‘울화통이 터지고 혈압이 올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불면의 밤’으로 내몰고 있는 것일까. 홍업씨를 면회하고 온 한 측근의 얘기를 통해 그의 옥중 심경을 들여다봤다.
지난 7월 중순 어느 날 오후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서울구치소에 김홍업씨 측근 4~5명이 민원실로 들어섰다. 지난 6월21일 구속된 이후 이곳에 수감중인 ‘회장님’ 김홍업씨를 보기 위해서였다. 평소 이들은 홍업씨를 그렇게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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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홍업씨(52ㆍ아태재단 부이사장) | ||
“왔니?” 홍업씨는 평소 다정하게 대했던 ‘식구’들을 어색하게 맞으며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그는 한눈에 보아도 몸무게가 20여kg은 빠진 듯했다. 구속된 뒤 하루가 다르게 수척해졌던 것. 그를 본 한 측근은 “마치 비쩍 마른, 대학 시절의 ‘회장님’을 다시 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홍업씨는 식사도 거의 하지 못한다고 한다.
지금의 처지가 너무 고통스러워서였을까. 밖에서 하루에 담배 세 갑을 피우는 골초였던 홍업씨는 담배를 끊은 상태임에도 살이 계속 빠지고 있었다. 워낙 술을 즐겨 건강이 많이 나빠졌고 고혈압과 당뇨 증세까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구치소에서의 하루 일과는 아침 7시(하절기)에 일어나 한 시간 동안 세면하고 아침 식사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수감자들은 그후에 편지를 쓰거나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한다. 홍업씨는 ‘알려진 얼굴’ 때문에 운동은 거의 하지 못하고 방에서 주로 성경을 읽으며 하루를 보낸다고 한다.
하지만 홍업씨는 신문은 거의 보지 않는다고 했다. 바깥 일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을 다룬 기사를 보면 울화통이 터지고 혈압이 올라 신문을 볼 수가 없다는 것. 홍업씨는 검찰 수사나 언론의 보도에 대해 불만이 적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홍업씨에겐 뿌리 깊은 ‘언론 기피증’이 있다. 야당 시절부터 언론의 곡해로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고 믿고 있기도 하다. 과거 그는 어떤 사안에 대해 측근들이 ‘적극적으로 해명해야 한다’고 충고를 하자 “걔네들(언론)이 말한 대로 써줄 것 같냐”라며 언론에 대한 강한 불신감을 내비쳤다고 한다.
다시 홍업씨의 면회실. 그는 근황을 묻는 측근들에게 “시간이 너무 안간다”며 구치소 생활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측근들은 같은 층에 수감중인 동생 홍걸씨의 근황에 대해서도 물어보려 했지만 차마 얘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고 한다.
홍업씨의 한 측근에 따르면 동생 홍걸씨가 최규선씨 등과 어울릴 때 둘째형 홍업씨도 많이 견제를 했다고 한다. 홍업씨가 홍걸씨에게 몇 번 주의를 주며 ‘자중하라’고 말했다는 것. 그런데 홍걸씨는 “형들이 뭘 안다고 그래”라며 반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 뒤부터 홍업씨는 ‘훌쩍 커 버린’ 동생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가졌다고 한다. 형의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화를 내는 동생에 대해 무척 실망했던 것.
