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풍향계’ 변덕 죽 끓듯…
▲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와병설로 북한의 향후 권력 승계와 관련한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연합뉴스 | ||
그런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 동갑내기 한 남자에게 빠졌다. 1969년 모스크바 유학 중이던 김경희는 같은 시기 그곳에 공부를 하러 온 북한 청년과 사랑을 나누게 됐다. 절대 권력자였던 김일성은 얼굴만 말끔하게 보일 뿐 출신성분이나 다른 배경이 돋보이지 않는 강원도 출신의 그 남자가 영 마땅치 않았다. 그렇지만 이미 사랑에 눈이 먼 딸은 귀국 후에도 열정을 불태웠다. 강원도 원산에 있는 남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혼자 벤츠를 몰아 밤길을 다녀오기 일쑤였다. 경호원들까지 따돌리고 험한 길을 오가느라 위험천만한 일도 일어났다. 결국 김일성은 결혼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72년 결혼식을 올렸다.
김경희의 마음을 사로잡아 김일성 주석도 꼼짝 못하게 한 야심 가득 찬 남자가 바로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매제로서 그는 북한 권력의 최고 실세로 자리해왔다. 장성택이 맡은 행정부장 자리는 북한의 권력기관을 주무르는 핵심자리다.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과 관련해 장성택의 역할이 주목받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하지만 대북 정보를 다루는 한 관계자가 귀띔한 장성택 부부의 최근 속사정은 그리 녹록치 않아 보인다. 김정일 위원장과 장성택을 연결하는 핵심 고리인 김경희 노동당 경공업부장의 심신이 좋지 않다는 점이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김경희 부장은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건강이상에다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병세가 악화된 것은 2년 전 딸의 죽음이 직접적인 원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외동딸 김금송이 프랑스에 유학 중이던 2006년 9월께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사랑하던 사람과의 결혼이 반대에 부닥치자 이국땅에서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 것이다. 상대 남성의 계급적 출신성분이 좋지 않다는 점 때문에 장성택 부장이 결혼을 반대한 게 화근이었다. 이후 김경희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상태에 빠져 들었다는 게 우리 관계당국이 파악한 정황이다.
이렇듯 평양의 로열패밀리 이면에는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비운과 아픔이 적지 않다는 게 북한 사정에 밝은 정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8월 중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설을 국정원을 비롯한 관계당국이 확인한 것을 계기로 북한의 향후 권력체계와 관련한 관측이 난무하고 있다. 특히 후계체제와 관련해 김일성-김정일 가계에서 대를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북한의 최고 파워엘리트 세력인 군부가 잠정적인 집단지도체제를 구축해 통치를 해나갈 것인가 하는 데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후보군에 오른 사람들의 면면이나 복잡하게 얽인 측근세력의 친분이나 이해관계는 향후 권력판도를 예측하는 나침반이 될 수 있다.
후계자 후보군에 있는 인물 중 김 위원장의 맏아들 김정남은 해외유학파로 김 위원장에게서 사실상 버림받은 어머니 성혜림과 함께 모스크바에서 살았다. 2002년 5월 성혜림이 병사한 후 그는 자유분방해졌다. 북한 국적기인 고려항공 사장의 딸로 알려진 미모의 부인과 함께 일본과 마카오 홍콩은 물론 유럽국가들까지 관광을 다녔다. 그러던 중 2001년 5월 위조여권으로 일본에 입국하다 걸려 강제 추방되는 망신을 산 후 김 위원장의 눈 밖에 났다는 설이 정론처럼 나돌았다. 이후 베이징 등지에 장기간 머물자 북한에 들어가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는 소문도 퍼졌다. 이후 종종 일본 TV방송에 모습이 잡히고 인터뷰까지 나오자 후계자 후보군에서 완전히 멀어졌다는 설도 나왔다.
▲ 장남 김정남(왼쪽)과 차남 김정철. | ||
김 위원장의 곁에서 병수발을 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옥과 김 위원장의 전 부인 고영희의 스토리도 후계구도와 관련해 짚어볼 만한 대목이다. 김옥은 김 위원장의 사저에 함께 살면서 실질적으로 부인 역할을 해왔다. 정상적이지 못한 상황에 처한 김 위원장을 가장 가까이서 보좌하면서 의중을 헤아려 외부로 전달하는 핵심 인물로 떠오른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김옥은 평양음악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김 위원장의 서기실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엔 분야별 업무를 담당하는 서기들 밑에서 보조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북한 정보에 밝은 한 인사는 “김옥을 김정일 위원장의 곁에 있는 여인으로 발탁한 사람이 전 부인 고영희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제기한 ‘김옥과 고영희의 갈등설’은 과장된 것이란 얘기다.
