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방북 때마다 단골 메뉴로 나오던 이산가족 상봉사업, 금강산개발 사업 등은 정권이 바뀐 뒤 본격적으로 시행되게 된다. DJ정부 초기에는 삼성-현대-대우그룹과 통일교 계열의 통일그룹이 모두 초반 기선잡기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정몽구 당시 현대정공 회장의 중국쪽 라인 뚫기와 정몽헌 당시 현대상선 회장의 일본쪽 라인개척 등 두 아들을 앞세워 ‘쌍끌이’에 나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추진력 앞에 대우와 삼성은 대북사업 기선을 내주고 말았다.
▲ 지난 98년 6월 ‘소떼몰이 방북’에 앞서 정주영 명예회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
정주영 회장은 98년 6월 소떼몰이 방북에 이어, 10월 말 방북해 김정일 위원장을 면담하고 판문점을 통해 돌아오기도 했다. 98년 11월 초 삼성그룹은 구조조정위원회 명의로 북한에 10억달러를 투자해 전자단지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는 등 대북 주도권 싸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삼성은 당시 대북사업 전담부서인 특수지역위원회 위원들이 베이징에서 북한측과 실무협상을 갖고 있다며 이들이 12월 초 북한에 조사단을 파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당시 삼성은 북한과의 협상이 조만간 합의에 도달하고 99년 1월 중으로 사업 의향서까지 교환할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자 정부는 삼성과 현대의 독자적인 대북경협에 대해 제동을 걸고 나섰다. 정세현 당시 통일부 차관이 “의향서 수준의 종잇장을 들고 기자회견장부터 먼저 찾는 것은 문제다. 그 같은 장외 압박 전술에 당하고 있지는 않겠다”며 대기업들의 북한 프로젝트 추진방식에 불만을 토로했다. 이후 재계의 대북사업은 현대의 금강산 프로젝트 위주로 진행됐다.
정부와 현대의 마찰도 없지 않았다. 이종찬 전 원장은 현대 등 대기업에 대해 뒷돈 거래를 하지 말라고 경고를 했다고 밝혔다. 현대상선의 대북지원설에 대해서도 기업 목적상 뒷거래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권마다 사업 주도권이 바뀌어 온 대북사업.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는 올 겨울부터 이와 유사한 양상이 벌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