평소 홍걸씨는 큰형인 홍일씨에겐 무서워 말을 제대로 못했지만 둘째형 홍업씨와는 매우 절친했다고 한다. 그런데 최규선 게이트와 관련해 두 형제간의 우애가 많이 상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홍업씨는 자신이나 동생 홍걸씨가 측근들의 ‘사기’에 휘말려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으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홍업씨는 구속된 뒤 면회 온 측근들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나나 홍걸이나 다를 게 뭐가 있나. 우리 둘 다 (주변사람들에게) 속은 것이다. 내가 홍걸이를 나무랄 필요가 없다. 내가 더 바보다. 내 죄를 내가 받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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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용호씨 | ||
고교동창이던 김성환씨는 평소 홍업씨를 ‘왕회장’으로 받들며 극진히 모셨다고 한다. 홍업씨도 그에게 자신의 고급 승용차를 선뜻 줄 정도로 신뢰를 가지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두 사람은 구속된 뒤 검찰에서 한 번 마주친 적이 있다고 한다. 대질신문이 아니라 우연히 서로 지나칠 기회가 있었던 것. 그런데 김성환씨는 홍업씨를 보고 ‘히죽히죽 웃으며 그냥 손만 흔들었다’고 한다. 가벼운 목례도 아니고 마치 ‘가벼운 친구’ 대하듯 홍업씨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이는 홍업씨나 측근들로서는 평소 같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왜냐하면 김성환씨는 홍업씨를 맞을 때면 차려 자세로 대기하고 있다가 거수경례까지 할 정도로 깍듯하게 홍업씨를 ‘모셔 왔기’ 때문이다. 김성환씨의 ‘무례한’ 행동에 충격을 받은 홍업씨는 그때 상황을 이렇게 측근들에게 털어놨다고 한다.
“나는 성환이가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했다. 평소엔 내게 그렇게 예의바르게 대하던 사람이 갑자기 그렇게 하다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성환이가 왜 내게 그렇게 대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성환이가 불쌍하게 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검찰 조사를 앞두고 그냥 미친 척했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홍업씨는 측근들과 면회를 하면서 거의 혼자서 자신의 넋두리를 풀어 나갔다고 한다. 측근들은 주로 듣고만 있었다고. 다음은 그런 가운데서도 홍업씨가 측근들에게 던진 ‘농담’ 한마디.
“나 여기(구치소) 와서 유명한 사람들 많이 봤어.”
측근들은 처음에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고 한다. 홍업씨의 얘기는 구치소에서 진승현 이용호씨와 같은 ‘유명 인사들’을 직접 봤다는 뜻이었다.
하루는 홍업씨가 복도를 걷고 있는데 모르는 사람이 그에게 다가와 인사를 꾸벅 하며 아는 체를 하더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를 잘 ‘모르는’ 홍업씨는 당황해서 그냥 지나쳤다고 한다. 그뒤 주위사람에게 물어보니 그가 바로 이용호씨였다는 것.
홍업씨가 애초부터 이용호씨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지, 아니면 기억력이 쇠퇴해 이씨를 몰라 본 것인지 아리송한 대목이기도 하다. 한편으론 홍업씨 구속의 단초를 제공한 것이 올해 초 불거진 ‘이용호 게이트’였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두 사람의 조우가 더욱 아이러니컬하게 다가온다.
홍업씨는 교도관이 면회 내용을 메모하고 있었는데도 비교적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심경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주변사람들을 잘 관리하지 못한 것에 대해 뼈저린 후회도 하고 있었다. 또한 그는 아직까지 자신의 죄에 대해 수긍을 하지 못하는 듯 ‘울화통이 터진다’며 답답해했다고 한다. 홍업씨는 면회를 마칠 무렵 다음과 같은 한마디를 남기며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내가 이 정권 들어서‥?고스톱 친 것 밖에 더 있나.”
측근이 전해준 옥중 홍업씨는 때로 좌절하고 때로 분노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홍업씨는 도덕적으로는 자신의 처신에 문제가 있었다는 걸 인정하지만 자신이 거창한 죄목으로 기소당한 현실은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했다. 그가 남긴 고스톱 발언의 배경에는 그런 ‘불복심리’가 깔려 있었던 셈이다.
문제는 그와 ‘친구들’이 벌였던 ‘판’이 정도에서 크게 벗어났고 그 때문에 옥에 갇히는 신세로까지 전락했다는 점이다. 오는 8월2일 첫 공판에서도 홍업씨가 과연 옥중 토로와 같은 항변을 되풀이할지 자못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