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이들 난자 국제중개 브로커들은 2~3명씩 조를 이뤄 서울 강남의 몇몇 유명 불임클리닉이나 산부인과 주변에 출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여대생들을 상대로 난자 제공자(도너)를 모집한 뒤 일본의 불임부부들에게 불임시술을 알선하는 게 이들의 역할. 여대생들의 난자를 매매하는 사례는 그동안 몇 차례 신문지상에 오르내렸지만 이렇게 거래된 난자가 국제중개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난자 중개 브로커들의 주요 거점 중 하나는 강남 A병원 주변. 이 병원 여성의학연구소가 일본이나 유럽에서 원정을 올 정도로 불임 시술로 상당히 유명세를 타고 있기 때문이다. A병원의 한 관계자는 “불임 상담을 받으러 오는 환자들 중에는 외국인도 상당수 끼여 있다”며 “적게 잡아도 한 달에 두세 명은 되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불임 문제로 국내 병원을 찾는 외국인들의 대부분은 일본인 불임부부들. 중개 브로커들은 병원 주변에 진을 치고 있다가 자연스럽게 불임시술 상담을 하러 온 일본인들에게 접근한다.
브로커 중에는 아예 일본 불임부부 명단을 확보해놓고 현지를 오가며 불임시술을 중개하는 ‘프로’들도 있다고 한다. 정확한 통계가 없어 얼마나 많은 일본인 부부들에게 난자가 제공되는지에 대해서는 파악이 불가능한 상태. 단지 불임 시술을 금지하고 있는 일본의 현실을 감안할 때 일본인에게 난자가 중개되는 사례가 상당수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DNA뱅크의 윤경호 소장은 “일본인 불임 부부들 중 상당수가 미국으로 건너간다”며 “미국은 관계 법령이 잘 정비돼 있고, 수술도 자유로운 편이라 일본인들의 방문이 많다”고 설명했다.
미국에 비하면 한국은 일본인들에게 상당히 ‘천대’를 받는 편이라고 한다. 윤 소장은 “한국 사람들을 무시하는 일본인들의 특성 때문인지 난자 주문이 별로 없다”며 “지금까지 일본에서 한국 여대생들의 난자를 사겠다고 나선 것은 3건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국내 여성의 난자가 난자은행 등을 통해 정식으로 일본인 불임부부에게 제공되는 사례는 드문 편. 하지만 브로커들에 의한 음성적인 난자거래는 상당수에 이른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강남서 활동중인 브로커 김아무개씨(39)에 따르면 일본인 불임부부들은 부유층의 경우 미국인 도너(난자 제공자)를, 중산층 이하의 경우 한국인 도너를 선호한다고 한다. 김씨는 “한국의 경우 아시아권이라 외모가 비슷하고 수술비도 싼 편이라 최근 들어 ‘주문’이 늘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물론 한국인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다고 해서 아무나 도너로 받아주는 것은 아니다. 국제중개용 도너가 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난자를 제공하는 데 있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것은 도너의 혈액형과 건강상태.
외모도 따지지만 ‘얼마나 예쁜가’보다는 ‘불임 부부와 얼마나 많이 닮았는가’를 본다. 일부 까다로운 불임 부부는 성품이나 IQ를 미리 알아보기 위해 도너의 학창시절 생활기록부나 성적표를 요구하기도 한다고.
이 절차가 끝나면 본격적인 ‘짝맞추기’ 작업에 돌입한다. 종합건강검진을 통해 도너의 질병 유무와 난소의 상태 등을 확인하는 것. 모든 것이 정상으로 판명되면 브로커가 연계된 클리닉에서 도너의 난자를 채취한다고 한다. 이 경우 배란 유도 주사를 맞기 때문에 최소 일주일에서 보름 정도의 기간이 걸린다고 한다. 이렇게 채취한 난자는 인공수정 과정을 거쳐 ‘고객’인 일본인 불임 여성의 자궁에 착상되는 것이다.
이같은 국제 거래를 알선한 뒤 브로커들이 챙기는 수수료는 4백만원 선으로 알려져 있다. 브로커들은 시술이 완전히 끝난 뒤 도너들에게 그 중 절반에 해당하는 2백만원 정도를 난자 제공료로 지불한다고 한다.
학교 부근의 전단지를 보고 난자를 제공한 적이 있다는 여대생 한아무개씨(23)는 “내 난자가 일본인 부부의 불임시술에 쓰여졌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묘한 생각이 들었다”며 “하지만 도덕적인 부담감은 그다지 크지 않다”고 밝혔다. 어차피 돈이 필요해서 난자를 판 이상 그 뒤의 일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얘기였다.
이러한 국제 난자중개는 앞으로 더욱 음성적인 형태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보건복지부가 장기 이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해 난자 밀거래를 엄격하게 통제할 방침이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권준욱 의료정책과장은 “불임 부부가 늘어나면서 정자나 난자가 무차별적으로 거래되고 있다”며 “올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대로 시행해 정자 및 난자 밀거래를 엄격히 금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석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