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지난 몇 년 간 ‘화려한 시절’에는 강남의 고급 술집에서 폭탄주로 우정을 쌓았지만 이날 공판에선 한 가지 사안에 대해 서로 엇갈린 진술을 펼쳐 ‘흔들린 우정’을 떠올리게 했다. 3인방과 홍업씨와의 알려지지 않았던 스토리를 법정 지상중계를 통해 ‘리플레이’해 본다.
7월19일 오후 2시 서울지법 제421호 법정. P프로모션 대표이자 김홍업씨의 대학 1년 후배인 이거성씨가 재판정을 천천히 살피며 들어섰다. 뒤이어 홍업씨의 대학동기이자 측근인 유진걸씨가 목발로 몸을 가누며 입정했다. 환자수의를 입었지만 그의 얼굴은 그다지 초췌해 보이진 않았다.
이거성씨가 유씨의 목발을 받아주며 부축하는 광경이 눈에 띄었다. 10여 분 뒤 마지막으로 김성환씨가 입정해 이날 재판의 막이 올랐다. 이후 이들 세 사람은 재판중 거의 눈길을 주고 받지 않아 관계 변화를 실감케 했다.
먼저 이거성씨에 대한 검찰의 신문이 시작됐다.
검찰:이재관 전 새한그룹 부회장에게서 불법대출과 관련, 검찰 수사 및 금감원 조사를 무마하고 구속 안되게 선처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나.
이:그렇다. 하지만 김홍업씨는 너무 어려워 직접 부탁하지 못하고 성환이형(김성환씨로 정정해서 다시 말함)에게 부탁해서 그가 이 사안을 알아서 처리해줄 것으로 믿었다.
검찰:이재관씨가 김홍업씨와 김성환씨를 직접 언급하며 피고에게 청탁을 했나.
검찰이 이 같은 질문을 던진 것은 이재관씨가 이거성씨를 ‘다리’로 홍업씨와 김성환씨에게 청탁을 하려는 의도가 있었는지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거성씨는 이 사실에 대해 애매모호하게 대답해 재판장의 ‘주의’를 받기도 했다.
이씨는 계속 “김성환씨가 알아서 이 사안을 잘 처리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며 홍업씨도 이 전 부회장의 청탁 대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발뺌했다.
재판장은 재차 이씨의 ‘확답’을 요구한 뒤 “이재관 부회장이 속마음으로는 홍업씨를 생각하고 이거성씨에게 부탁했을 것이다. 그런데 부탁 당시 이 부회장이 홍업씨나 김성환씨를 구체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다”고 어렵게 이씨의 진술을 정리했다.
이거성씨는 이재관씨 청탁을 김성환씨에게 전달한 것에 대해선 인정했지만 김성환씨가 이 사실을 홍업씨에게 보고했는지에 대해선 ‘모른다’고 답변했다. 이 대목에서 김성환씨와 이거성씨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김성환씨는 “이거성씨에게서 이재관 부회장 청탁과 관련한 얘기를 듣고 홍업씨에게 이를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홍업씨는 그 자리에서 성환씨에게 ‘니가 알고 있는 검찰 고위간부 통해 이 사안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반면 이거성씨는 이재관 전 부회장의 청탁과 관련, 이 전 부회장과 홍업씨와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애써 축소하려는 인상이었다.
한편 이거성씨는 이재관 전 부회장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김성환씨가 ‘나와 왕회장(김홍업씨를 지칭)이 보초를 확실히 서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시켰다”고 말했다. 김홍업씨가 측근들에 의해 ‘왕회장’으로 받들어진 것이 확인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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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월21일 김홍업씨가 검찰에 출두하고 있다. 측 근들은 그를 ‘왕회장’으로 받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 ||
또한 유씨는 세간에 나돈 ‘집사 역할설’에 대해 ‘(홍업씨의) 집사 얘기는 김씨가 만든 것이고 나는 그런 역할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유진걸씨는 성원건설 화의인가 청탁과 관련하여 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는 대가성을 적극적으로 부인하며 돈의 용도는 나중에야 알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김성환씨는 이 돈에 대해 대가성으로 받은 것을 인정해 대조를 이뤘다.
검찰:성원건설 화의인가와 관련, 전윤수 회장과 김성환씨 그리고 피고가 일식집 ‘나미’에서 만났을 때 성환씨가 피고에게 ‘너도 거들어서 도와달라’고 말한 사실이 있나.
유: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 없다.
검찰:그 자리에서 전 회장으로부터 10만원권 수표로 3억원을 받은 사실이 있나.
유:그렇다. 하지만 전 회장으로부터 직접 받지 않고 김성환씨로부터 받았다. 하지만 화의인가와 관련한 돈이었는지 그 당시 알지 못했다.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냥 일식집에서 나오면서 김성환에게서 가방을 받았을 뿐이다.
검찰:3억원을 두 사람이 1억5천만원으로 나눈 사실 있나.
유:그렇다.
검찰:그럼 1억5천만원의 대가성이 없다면 왜 김성환씨에게 그 돈을 받았다고 생각하나.
유:옛날 유진약업을 운영할 때 김성환씨에게 대차관계가 있었는데 그 명목으로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검찰은 유씨가 검찰조사에서 말하지 않았던 ‘김성환씨와의 대차관계’에 대해 법정에서 처음 진술하자 황당해하는 빛이 역력했다.
유씨는 김성환씨가 전윤수 회장으로부터 받은 돈을 자신에게 건네며 “신경쓰지 마라. 내가 알아서 한다고 말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씨는 유씨의 이 같은 주장을 정면으로 부인했다. 그리고 문제의 3억원이 ‘화의인가와 관련된 돈이란 사실을 (유씨가) 알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한때 두터웠던 두 사람의 우정도 재판정에선 빛이 바랬다. 한 사람은 대가성을 순순히 인정하고 있고 한 사람은 돈의 성격을 한참 후에야 알았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식집에서의 회합이 있은 뒤인 99년 7~8월께 유씨는 전윤수 회장으로부터 10만원권 수표로 10억원을 받아 집으로 가지고 간 뒤 5억원은 자신이 챙기고 나머지는 김성환씨 사무실로 가져다 주었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점은 유씨가 5억원 중 일부를 ‘친구’ 홍업씨에게 건넸다는 사실이다. 유씨는 홍업씨 부인에게 2천7백만원짜리 다이아몬드 반지 1개, 미국에 유학중인 홍업씨 아들과 관련해 2만달러(약 2천4백만원)를 주었고, 추석 전에 홍업씨에게 5천만원을 주었다고 밝혔다.
한편 김성환씨는 피자업체인 M사에 대한 세무조사, P종건 신용보증서 발급 등의 청탁과 관련해 ‘홍업씨와 같이 상의하면서 금품을 수수했다’며 검찰의 공소장 변경내용을 모두 인정했다. 검찰은 현재로서는 피고인들에 대한 추가기소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