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일각에서는 ‘비슷한 유형의 설문조사만으로는 원조교제의 실태가 제대로 드러나기 어렵다’는 이견을 제기하기도 했다. 즉 인터넷상에서 10대들에게 원조교제를 제의하는 성인들이 있는가 하면 성인들을 향해 갖가지 방법으로 원조교제 유혹을 던지는 10대 청소년들도 적지 않은데 정작 이런 점들은 간과되고 있다는 것. 10대들의 이른바 ‘원조교제 역제의’가 심각한 수위에 다다랐다는 지적이다. 과연 사이버공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서울 중구 신당동에서 건축업을 하는 김아무개씨(36)는 얼마 전 채팅을 하다 황당한 일을 겪었다. 오랜만에 인터넷 유명 채팅 사이트인 S에 들어간 김씨는 30대 대화방에서 ‘심심녀’란 대화명을 사용하는 한 여성을 발견했다. 이내 그녀는 사실 자신이 18세라고 털어놨다. 학원비가 필요하다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고 했다. 전직 사회부 기자 출신이었던 김씨는 취재(?)나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에서 그녀의 청을 들어주는 척하며 대화를 유도해 나갔다.
“돈은 얼마가 필요한가” “원조교제 경험은 몇 번이나 있나” “상대는 주로 어떤 사람이었나” 등의 질문과 답이 한동안 오갔다. 하지만 “10만원을 주면 만나주겠다”는 제의를 김씨가 거절하자 갑자기 그녀의 태도가 협박조로 돌변했다. “지금까지의 대화 내용을 모두 다 갈무리했다. 인터넷 사이트에 아저씨와의 대화 내용을 올리겠다”며 은근히 겁을 주기도 했다. 본명을 그대로 대화명으로 쓰던 김씨로서는 참으로 난감할 노릇이었다.
‘심심녀’의 공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돈도 없는 주제에 왜 원조교제를 하려고 하느냐” “하고 싶으면 집에 가서 마누라한테 해달라고 해라”는 등의 비아냥이 쏟아졌다. 그 10대 소녀는 다 큰 어른이 자신에게 쩔쩔매는 것을 마치 즐기는 듯했다. 김씨는 조카뻘의 어린 여학생에게서 받은 수치심 때문에 한동안 자괴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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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상 20세 이상만 들어갈 수 있는 성인 채팅사이트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상당수 성인전용 채팅사이트를 10대 청소년들이 제 집처럼 드나든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성인의 주민등록번호만 있으면 인증 절차가 끝나버리기 때문에 사실상 아무런 제재 방법이 없다.
11만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성인 채팅사이트 L에는 남성과의 즉석 만남을 원하는 여성들의 글이 제법 올라와 있다. 그 중 상당수는 원조교제를 연상시키는 글들이다.
‘올해 23, 키 170, 몸무게 51, 외모는 이국적. 제가 생활이 힘들어서 방세, 전기세, 휴대폰 요금 내주실 분만 있으면 연락주세요. 물론 그냥 내달라는 것은 아닙니다.’(섹시걸), ‘안냐세여. 저는 부산에 사는 스무 살 여아입니다. 몇 달만 저 데리고 살아주실 분 연락주세요.’(이△△), ‘전 대구에 사는 귀엽고 섹시한 22세 여성입니다. 알바 필요하시면 연락주세요. 돈은 10만원입니다.’(알바녀),
‘나이는 23, 키는 168, 외모는 자신만만. 제가 빚이 있어서 2천만원 갚아주고 계약 동거 원하는 분만 메시지 보내세요.’(장미), ‘전 20살이구여, 저랑 만나요. 잠시 만나 뜨겁게 놀 오빠들 핸드폰에 문자 남겨줘요. 20대는 절대 사절, 나이 많고 경제력 있는 오빠들 원해요. 직업 여성 절대 아님. 돈이 좀 필요해서요.’(tlatlasu)
글을 남긴 대부분의 여성들이 자신의 나이를 20~23세라고 밝히고 있으나, 사실상 상당수는 10대들로 추정된다는 게 사이트 관계자들의 얘기다. 대개의 남성들이 원조교제에 대한 두려움에 미성년자와의 대화를 꺼리기 때문에 ‘위장 나이’를 댄다는 것.
실제로 기자와 통화가 이뤄진 ‘tlatlasu’라는 여성은 “혹시 10대가 아닌가”라는 질문에 “원조교제 때문에 무서워서 그러느냐. 혹시 걸리더라도 내가 20살이라고 속였다고 하면 오빠한테는 아무런 죄가 없다”고 말해 자신이 10대 소녀임을 인정하기도 했다.
심지어 일부 성인 채팅사이트에선 10대의 회원 가입이 불법임에도 버젓이 자신의 나이를 밝혀가며 ‘교제’를 요청하는 글들도 눈에 띄었다. 아예 ‘경제적으로 도움 줄 이성 만나기’와 같이 원조교제를 연상시키는 방이 따로 마련돼 있는 곳도 있었다.
‘제 나이는 16이구여. 독립해서 혼자 사시는 분, 그리고 차 있는 분을 찾습니다. 전 술도 마시고 싶고, 춤도 추고 싶어요. 우리 멋진 만남 가져여.’(이○○), ‘전 창원에 사는 XX라고 해요. 나이는 16. 오늘 시간 있으면 데이트해요.’(XX), ‘인천의 19세 소녀. 당신을 위한 하룻밤 귀엽고 섹시한 저랑 함께 하세요. 단 알바 10만원입니다.’(이◇◇)
특히 최근 일부 성인채팅 사이트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은 10대 소년들의 원조교제 제의. ‘돌봐줄 누나 구함’ 등의 제목이 붙여진 글들이 이들 사이트의 채팅방이나 게시판을 도배할 정도다.
인터넷 전문가들은 사이버공간의 익명성은 사람들을 현실에서보다 더욱 대담하게 만든다면서 호기심이 많은 청소년들의 경우엔 그런 경향이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평범한 10대들까지 인터넷을 통해 일탈 청소년들의 비행 정도로 치부되던 원조교제 대열에 속속 합류하고 있지만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감명국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