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흐르다 보니 나도 이제 흰머리가 부수수한 백발의 변호사가 되어 젊은 검사실에 드나든다. 종종 젊은 검사나 서기들이 생각 없이 툭 내뱉는 말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 변호사도 그러니 조사받으러온 사람들이 받는 상처는 훨씬 크다. 의식 없이 사람의 가슴에 대 못질을 하는 경우를 본다. 자존심에 피를 흘리고 자살을 하는 인사들의 동기도 알고 보면 별게 아닐 수 있다.
어느 법정 앞에서였다. 구겨진 양복의 초라해 보이는 60대 중반쯤의 변호사와 인사했다. 위세가 대단한 검사장이었다. 그는 지금은 이 법정 저 법정을 돌아다니며 아들 딸 같은 후배 검사들에게 혼이 나면서 살고 있다고 퇴임 후의 씁쓸한 현실을 털어놓았다. 마음이 많이 아픈 것 같았다.
그래도 나 같은 사람에 비하면 한때 청운을 누려본 적이 있지 않느냐고 그를 위로했다. 그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 인생 늦가을에 나목이 되고 보니까 꽃 피고 새 울던 그 시절이 다 허상이더라고 했다. 체험에서 나온 절실한 독백이었다. 나는 다시 태어나 마음을 활짝 열린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
암에 걸려 삶이 며칠 안 남은 고교 선배와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는 검사로서 승승장구하다가 정치권으로 나가 이 나라의 최고지도자가 되는 게 목표였다. 그는 장애 없이 빠른 속도로 출세가도를 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암의 기습을 받았다. 그는 내게 가족과 함께 즐겁게 먹고 마시고 사는 게 진짜 행복인데 그걸 몰랐다고 했다.
권력은 원래 무상한 것이다. 단임제 하에서 권세가 등등하던 대통령도 임기가 끝나면 한없이 초라해진다. 여론에 차이고 서글픈 노년의 밤을 맞이하는 것 같다. 모든 국가기관이 현대화되고 친절해졌다. 그러나 아직 미진한 곳이 검찰청이다. 일반 국민이 만나는 국가는 젊은 검사들이다.
검사가 겸손해야 한다. ‘검사스럽다’는 유행하던 말이 있다. 젊은 검사의 교만을 빈정댄 말이다. 교만이라는 게 이상하다. 남들은 다 알아도 본인만 모른다. 생각 없이 내뱉은 한마디 모욕적인 말에 국민은 피를 흘린다. 자기가 작정한 수사방향이 있더라도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는 노력을 좀 더 보여줬으면 좋겠다. 편견은 진실도 거짓말로 들리게 하기 때문이다. 검사실을 출입하다 보면 본인들은 전혀 모르고 있다. 생각 없이 내뱉은 일선 검사들의 말이 부메랑이 되어 조직으로 되돌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변호사 엄상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