이에 따르면 암에 걸려 얼마 살지 못한다고 판단한 고영희는 자신이 낳은 두 아들 김정철과 김정운을 보살필 인물로 김옥을 지목했다. 최근 김옥이 후계구도 구축에 상당한 발언권을 갖고 있으며 고영희의 아들을 후계자로 밀고 있다는 설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라는 설명이다.
김옥의 존재가 우리 정보당국에 포착된 것은 2000년 10월 미국 워싱턴에서다. 당시 김 위원장의 특사로 빌 클린턴 대통령을 만난 조명록 국방위 제1부위원장을 수행한 인사 중에 그녀가 홍일점으로 포함됐다. 당시 그는 ‘김선옥’이란 가명으로 활동했고 국방위원회 과장 직함으로 나왔다. 한·미 정보당국은 당시 그녀에 주목했다. 하지만 그녀가 큰 여행용 가방을 끌고 가다 바퀴가 걸려 쩔쩔매는 걸 보고도 북한 측 대표단이 도와주지 않아 특별한 인물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고 한다. 이런 정황 때문에 김옥이 김 위원장의 여자로 부상한 것은 2001년 이후일 것으로 정보당국은 보고 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이기동 남북관계실장은 “정상적 승계과정이라면 김옥의 역할이 미미하겠지만 김 위원장의 유고 상황이라면 그의 몫이 중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외무성 관리의 말을 인용해 김 위원장의 발병 후 결재를 김옥이 맡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김정철 대세론이 거의 자리 잡을 무렵인 2006년께 김정철이 호르몬계통의 불치병을 앓는다는 점을 국정원이 파악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셋째 아들인 김정운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스위스에서 유학한 인물로 김 위원장이 신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린 나이(올해 25세)가 부담돼 그가 후계자로서 거론되기는 무리라는 반론이 제기됐다. 게다가 김 위원장은 2005년 12월 후계논의를 금지하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뒤늦게 알려지면서 후계문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다.
▲ 김정일 가계도. | ||
이처럼 김정일 가계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지만 이와 관련한 한·미 정보당국의 정보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련 정보가 엇갈리고 김정일 후계구도와 관련해 우리 정보당국이 그려온 밑그림마저 이래저래 흔들리고 있다는 점에서다. 그동안 극도의 보안 속에 축적한 대북첩보를 토대로 짜온 김 위원장 후계와 관련한 대응 시나리오가 그의 건강이상이란 변수로 인해 변경이 불가피해졌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물론 김 위원장 건강문제가 어떻게 가닥을 잡을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생각보다 상태가 악화되지 않아 조만간 공개석상에 다시 나타날 가능성도 점쳐진다. 김 위원장의 측근들로서는 깜짝 등장을 통한 반전을 노릴 수 있다. 그러나 미 행정부의 분석은 김 위원장의 건강상태를 한국 정부에서 나온 언급과는 달리 위중한 것으로 보고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요즘 <노동신문>이나 평양방송 등 북한의 관영매체에는 ‘헌신’이란 단어가 부쩍 자주 쓰이는 걸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북한 보도는 김 위원장이 7~8월 무더위에 집중적인 현지지도를 한 직후 쓰러진 점을 염두에 둔 듯 그의 행보가 “인민의 행복을 위한 헌신이었음을 강조하는 내용 등으로 채워진다. 9월 16일자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에 대해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묵묵히 바쳐가신 우리 장군님”이란 표현까지 사용해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물론 북한 선전매체는 아직 김 위원장 건강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은 병상통치 국면에 맞춰 김 위원장 리더십 선전의 핵심요소로 ‘헌신’이란 용어가 부상하고 있는 것 같다는 진단을 한다. 북한 주민들이 관련 사실을 알게 되고 북한이 이를 공식 인정해야 하는 상황까지 염두에 둔 사전 정지작업이 치밀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현재 상태로는 김 위원장이 상당기간 병상통치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설사 제한적인 공개 활동으로 ‘건재’를 과시한다 해도 그의 건강 상태 등으로 미뤄볼 때 절대 권력을 무한정 휘두르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다. 공석에 오랜 기간 나타나지 않고 있는 그가 자신의 후계구도와 북한의 운명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되고 있다.
이영종 중앙일보 기자 yjlee@joongang.co.kr