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혈통’이 아니면 고독과 은둔의 삶
김정일 위원장과 여동생 김경희 노동당 부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함주군 동봉협동농장 현지지도에 동행해 기념촬영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번진 건 무엇보다 김정은이 리설주를 관영매체 등을 통해 ‘부인 리설주 동지’로 공식화한 때문이다. 주민들은 물론 외부세계도 리설주의 존재를 알고 있는 상황이라 소문 확산이 급속히 이뤄졌다는 것이다. 외신에서까지 관심을 가질 정도로 젊고 아름다운 김정은의 여자에게 눈길이 쏠린 건 당연하다는 얘기다. 여기에 250만 대 이상 보급된 것으로 알려진 휴대폰을 통한 정보 유통과 남한 드라마·영화·가요의 북한 내부 유입 등 외부와의 접촉과 흐름이 빨라진 것도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과거 북한 정권 핵심인 김일성·김정일 가문을 일컫는 ‘평양 로열패밀리 여인들’의 이야기는 외부로 알려지지 못했다. 최고지도자의 여인들은 대부분 얼굴을 드러내지 못했고 그에 관해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된 때문이다. 지난 2000년 6월 첫 남북정상회담 때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함께 갔지만 국방위원장 김정일은 혼자 나왔다.
김정일의 첫 연인인 성혜림도 시아버지인 김일성에게 인정받지 못하면서 존재감이 미미했다. 20대 미혼이던 김정일은 5년 연상인 유부녀 성혜림을 강제 이혼시켜 1969년께부터 동거했다. 2년 만에 장남 정남을 낳았지만 불과 몇 년 만에 김정일의 사랑은 식었다. 결국 성혜림은 우울증과 심장병에 시달리다 모스크바에서 쓸쓸히 숨졌다.
28년간 김정일과 함께 살았던 10년 연하의 고영희(김정은의 생모)도 사망 때까지 얼굴이 드러나지 않았다. 김정일은 유선암에 걸린 고영희를 프랑스 파리로 보내 치료받게 했다. 고영희가 현지에서 숨지자 특별기와 고급 관을 보내기도 했다. 그래도 부고조차 내지 않았다. 고영희가 생전에 김정일과 군부대 등을 함께 방문한 기록영화가 공개된 건 김정일이 죽고 김정은이 권력을 넘겨받은 2012년 들어서였다. 최근 재일교포 출신인 그녀를 ‘평양의 어머니’로 치켜세우는 우상화 작업이 본격화한 것으로 우리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리설주
이번 성추문설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지위는 일단 굳건할 것 같다는 게 대북 정보 분석 전문가들의 얘기다. 은하수관현악단 내부에서 성추문이 있었고, 공개처형 등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있던 건 사실로 파악하고 있다는 게 우리 정보 당국의 판단이다. 하지만 리설주가 직접 관련됐다는 정황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어 일단 북한당국으로서는 한시름 놓은 상황이란 것이다.
김정일의 마지막 여인이라 할 수 있는 김옥은 최근 행방이 묘연해졌다. 그녀 역시 오랜 기간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그림자로 머물렀다. 그녀가 언제 어떻게 김정일의 눈에 들어 발탁되고, 그의 마지막을 지키는 역할을 할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한·미 정보당국은 김옥이 20대의 나이였던 1990년대에 이미 김정일과 각별한 사이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992년 북한 화보에 김정일의 기술서기(비서)로 등장했던 그녀가 몇 해 뒤 사진에서 지워져 이 시기를 전후해 김정일의 여자가 됐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옥의 모습이 서방세계에 본격 공개된 건 지난 2011년 5월 김정일의 중국 방문에 수행하면서다. 숙소인 헤이룽장(黑龍江)성 무단장(牧丹江)시 호텔에 도착할 때 짙은 색 정장 차림의 50세 전후 여성이 김정일 차량 뒷좌석 왼편에 타는 모습이 포착된 것이다. 김정일의 여자가 아니라면 앉을 수 없는 자리란 점에서 그녀가 김옥일 가능성이 제기됐고, 결국 사실로 확인됐다.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이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이 조선중앙TV를 통해 방송됐다. 연합뉴스
김옥은 2004년 고영희 사망 이후 사실상 김정일의 부인 자리를 차지했다. 1964년생인 그는 평양음악무용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했으며 1980년대 초부터 고영희가 사망할 때까지 김정일의 기술서기로 활동했다는 게 우리 정보 당국이 파악한 내용이다. 기술서기란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이상 간부들의 건강을 보살피는 직책으로 간부 1명당 1명이 배치되고 주로 간호사들이 선발된다.
