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도 복지정책을 놓고 정치싸움이 치열하다. 우선 여야는 영유아 무상보육을 놓고 심각한 정쟁을 벌이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영유아의 무상보육 재원 마련을 위해 2000억 원 규모의 지방채를 발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무상보육 대란의 책임자인 박 시장이 정치 쇼를 펼치고 있다고 공격을 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무상보육 약속은 대통령이 하고 책임은 지자체가 떠맡게 됐다며 박 시장을 옹호하고 있다.
여야가 무상보육을 놓고 이와 같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은 내년에 실시하는 지방선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박 시장이 재선될 경우 차기 유력한 대선후보로 부상하는 부담이 있다. 민주당도 박 시장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타격이 크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기초연금 수정안을 놓고 여야는 또 다른 싸움을 벌이고 있다. 정부는 65세 이상 모든 고령자에게 월 20만 원의 연금을 지급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공약이 재정 문제로 이행이 어려워지자 소득 하위 70%까지로 지급대상을 축소하고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길수록 수령금액이 적은 수정안을 내놓았다. 그러자 민주당은 이는 공약파기며 국민기만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새누리당은 국가 재정 형편상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적극적인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다. 향후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 다른 복지정책을 놓고 여야 간 정치싸움은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내년도 예산안이 발표되자 여야의 대결은 폭풍전야다. 정부가 총지출 357조 7000억 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을 발표했다. 올해보다 4.6% 늘어난 팽창예산이다. 예산편성의 기본방향은 성장, 복지, 재정건전성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고 정부가 빚더미 위에 올라앉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저성장이다. 대내외 불안으로 인해 경제성장률이 2%대에 고착화하고 있다. 내년 경제여건이 크게 바뀌지 않는 한 세수감소와 재정파행은 불가피하다. 이에 아랑곳없이 야당은 부자증세를 통해 복지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당은 경기활성화를 위해 사회간접자본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야 모두 나라살림이 어떻게 되건 내년 예산안을 지방선거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여야 정치권에 나라와 민생은 안중에 없고 정치적 계산만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형편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지고 있다. 우리 경제는 더 이상 정치의 파괴행위를 수용할 수 없다. 취업난, 주거난, 물가난, 부채난 등 수없이 밀려오는 고통으로 서민경제가 무너지고 사회가 숨이 막히고 있다. 미국의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진정 나라와 국민을 위해 국정을 펴는 정치권의 변화가 절실하다.
서울대 초빙교수·전 고려대 총장 이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