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 가는 한국의 미 알리기 67
떡충이는 곧 압록강에 가서 청나라 사신을 맞았다. 사신은 먼 곳에 떨어져서 떡충이를 시험하였다. 처음에 두 손을 높이 들었다. ‘하늘이 높은 줄 아느냐’는 뜻이었다. 떡충이는 아는 것이 떡밖에 없었으므로 “옳거니, 저 놈은 떡을 저렇게 많이 먹었다고 자랑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두 손을 양 옆으로 벌렸다. 사신은 ‘하늘이 높은 것은 물론이고 땅이 넓은 것도 안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사신은 이번에는 손을 들어 세 손가락을 폈다. ‘천지인삼재’(天地人三才)를 아느냐는 뜻이었다. 떡충이는 “옳거니, 오늘 떡 세 동이를 먹었다는 뜻이구나. 나는 다섯 동이를 먹었으니…”하고 다섯 손가락을 들었다. 사신은 ’삼재(三才)는 물론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 오행까지 안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동아일보> 1926년 12월 23일자 이병윤 선생이 쓴 동화 ‘떡충이 명인’의 간략한 줄거리다. 다소 길지만 소개한 것은, 재미도 있으려니와 떡과 관련된 우리 민족의 긴밀한 정서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우리 민족이 고대부터 떡을 해먹었다는 증거물은 많다. 낙랑 유물에서도, 삼국시대 고분에서도,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도 시루가 등장한다.
우리 속담에 ‘밥 위에 떡’이라는 말이 있다. 좋은 일에 더욱 좋은 일이 겹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밥보다 떡을 더 맛있는 음식으로 생각했다는 뜻이다.
‘떡 먹은 값을 하다’는 ‘나잇값을 하다’라는 뜻이었고, ‘떡이 되다’는 ‘크게 곤욕을 당하거나 매를 많이 맞다’라는 뜻이다. 요즘 시쳇말로 ‘떡 실신’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데서도 떡의 위력을 알 수 있다. ‘떡 주무르듯 하다’라는 말도 널리 쓰이는 말이다.
두텁떡도 우리에게 친근했던 떡이다. 처음에는 임금의 탄신일에 상에 올랐다. 그만큼 귀하고 고급스러웠다. 그러다가 차차 민가로 전파되었다. 옛 문서에 따르면 두텁떡은 ‘봉우리떡’이라고도 불렀다. 시루에 안칠 때 봉우리 모양으로 소복하게 안쳤기 때문이다. 찹쌀, 떡가루 양념, 팥고물 양념, 팥소 양념 등으로 만든다.
두텁떡. 제공=한국전통음식연구소
두텁떡이 1970년대까지도 보통사람들의 인기를 끌었다. <동아일보> 1975년 2월 7일자 3면에는 서울 명동 등 번화가에 스낵 음식점이 부쩍 늘었다는 소식을 ‘새로운 풍속도’로 전하고 있다.
‘이들이 팔고 있는 음식은 모두 1백 원 안팎의 간단한 것. 가장 고객들의 인기를 끌고 있는 40~60원짜리 핫도그에서 도너츠(50원), 꽈배기(50원) 햄버거(120원), 호떡(50원) 등 빵이나 과자류를 비롯하여 우동(100원) 김초밥(150원) 칼국수(150원) 오뎅(150원) 떡볶음(100원) 잡채(100원) 등 식사류와 함께 새우튀김(150원) 파전(100원) 인절미(15원) 두텁떡(50원) 강정(35원) 등 (후략)’
1970년대에 두텁떡이 저렴한 가격으로 서민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서양의 빵·과자류와 경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두텁떡은 떡고물이 흩어져 있어서 모양이 깔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70년대 한과제조업을 했던 김순자 여사는 ‘꽃무늬를 넣은 두텁떡은 케익과 비교해서 절대로 뒤지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어떻게 문화를 가꾸어 나가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경쟁력을 지닐 수 있다는 생각이다.
참고문헌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전통 혼례 음식’ (광문각, 2005)/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음식 백가지1’ (현암사,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