김정일에게는 여러 명의 기술서기가 있고 이들은 일반 간부의 기술서기와 달리 우리의 비서에 해당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기술서기 중 김정일의 신임이 가장 두터웠던 김옥은 김정일의 군부대 및 산업시설 시찰 등 국내 현지지도 수행은 물론 외빈 접견에도 참석한 것으로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김옥이 북한 관영매체에 얼굴을 공개하며 처음 등장한 것은 2010년 9월 노동당 3차 대표자회를 계기로 해서다. 하지만 김정은 체제 들어 그녀의 존재는 미미해졌다. 한때 김정은의 공개활동에 멀찌감치 모습을 보이던 그녀는 이젠 완전히 잊힌 존재가 됐다. 정부 당국자는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과 김옥의 관계를 고려해 어느 정도 예우는 해주겠지만 생모 고영희 우상화에 장애가 된다고 판단해 공개적인 활동 등은 사실상 제한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왼쪽부터 성혜림, 고영희
김성애의 등장은 뜻밖이었다. 그녀는 1970년대 중반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나 캄보디아의 시아누크를 비롯해 김일성과 각별한 인연을 맺어온 외국 국가수반을 만났을 때 공개석상에 얼굴을 내비친 이후 20년여 동안 ‘잊혀진 여자’였다.
김일성과 김성애는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김정일을 후계자로 지정하면서 김성애 소생들이 밀려나고 김정일의 의해 설움을 당하면서 김성애의 불만도 커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김정일이 1980년대 들어 후계자로 본격적으로 군림하면서 이른바 ‘곁가지’(생모 김정숙 소생을 본가지로 칭하는데 비해 후처 김성애의 자녀들을 가리키는 북한식 표현)로 분류돼 사실상 은둔의 삶을 강요당했다.
김성애가 김일성과의 사이에서 낳은 장남 김평일은 평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동구권 지역 대사를 떠돌다 폴란드 대사를 맡았다. 딸 경진 역시 북한 땅을 밟지 못하고 오스트리아 대사인 남편 김광섭과 함께 20년 가까이 빈에 머물고 있다. 차남 영일은 외교관으로 해외공관에서 근무하다 2000년 5월 독일에서 45세의 일기로 병사했다.
평양 로열패밀리의 여인 중 김정은 시대 들어 가장 잘나가는 ‘파워 걸’을 꼽으라면 영순위는 김경희 노동당 비서다. 그녀는 김정은의 고모로, 김일성 주석의 딸이자 김정일의 여동생이다. 이런 배경에서 김경희는 김정은 체제의 안방마님이라고 할 수 있다. 퍼스트레이디 리설주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자리다. 그녀는 말년의 오빠를 도와 산업현장 방문과 인사 등 통치활동을 사실상 함께했다.
김옥
김정일이 건강이상 직후 재기하면서 수행횟수를 부쩍 늘렸던 김경희는 김정은 시대 들어서도 공식행사 등에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병 치료를 위해 싱가포르를 방문했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등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횟수가 줄어들어 이상설이 제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녀의 건강은 김정은 체제 권력 안정의 중대한 변수 중 하나로 지목된다.
김정은 시대, 김경희에 버금가는 평양 로열패밀리 여성은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다. 그녀는 김정은이 등장하는 공식행사장에 아무런 제지 없이 뛰어다니며 웃음을 짓고, 돌출행동을 해 관심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대북 정보 관계자들은 “북한 체제의 의전·경호상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누구도 그녀를 막지 못하는 모습이 드러난다”고 말했다.
이런 김여정의 모습은 2011년 12월 김정일 추도대회 때 예고됐다. 혹한에도 불구하고 김정은과 당·정·군 간부들이 꼿꼿이 자리를 지키고 추도사를 듣는 도중에 여정은 화장실을 다녀오는 듯 자리를 비웠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김여정은 지난해 11월 중앙TV에 등장해 관심을 끌었다. 김정은이 북한군 제534군부대 직속 기마중대훈련장을 시찰한 보도에서는 김여정이 고모 김경희와 함께 말을 타고 가는 장면이 등장했다. 북한 언론들은 그녀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지만, 말 탄 모습을 관영통신으로 대외에 전송한 걸 놓고 김여정을 이른바 ‘백두혈통’이라고 불리는 김일성 가계(家係)로 공식화하려는 것이란 분석도 제기됐다. 김여정이 김경희와 함께 말을 탄 장면을 내보낸 건 김정일을 여동생 김경희가 마지막까지 수행하며 도운 것처럼, 김여정도 오빠 김정은의 통치활동을 보좌하는 역할을 할 것임을 암시한 것이란 얘기다.
평양 로열패밀리의 여성들은 절대권력의 향배에 따라 부침을 겪어야 했다. 최고권력자의 사랑이 불꽃처럼 피어오를 때는 그에 버금가는 힘을 누렸다. 하지만 그 유효기간은 ‘사랑이 식을 때까지’로 한정됐다. 그 뒤에는 은둔과 고독만이 기다렸다. 잊히거나 홀로 쓸쓸히 삶을 마감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예외일 수 있는 여인들은 김일성·김정일의 직계인 이른바 백두혈통을 이어받은 사람들뿐이었다.
출범 2년차를 맞은 29세 최고지도자 김정은 체제의 운명을 놓고 다양한 관측과 전망이 나온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로열패밀리의 여인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적지 않은 역할을 할 것이란 분석이다. 그녀들의 발걸음이 주목된다.
이영종 중앙일보 기자 yj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